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기억이 부활의 원동력, 지우펀
슬픈 기억이 부활의 원동력, 지우펀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0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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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사건 다룬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몰락하던 폐광지가 관광지로 변신

 

지우펀은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의 하나다. 타이페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20분정도 걸리는 곳인데도 사람들이 어깨를 비비며 시장골목을 지나가야 한다. 이 산중턱에 무슨 볼거리가 있길래, 버스가 길을 메우고 외국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것일까.

대만 신베이(新北)시 루이팡(瑞芳)구에 있는 지우펀(九份)은 아홉집이 살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1430년대에 마을 사람들은 이 곳에 사금을 발견했고, 이후 네덜란드, 일본인들이 금 채굴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청나라 말기에 금을 캐기 시작해 일본 점령기에 이곳의 금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2차대전에 패망하고 물러갈 무렵에, 금광 산업은 쇠퇴기에 접어 들었고, 1971년엔 완전히 폐광되었다. 광산촌이었던 지우펀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잊혀진 마을이 되어 갔다.

 

지우펀 전경 /위키피디아
지우펀 전경 /위키피디아

 

마을이 소생한 것은 1989년에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가 이 곳을 배경으로 촬영하면서였다. 량차오웨이(梁朝偉) 주연의 영화는 1947년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인을 학살한 2.28 사건을 소재로 했다. 중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이후 지우펀은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패광지가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로 동해안 정동진이 부상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영화 ‘비정성시’ 간판이 걸린 수치루 거리 /維基百科
영화 ‘비정성시’ 간판이 걸린 수치루 거리 /維基百科

 

2·28 사건은 1947228일부터 같은 해 516일까지 대만 전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로, 대만의 정치, 사회구조의 모순을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되었고,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중국 영토로 회복되었다. 대만에는 명나라 말기에 정성공(鄭成功)의 침공 이후 본토에서 건너온 한족의 후손인 본성인과(本省人)1945년 수복 이후 새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외성인들은 본성인들을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라고 의심했고, 본성인들은 외성인들이 갑자기 등장해 지배자인 것처럼 군림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발단은 타이페이시의 어느 담배노점상에서 일어났다. 노점에서 담배를 팔던 여인이 담배공사 요원의 단속에 걸려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단속에 항의하며 충돌이 일어났고, 단속요원은 경찰서로 도주했다. 외성인 경찰이 본성인 시민을 폭행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본성인들은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에 발포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당시 난징 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장제스는 국민당 군대를 파견했다. 국민군의 강경한 진압으로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수는 지금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8,000에서 28,000명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건이 있지 2년후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마오쩌둥의 공산군에 밀려 본토를 내놓고 대만으로 탈출했다. 대만의 토박이들은 마지못해 장제스의 부대를 맞았던 것이다.

 

지우펀 지산제 /박차영
지우펀 지산제 /박차영

 

장제스 부자가 대만을 통치할 때 2·28 사건은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당 정권도 영원하지 않았다. 1988년 본성인 출신이자 2·28 사건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었던 국민당원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에 취임하면서 이 사건도 금기사항에서 해제되었다.

영화 비정성시는 이런 정치적 흐름을 타고 제작되었다. 영화 속 지우펀의 고풍적인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이 곳은 금새 대만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그후 지우펀은 관광 마을로 탈바꿈했으며, 중국식 찻집, 까페, 기념품 가게 등이 지어졌다.

2001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우펀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과 잡지들은 지우펀을 소개할 때 이 스토리를 언급했고, 일본인들이 이 곳에 몰려들게 되었다. 다만 이 영화의 제작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우펀을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지우펀 모습 /박차영
지우펀 모습 /박차영

 

지우펀의 상가거리(九份老街)는 작은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우리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한다. 중국 고유의 야릇한 향료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가장 번화한 곳은 지산제(基山街)이고, 좁은 계단을 따라 홍등이 주렁주렁 내걸린 곳이 수치루(竪崎路). 지우펀은 지산제로 시작해서 수치루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버스나 택시에서 내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바로 지산제다. 입구에 들어서면 좁은 골목에 기념품 가게들을 비롯해서 지우펀의 명물인 땅콩 아이스크림과 소시지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수치루에는 가파른 비탈길에 80~90년 전에 지어진 낡은 목조 건물과 건물을 따라 걸려 있는 수많은 홍등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낮에는 고즈넉한 매력을 자랑하지만 해가 진 후 홍등에 불이 들어왔을 때 색다른 매력을 느낄수 있다. 계단의 양쪽으로는 찻집과 음식점들이 자리해 있다. 찻집에서 지룽산(基隆山)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해질 무렵 석양이 아름답다.

 

지우펀에서 내려다본 모습 /박차영
지우펀에서 내려다본 모습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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