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 절벽 위에 삼척도호부 관아
오십천 절벽 위에 삼척도호부 관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0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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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지정 후 복원작업 서둘러…죽서루 동편에 선사시대 성혈도

 

몇 년만에 강원도 삼척을 간 참에 죽서루를 들렀더니, 오른쪽에 큰 기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2022년말에 1단계 복원작업을 마친 삼척도호부 관아였다.

조선시대에 삼척은 영동지방의 행정중심지였다. 삼척은 조선 태조 2(1393) 삼척부로 승격되고, 태종 13(1413) 삼척도호부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삼척도호부엔 정3품의 부사(府使)가 행정을 총괄하고, 그 아래에 향교의 교수(6), 삼척 포진의 영장(營將, 3품 무관)등 많은 행정기관과 관원들이 배속되었다. 강릉에서 경북 평해까지 15개 역참을 관장했던 찰방(察訪, 6)도 삼척에 주재했다. 삼척도호부는 고종 32(1895) 삼척군으로 개명되었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이후 삼척도호부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1934년 철거되었다. 지상의 건물을 없어져도 땅속에 있던 기초 골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차에 걸쳐 정밀발굴조사를 벌여 세종실록 지리지 등 문헌기록에서 보이는 삼척읍성의 실체를 확인했다. 고려말 1386년에 축조된 판축토성(7.4m, 잔존길이 33m)과 조선전기 1510년에 축조된 석성(3.5m, 잔존길이 30m)의 실체가 모두 드러났다.

 

삼척도호보 진주관 /박차영
삼척도호보 진주관 /박차영

 

복원에 앞서 문화재청은 202112월에 삼척도호부 관아지를 사적으로 지정했다. 삼척시는 우선 삼척도호부 관아터 가운데 중앙관리들이 왔을 때 객사로 쓰던 진주관등 건물 8동을 복원했다. 진주관(眞珠觀)은 객사의 중심건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행해 절을 하던 망궐례(望闕禮)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진주는 삼척의 옛이름이다.

특이한 점은 객사의 건물에 이 아닌 을 썼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오신 높은 분들이 오십천과 죽서루(竹西樓), 응벽담(凝碧潭) 등의 빼아난 경치를 보고 즐기다 가라는 취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척도호부 관아 내 응벽헌 /박차영
삼척도호부 관아 내 응벽헌 /박차영

 

조선 정조 임금은 금강산과 관동팔경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김홍도에게 강원도에 다녀와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김홍도는 어명을 받고 삼척에 와서 죽서루와 오십천, 절벽의 그림을 그려 정조에게 바쳤다. 정조는 그 그림을 보고 이런 칠언시를 썼다.

彫石鐫崖寄一樓(조석전애기일루)/ 樓邊滄海海邊鷗(누변창해해변구)/ 竹西太守誰家子(죽서태수수가자)/ 滿載紅粧卜夜遊(만재홍장복야유)” (다듬고 절벽 쪼아 세운 누각 하나/ 누각 옆은 바다이고 바다에는 갈매기 노네/ 죽서루가 있는 고을의 태수는 어느집 아들인가/ 미녀들 가득 싣고 밤 세워 뱃놀이 하는구나)

임금이 차마 태백산맥을 넘어 죽서루까지 가서 뱃놀이는 못하지만, 그 안타까움을 시로 지어 대신한 것이다. 임금은 죽서루에 미녀들과 뱃놀이하는 삼척 부사를 부러워 했을 것이다.

 

 

송강정철가사의 터 /박차영
송강정철가사의 터 /박차영

 

진주관의 서쪽 건물이 응벽헌(凝碧軒)이다. 1518(중종 18) 삼척부사 남순종이 창건했다. 오십천 절벽에 바짝 붙어 있어 경치가 좋다. 삼척부사로 온 신광한은 강산의 아름다움은 더하거나 뺀 것이 없는데도 이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강산이 더 아름다워졌다며 응벽헌에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삼척도호부 관아 앞에 송강 정철 가사 기념비가 서 있다. 송강 정철(鄭澈)이 관동별곡에서 죽서루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죽서루 용문바위 /박차영
죽서루 용문바위 /박차영

 

죽서루 바위에사사대 암각화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죽서루 동쪽에 구멍이 뻥 뚫린 바위가 있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죽어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 오십천으로 뛰어들었다. 용은 죽서루 벼랑에서 놀다가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바위를 뚫고 나가 생긴 바위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용문바위 위에 올라가면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성혈(性穴)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어 풍요, 다산, 생산을 상징하는 원시신앙의 형태라고 추측했다. 용문바위의 성혈은 모두 10개 이며, 직경 3~4cm, 깊이 2~3cm 크기다.

 

죽서루 성혈 /박차영
죽서루 성혈 /박차영

 

삼척도호부 관아는 삼척 부사가 호령하던 동헌을 마저 복구해야 끝이다. 2024년 추가 복원계획이 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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