이순신 장검 국보 지정, 요대함도 보물 추가
이순신 장검 국보 지정, 요대함도 보물 추가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08.24 13: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사의 마지막 난초 그림 불이선란도 등 4건도 각각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이순신 장검(李舜臣 長劍)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해 지정했다. 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순신 유물 일괄에 요대를 보관했던 요대함(腰帶函)을 추가, 지정했다.

또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인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보광사 동종’, ‘불조삼경4건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

 

이순신 장검 /문화재청​
이순신 장검 /문화재청​

 

이순신 장검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이순신 유물 일괄에서 장검만 빼내 국보로 승격했다. 이 칼은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검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장검 2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끈을 매달았으며,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 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엑스(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순신 장검은 다음의 이유에서 국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고,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며,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명문 및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및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뛰어난 제작기술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두루 갖추었고,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순신 장검은 당초 외날이라는 형태적 특성상 이순신 장도라는 이름으로 지정 예고되었으나, 전통적으로 유형에 따른 의 구분은 있었으나 고대에 이미 명칭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점 이라는 단어는 권위와 의례와 관련되어 칼의 격을 높일 때 사용한다는 점 특정 소장자를 강조하거나 용도가 확실한 경우 외날이어도 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오랜 기간 장검으로 인식되고 불렸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순신 장검이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하였다.

 

이순신 유물, 요대와 요대함 /문화재청
이순신 유물, 요대와 요대함 /문화재청

 

이순신 요대함(腰帶函)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있는 요대(腰帶, 허리띠)를 담아 보관했던 원형의 나무함으로, 함 속에 요대를 넣고 뚜껑처럼 덮는 형식이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세우고 판재에 베 싸기를 한 후 겉은 흑칠, 안은 주칠을 했다.

조선의 전통적인 공예기법과 높은 기술 수준으로 제작되었고, 비슷한 다른 유물들에 비해 크기가 매우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당시의 관복 및 요대의 보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학술적자료적 가치도 높다. 따라서 요대함이 이미 지정된 요대와 함께 보존될 때, 해당 유물의 가치가 동반 상승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보존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어 이번에 추가로 보물로 지정했다.

 

김정희가 그린 불이선란도 /문화재청
김정희가 그린 불이선란도 /문화재청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10대 때부터 묵란(墨蘭)을 즐겨 그렸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난초를 서예의 필법으로 그려야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달준(達夋)이라는 인물에게 그려준 이 작품은 화면 가운데 난초를 옅은 담묵으로 그리고, 주변에 회화사상 보기 드문 수준의 높은 격조(格調)를 담은 제발(題跋)4군데에 썼다. 글씨는 여러 서체를 섞어 썼으며, 글자 모양과 크기에 차이가 있다.

19세기 문화사를 상징하는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작품으로 높은 예술적학술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인장을 통해 전승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보광사 동종 석왕사 소장 불조삼경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