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묵시록, ‘백년의 고독’
라틴아메리카의 묵시록, ‘백년의 고독’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9.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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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역사적 혼란 속에 부엔디아 가문의 6대 가족사…마술적 사실주의 개척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은 남미 콜롬비아에서 부엔디아(Buendía) 가문이 6대를 거치며 겪는 험난한 세월을 그린 가족 소설이다. 박경리의 토지처럼 우리나라의 대하소설이 사실에 토대를 두었다면 백년의 고독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면서도 신비와 환상이 겹쳐지는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t) 스타일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배경은 남미대륙 북쪽에 있는 콜롬비아다. 작가는 마꼰다(Macondo)라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했다. 평론가들은 마르케스가 어렸을 때 살았던 아라까따까(Aracataca)가 마꼰다의 모델이라고 본다. 시기는 콜롬비아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1819년 무렵부터 1930년대까지를 관통한다. 마꼰다를 일으킨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서 멸종 단계인 아우렐리아노까지 6대의 세대가 100여년의 세월을 내려간다. 출판사가 책 앞 부분에 제공한 가계표를 보지 않으면 사람 이름이 헷갈리고, 흐름을 잡기 어렵다

책표지(민음사)
책표지(민음사)

 

콜롬비아는 독립할 때 지금의 베네수엘라, 파나마, 에쿠아도르를 합친 그란콜롬비아였다. 그러나 금새 지방의 군벌 까우디요들이 독립하거나 미국과 결탁하며(파나마) 네 개로 쪼개졌다. 콜롬비아에선 독립후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다른 남미 국가보다 더 처절하게 투쟁했다. 자유당이 집권했을 땐 예수회를 추방하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다가 보수당이 잡으면 농장과 주민을 모두 자기네 이념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게릴라 활동을 벌였지만 그들 스스로도 보수적 까요디아와 다를 게 없었다.

소설 백년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역사를 따라 흐른다. 마꼰도는 창업자 호세 아르까디오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마꼰도를 거점으로 한 자유주의적 까우디요로 부상한다. 부엔디아 가문이 지역군벌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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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는 콜롬비아 공식역사에 등장하지 않은 사례들을 소설에 옮겨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집시 그룹이다. 작가는 멜키아데스라는 집시를 등장시켰다. 집시는 인도에서 발원해 유럽을 전전하는 소수인종인데 소설엔 집시 우두머리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코드문자를 남겨놓는다. 마지막 생존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인도 고유문자인 산스크리트어로 된 양피지 문자를 해독하면서 가문의 비밀이 드러난다. 콜롬비아에는 지금도 집시의 후예가 8,000명 정도 있다는 연구자료가 있다.

영국에서 해군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소설에서 콜롬비아 해안을 약탈한 한낱 해적으로 등장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1899~1902년에 있었던 천일전쟁(Thousand Days' War)의 자유주의 대항군 장군으로 묘사된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콜롬비아는 10만명 이상의 인명과 수많은 재산 손실을 입어야 했다. 소설에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네에를란디아 조약을 체결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천일전쟁이 끝난 후에도 콜롬비아는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지만 새로운 도전이 나타났다. 미국의 개입이다. 미국은 콜롬비아가 내전을 치르는 동안에 무질서를 평정한다는 이유로 전함을 파견해 파나마를 독립시켰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은 미국 자본이다.

마꼰도를 결정적으로 피폐하게 한 것은 자본주의였다. 공동체로 조직된 마꼰도는 자본에 의해 타락했다. 영화가 나오고 자동차가 도입되고 철도가 들어온다. 부가 넘쳐나면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타락한다.

미국 자본가는 마꼰도에 거대한 바나나 농장을 건설했다. 미국인 농장주는 마꼰도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떼먹었다. 노동자 폭동이 일어났고 보수주의 정부는 자본가의 편을 들어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를 학살했다. 바나나 학살(Banana Massacre)192812월 미국 농업회사 유나이티드프룻컴퍼니가 경영하는 시에나가 마을에서 발생했는데, 그 때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죽은 사람의 숫자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사망자의 범위가 47명에서 2,000명까지 넓다. 마르케스는 소설에서 3천명이 죽었다고 썼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위키피디아
가브리엘 마르케스 /위키피디아

 

백년의 고독은 스페인어 ‘Cien años de soledad’1967년에 아르센티나에서 출간되었다. 영어로는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공히 백년의 고독이라고 번역했다. 굳이 고독이라고 번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년의 고립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2014)는 이 소설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이 현실의 세계를 뛰어 넘어 초현실적 마법의 세계를 오간다. 심리적, 신화적, 미신적, 환상적 세계가 현실의 세계와 오버래핑한다.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가 공존한다. 우르술라는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옌디아의 영혼은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삶 속에 신화가 있고, 마술이 있고, 초현실이 있다. 마꼰도는 현실의 도시이자 환각 속에 자리잡은 인간세계다. 우르술라, 아마란따, 페르난다로 이어지는 원시 모계의 전통이 강하게 드러난다.

소설은 집시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적어 놓은 예언으로 끝난다. 멜키아데스의 예언에 따르면 근친상간의 마지막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돼지꼬리를 달고 세상에 나와 개미떼에 잡아먹힌다.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근친상간을 통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는다. 아이가 죽고 아우렐리아노가 양피지의 예언을 해독하는 순간 마꼰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족속은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날 수 없다"는 예언과 함게 마꼰도의 존재는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게 된다. 개척자에 의해 도시가 열리고 동족상잔과 학살, 근친상간의 죄악으로 타락한다. 소설은 라틴아메리카의 창세기이자 묵시록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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