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슬픈 전설 깃든 경박호
발해의 슬픈 전설 깃든 경박호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09.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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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폭발로 생긴 호수로, 경치가 빼어나…발해를 무대로 한 다양한 홍라녀 전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는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에 위치해 있었다. 요사(遼史)에는 상경성을 홀한성(忽汗城)이라 했다. 성에는 홀한하(忽汗河)가 흐르는데, 지금 이름으론 헤이룽강(아무르강)의 지류인 무단강(牧丹江)이다. 발해 유적지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동쪽으로 30km쯤 되는 곳에 징푸호(鏡泊湖)라는 천하 절경의 호수가 있다. 당나라 시대엔 홀한해(忽汗海)라고 했다. 옛기록에는 미타호(眉沱湖)라고도 불렀는데, ·러 국경의 흥개호(興凱湖, 싱카이호)도 미타호라고 한 점에서 두 호수를 혼동한 듯 싶다. 한국사람들은 한자 그대로 읽어 경박호라고 한다. 강릉 경포호처럼 거울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이다.

경포호가 해류가 오랫동안 모래를 퇴적시켜 형성한 석호인데 비해 경박호는 화산이 터져 쏟아져 나온 용암이 강물을 막아 생긴 언색호(堰塞湖). 무단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데, 호수도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북쪽에서 용암이 자연 댐을 형성해 강물을 막았다. 호수의 물이 넘친 곳에선 폭포가 만들어졌는데, 츠수이루폭포(吊水樓瀑布). 높이 40m의 이 폭포는 중국 10대 폭포에 들어간다.

 

경박호 /위키피디아
경박호 /위키피디아

 

호수는 약 1만 년 전에 발생한 화산 폭발로 생성되었다. 남북으로 길이 45km이고 동서 폭은 6km. 총 면적은 95이고 저수량은 163,000. 호수의 북쪽은 깊은데 비해 남쪽은 얕으며, 최대 수심은 62m이다. 호수는 광시성의 구이린(桂林)처럼 석회암 절벽으로 유명하고 40종의 물고기와 민물 산호가 서식한다.

경박호는 경치가 빼어나 중국 항저우(杭州) 서호(西湖)에 빗대 북국의 서호로 불린다. 1983년 여름에 덩샤오핑이 다녀갔으며, 중국 정부는 이 호수를 풍치지구로 지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되었다.

 

경박호의 모양새 /구글지도
경박호의 모양새 /구글지도

 

이 호수엔 발해의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주인공은 홍라(紅羅)라는 이름의 여인(홍라녀)이다. 신현규의 연구에 따르면 홍라녀의 전설은 13가지 버전이 있다. 13종 전설의 공통점은 경박호라는 장소, 발해 멸망 전후라는 시기에다 권력, 사랑, 여인이라는 3대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 몇가지를 추려본다.

경박호에 사는 어부의 딸 홍라녀가 발해군왕의 청혼을 거절한다.

발해군왕의 딸인 홍라녀가 경박호의 퉁소를 부는 어부를 사랑하다 죽는다.

발해군왕의 딸인 홍라녀가 거란과 전투하다가 마침내 왕이 된다.

발해군왕의 여동생인 홍라녀가 음탕해 독살당한다.

홍라녀가 발해군왕의 며느리가 되어 거란군사를 격퇴시키다가 전사해 경박 폭포에 안정했다.

경박호 어부의 딸인 홍라녀와 녹라녀(綠羅女)가 쌍둥이 형제에게 시집가서 절개를 지킨다.

발해군왕의 딸 홍라녀는 경박호의 어부를 사랑해 몸을 호수에 던졌다. 어부는 경박호의 교룡이기에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삼형제가 있었는데, 경박호 용왕의 딸 홍라녀의 미모에 반해 호수 근처에 집을 지어 살다가 늙어 죽어 삼형제의 무덤이 생겼다.

이외의 버전도 앞의 전설을 골격으로 약간의 변형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홍라녀와 녹라녀의 전설이다.

 

경박호의 츠수이루폭포 /위키피디아
경박호의 츠수이루폭포 /위키피디아

 

홍라와 녹라는 어부의 딸로, 자매 간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두 자매는 경박호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날 갑자기 세찬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혀 둘다 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순간에 배를 타고 나타난 한 젊은이가 두 자매를 구출해 주었다. 그의 이름은 싸부리진(萨布里金)이라 했다. 그후 이 잘 생긴 이 젊은이는 두 자매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두 자매는 이 젊은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서로에게 이 젊은이에게 시집을 가라며 다투었다. 젊은이는 몰래 자매의 다투는 소리를 듣고, 어느날 자매를 집에 초대했다. 자매가 청년의 집에 가니, 두 청년이 걸어나왔는데 쌍둥이 형제였다. 동생의 이름은 싸부리인(萨布里銀)이었다. 두 자매는 두 형제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마침 동단왕(東丹王, 거란의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 후 세운 괴뢰국)이 홍라와 녹라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둘을 입궁시키려 했다. 동단왕은 사람을 파견해 두 형제를 죽여버렸다. 자매는 너무 슬픈 나머지 경박호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홍라녀 삽화 /byshihui.com
홍라녀 삽화 /byshihui.com

 

일종의 열녀 신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 앞잡이의 유혹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킨 우국지녀로 해석한다.

경박호는 붕어로 유명하다고 한다. 발해 군왕들은 경박호에서 잡은 붕어로 붕어찜을 즐겼다고한다.

 


<참고한 자료>

발해의 경박호 홍라녀 전설 연구, 신현규, 1995, 한국민속학회

Wikipedia, Jingpo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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