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기 좋은 우이령길
맨발로 걷기 좋은 우이령길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9.16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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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1사태 이후 통제, 2009년 개방…자연과 숨쉬는 4.5km

 

우이령길을 길을 걸었다. 말로만 가본다고 하던 게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인터넷 사전예약을 해두었다는 반가운 소식에 응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부랴부랴 행차했다.

연두색으로 표시된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뚫리면서 접근이 쉬워졌다. 종점 북한산우이역에 내리면 바로 우이령길 진입로가 나온다.

입구에서 2km쯤 걸어가면 우이탐방지원센터다. 그곳에서 경기도 양주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 거리는 4.5km. 길이 부드럽게 깔려 있다. 무장공비를 잡기 위해 놓은 길이어서 잘 닦여 있다. 포장이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평평한 길만 보이면 콘크리트든, 아스팔트든 덮어버리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다. 시멘트산업과 유화산업을 먹여 살린다는 이유로 전국의 도로가 숨도 쉬지 못하게 밀봉되었지만, 이곳엔 마사토가 깔려 있다. 우리는 입구서부터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요즘 맨발걷기가 유행이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이유불문 따라했다.

우이령길 /박차영
우이령길 /박차영

 

우이령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까지로, 도봉산과 북한산의 사이에 있는 길이다.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오른쪽이 도봉산, 왼쪽이 북한산이다.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해서 소귀고개, 즉 우이령(牛耳嶺)이라고 했다고 한다. 고개 아래에서 도봉산의 오봉과 북한산의 상장봉을 올려다 보면 두 봉우리가 소의 귀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양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소로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차량이 다니도록 길을 닦아 작전 도로로 활용했고, 파난민에겐 피난길로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1968121일 북한의 무장공비가 서울에 침투한 사건 이후 이 길은 일반인의 통행이 통제되었다. 40여년간 막혔던 금단의 길은 2009710일에 열렸다. 당시 길을 열면서 탐방예약제를 실시하며 탐방객 수를 제한했는데 그 이유는 환경보호였다. 길의 관리주체가 국방부에서 환경부로 넘어갔다. 우이령길에는 북한산국립공원내 법정보호종의 약 46%가 서식한다고 한다.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보호를 위해 사람의 수를 제한한 것이다. 하루 수용인원은 1,190여명이다.

 

우이탐방지원센터 /박차영
우이탐방지원센터 /박차영

 

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확인을 한 이후 조금만 더 가면 고개마루가 나타난다. 그곳에 멋들어지게 서 있는 것이 대전차 장애물이다. 남북 대치의 상징이다. 전시에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르 도로로 떨어뜨려 적의 탱크가 진입하는 것을 막는 원시적인 군사시설이다. 지금은 지뢰를 깔거나 로켓포를 쏘아 적 전차를 막을 터인데, 70년전에 사용하던 고전적 유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전차 장애물 /박차영
대전차 장애물 /박차영

 

고갯길을 넘어가면 경기도다. 야생동물 회피시설이 눈에 띤다. 북한산국립공원 주변에도 곰이 나타난다고 한다. 곰이 나타나면 잽싸게 철제탑으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곰은 이 시설을 올리 오지 못할까, 궁금하다.

 

야생동물 대피시설 /박차영
야생동물 대피시설 /박차영

 

더 내려가면 오봉전망대가 나온다. 도봉산의 오봉은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해발 660m. 옛적에 한 마을에 총각 다섯이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에게 장가를 들기 위해 맞은편 상장능선에서 바위를 던져 올리기 시합을 했는데, 그때 올린 바위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지질학적으로는 중생대 쥐라기에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타고 올라오다가 식어서 굳은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화강암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깎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형성했다. 오봉 봉우리에는 침식된 둥근 암석이 올려져 있다. 처음에는 한 덩어리였는데 냉각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표면에 절리가 생기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토르(tor)라고 한다. 똑바로 서 있는 석탑이라는 뜻이다.

우이령길 끝자락에 족욕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 한줄기를 끌어들여 만들었는데 피로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발을 씻고 잠시 쉬었다가 발을 말리고 신발을 신었다.

 

도봉산 오봉 /박차영
도봉산 오봉 /박차영

 

길 오른쪽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석굴암이 있다. 들르지는 않았다. 조선 세종 때 설암 관익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지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을 당했으나 그후 석굴을 확장하고 대웅전을 신축해 새로운 면모를 갖췄다고 한다.

교현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마을이 나오고, 담벼락에 재미있는 글귀가 쓰여 있다. ‘우이독경() 이야기. “우이독경은 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동안 소통하지 못한 우이령길과 그 의미가 상통합니다. 양주에서 시작하는 우이독경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어려움을 버리고 가볍게 소통할수 있는 길을 되찾아가는 우이령길로 바뀌었습니다.” 피식 웃으면서 산행을 마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하산길 담벼락의 한 말씀 /박차영
하산길 담벼락의 한 말씀 /박차영
우이령길 구간 /네이버지도
우이령길 구간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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