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일행 후손이 한국에 있다는데…
하멜 일행 후손이 한국에 있다는데…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07.23 16: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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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명의 네덜란드인, 조선에 잔류가능성…병영 남씨를 이루었다는 주장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1653816일 조선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승무원 64명중 28명이 죽고 34명만 살아 남았다. 이들중 1명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병사했다.

1656년 전라도 강진의 병영(兵營)으로 내려올 때 33명이었다. 이들 33명은 1663년까지 7년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강진에서 11명이 숨졌다. 그 이유에 대해 하멜은 밝히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때 조선에 닥친 대기근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22명은 대기근으로 한군데에 수용하기 벅차 16632월에 분산배치되었다. 여수 좌수영에 12, 남원에 5, 순천에 5명이었다.

여수 좌수영에 배치되었던 네덜란드인 중에서 하멜을 포함해 8명이 166694일에 탈출했다.

하멜은 네덜란드 상관이 있는 일본 데지마(出島)에서 남은 8명을 송환해달라고 일본을 통해 외교적 압박을 넣었다. 하멜이 송환을 요구한 8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해 7명이 후에 네덜란드로 귀국했다고 한다.

 

여기서 숫자가 맞지 않는 대목이 있다. 강진에 유배온 22명중 8명이 탈출하고, 7명이 나중에 송환되었다. 그중 1명이 병사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6명의 존재가 불투명하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멜은 이들을 왜 귀국시켜달라고 상환에 요구하지 않았을까. 송환요청한 8명중 병사했다는 1명도 생사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송환을 거부한게 아닐까.

추정컨대, 하멜 일행 가운데 6~7명이 조선에 잔류했을 가능성이 남는다.

 

하멜 표류기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공백에 대해 다양한 추론이 나온다.

강진군청에 따르면, 그들이 약 7년간 거주했던 강진의 병영면 일대에 하멜 일행의 일부가 잔류해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흔적이 남아있다. 1)

그들 가운데 조선여인과 결혼해 후손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 하는 현지주민들의 증언이 있다.

강진 병영 사람들이 네덜란드 나막신과 모양이 흡사한 나막신을 신었고, 나막신 제조에 관련된 전승이 강진일대에 많다고 한다.

강진에서는 한국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관개시설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에서는 굉장히 일반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하멜 일행중 사라진 6~7명이 조선에 정책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조선에 잔류한 네덜란드인들은 조선 여인과 결혼해 후손을 남겼고, 그 후예들이 남씨 족보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남()의 성을 갖고 후손을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효종이 이들 모두에게 남()씨을 하사했다는 주장이 있다.

<효종실록>에 하멜 일행을 남만인南蠻人)이라 표현했고, “청나라 사신이 왔을 때 남북산(南北山)이라는 자가 길에서 고국에 돌려보내주길 청했다고 했다. 2)

따라서 효종은 이들 모두에게 남씨 성을 주었다는 것이다.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 /기념관 블로그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 /기념관 블로그

 

한발 더 나가 병영 남씨(兵營 南氏)가 하멜 일행의 잔류인원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최초의 남씨 족보는 남구만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하멜 일행은 남씨족보에 편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계열에서는 나름대로의 가승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의령남씨 대동보에 분산 입록되었다. 이들은 의령남씨 충간공파에 200여호 1,000명이 현존하며 사천백공파에 150여호 800명이 현존한다.

이들은 초기에는 강진군 병영면을 중심으로 세거했으며 이후 1670년을 전후하여 여천, 순천지역에 잔류하였고 다른 일파는 60년이 지난 1730년경 전라도 나주지역으로 집단 이주했다.

남원과 여수, 순천의 계파는 앞의 충간공 남지의 5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후대에 입록되었다. 이중 김일성을 보좌한 북한 노동당 남일은 사천백공파의 후손으로 입적되었다.

이들 가계에서 타가문으로 출가한 성씨는 주로 배씨, 허씨, 양씨, 강씨, 마씨 등이며 이들 가계출신도 비록 모계에 의해 형성된 성씨이기는 하지만 피부색, 골격 등에서 서구인의 풍채가 현재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음이 조사되었다.

한편 현재 강진에는 하멜일행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3명 거주하고 있으나 이들은 위의 충간공파, 사천백공파의 집단이주시기에 타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현지에 잔류한 일파로 추정되며 실재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족보류에도 입록이 되어 있지 않다.

 


1) 강진군청 홈페이지, 하멜의 흔적

2) 효종실록, 효종 6(1655) 4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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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애미 2023-08-02 21:23:15
씨발 말같은 소리를헤야지, 지금 몇씹 몇백년이 쳐 지났는데 ㅏㅇ직도 그탓이냐? ㅋㅋ 조선 수준 알만하다 애미없는개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