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연속”…고대인 토우에 담긴 사상
“죽음은 삶의 연속”…고대인 토우에 담긴 사상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9.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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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토우토기 특별전…가까운 이를 보내며 준비한 마지막 선물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인가.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죽음의 다음 단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세의 세계가 끝나면 내세의 세계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혼이 사후세계에서 현세와 동일한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계세(繼世)사상을 믿었다.

1,600년전 신라와 가야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다음 세상의 삶을 살아가도록 무덤에 많은 껴묻거리(부장품)를 묻었다. 그들에게 장송의례는 현세의 삶을 마감하고 사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의례였다. 산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사후에 살수 있도록 새, 상서로운 동물, , , 수레, , , 등잔 등의 토기를 만들어 무덤에 넣어두었다.

 

사람 모양의 토우 /박차영
사람 모양의 토우 /박차영

 

그 껴묻거리들이 현세인들의 발굴작업에 의해 땅위로 올라왔다. 암흑 속에 천년 이상 묻혀 있던 토기들은 타임머신처럼 나타나 고대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특별전(5. 26.~10. 9.)에 신라·가야의 토기 3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고대신라의 경주 황남동 고분, 아라가야의 유산인 함안 말아산 45호분에서 나온 토우와 토기들이 집중 조명되었다. 특별전은 고대인들의 장송 의례에 사용되었던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를 통해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마음을 헤아리며 당시의 사회상을 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 모양 토기(3~4세기, 울산중산리 ID-15호 무덤) /박차영
새 모양 토기(3~4세기, 울산중산리 ID-15호 무덤) /박차영

 

새 모양 토기

고대 농경사회는 새를 숭배했다. 새는 곡식의 씨앗을 물어다 주는 곡령(穀靈)으로서 풍요를 상징하고,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매개자로 장례에 사용되었다.

새는 하늘 높이 미지의 곳으로 날아 오른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대인들은 영혼을 하늘로 날아가게 하려고 새 깃털을 장례에 사용했다고 한다. 새 모양의 토기는 3세기 후반 경주에서 시작되어 4세기 이후 주변으로 퍼졌다.

 

상서로운 동물 모양 토기(신라 6세기, 경우 미추왕릉 C지구 3호분) /박차영
상서로운 동물 모양 토기(신라 6세기, 경우 미추왕릉 C지구 3호분) /박차영

 

상서로운 동물

고대인들은 좋은 일을 일어나게 하는 상상의 동물을 창조했다. 용이 가장 대표적이다. 신라에 용무늬가 나타난 것은 눌지왕 8(424)에 고구려와 사신을 왕래한 이후다. 이후 용이 영혼을 태워 승천한다는 도교적 내세관이 퍼졌다. 높이 솟은 동물의 뿔은 권위를 상징한다.

 

말머리 모양 뿔잔(5세기, 부산복천동 7호분) /박차영
말머리 모양 뿔잔(5세기, 부산복천동 7호분) /박차영

 

뿔잔 토기

삼국유사 탈해왕조에 탈해왕이 백의(白衣)에게 물을 떠오라 시켰는데 도중에 그 물을 몰래 마시자 뿔잔이 입에 붙었다고 했다. 뿔잔은 영험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장례에 사용되었다.

 

신발 모양 토기 (5세기, 부산 복천동 53호분) /박차영
신발 모양 토기 (5세기, 부산 복천동 53호분) /박차영

 

짚신과 함께 바치는 잔

신발은 이별을 의미한다. 짚신을 흙으로 빚어 그 위에 잔을 올린 토기가 있다. 부산 복천동 53호 고분에서 나왔다. 아마 먼길을 떠나는 이의 걸음을 기원하는 술잔일 것이다.

 

말 탄 사람 토기(6세기, 경주 금령총) /박차영
말 탄 사람 토기(6세기, 경주 금령총) /박차영

 

말을 태워 보내는 마음

말은 탠생과 죽음을 알리는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말은 전쟁과 운송에 중요한 자원으로, 무덤의 껴묻거리 소재로 등장했다. 말 탄 사람, 말 모양의 토기가 무덤에서 출토되었고, 말 그림이 토기에 새겨지기도 했다. 말은 고대인에게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수레바퀴장식 뿔잔 /박차영
수레바퀴장식 뿔잔 /박차영

 

운송수단 수레 토기

삼국사기 열전에 문무왕이 김유신의 공을 치하하며 상으로 수레와 지팡이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수레는 물건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고대에 아주 귀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수레 모양을 한 토기가 무덤에 매장되었다. 대부분 바퀴만 뿔잔에 결합해 상징적으로 제작되었다. 멀리 가는 길에 편히 타고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주형 토기 /박차영
주형 토기 /박차영

 

물길을 가는 배

고대인들은 저승길에 바다와 강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덤에 배를 넣은 것은 물을 건너 천국으로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집 모양 토기(왼쪽은 가야, 오른쪽은 신라) /박차영
집 모양 토기(왼쪽은 가야, 오른쪽은 신라) /박차영

 

집 모양 토기

집은 쉬는 곳이다. 죽은 후에도 집에서 편안한 삶을 살라고 집모양 토기를 무덤에 넣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대 삼한의 집은 초가집과 흙방으로 지었으며, 무덤처럼 생겼고 출입문이 위에 있다고 했다.

 

등잔형 토기 /박차영
등잔형 토기 /박차영

 

등잔 토기

무덤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잔모양의 토기를 넣었다. 영원히 살아갈 공간에 불을 밝히라는 것이다. 잔이 여러 개 달린 등잔 토기도 있다.

 

현악기를 타는 모양의 토우 /박차영
현악기를 타는 모양의 토우 /박차영

 

현악기

현악기를 연주하는 토우가 있다. 나해이사금(재위 196~230)과 자비마립간(458~479) 때 금()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신라에 현악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야 사람은 우륵이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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