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역에서 만나는 효령대군
서울 방배역에서 만나는 효령대군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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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과 청권사라는 사당이 공존…동생 세종에게 임금 자리 양보한 미덕 기려

 

서울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를 나오면 조선 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4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묘와 사당이 나온다. 대로 이름도 효령로다. 공식명칭은 효령대군 이보 묘역’(孝寧大君 李補 墓域), 서울시 유형문화재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당의 이름은 청권사(淸權祠),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과 부인 예성부부인(蘂城府夫人) 해주정씨(海州鄭氏)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 왕실을 이룬 전주 이씨 가운데 효령대군파의 사당이기도 하다.

 

청권사 /문화재청
청권사 /문화재청

 

영조가 12(1736) 어명을 내려 경기감영이 사당을 지었다. 정조 13(1789)에 청권사(淸權祠)란 편액을 왕으로부터 받은 사액(賜額) 사당이다.

청권(淸權)이란 말은 논어에 나오는 중국 고사 신중청 폐중권’(身中淸 廢中權)의 준말이다.

중국 주나라 때에 태왕(太王)이 장남 태백(太伯)과 차남 우중(虞仲)을 뒤로 두고 셋째 아들인 계력(季歷)에게 양위하려 하자, 두 형제가 부왕의 뜻을 헤아려 형만(荊蠻, 장강 이남의 땅)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은거했다. 공자는 이 미덕을 후일에 높이 칭송했고, 그 기록에 논어에 있다. 임금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한 효령대군을 비유한 것이다.

 

청권사의 효령대군 부부 묘소 /문화재청
청권사의 효령대군 부부 묘소 /문화재청

 

효령대군은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했으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다. 대군은 특히 성리학이 득세하고 숭유억불 시책이 펼쳐지던 조선 초기에 유불조화론을 주창했다. 그는 불교에 독실했으며, 세조 9(1464)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圓覺寺)를 짓게 되자 그 역사를 주관했으며, 원각경(圓覺經)을 국역해 간행했다.

효령대군은 1498(성종 17)년에 91세로 세상을 떠나 지금 방배동 자리에 묻혔다. 해주정씨는 그에 앞서 1470년에 죽어 포천에 모셨다가 대군의 묘소로 함께 묻었다.

청권사는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 지붕의 구조로 지어졌고, 면적은 40.

 

청권사 정문 /박차영
청권사 정문 /박차영
청권사 전경 /박차영
청권사 전경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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