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얀트리에 휘감긴 소금창고, 타이난 안핑수옥
반얀트리에 휘감긴 소금창고, 타이난 안핑수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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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약후 영국의 상관이었던 곳…스러지는 옛건물을 리디자인해 관광상품화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에 와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벵골보리수라고도 하는 반얀트리가 건물을 잡아먹을 듯 옭죄고 있다. 건물이 무너질듯하다. 나무 뿌리가 집의 바닥이고, 줄기가 벽이고, 잎이 천장이다. 이름하여 안핑수옥(安平樹屋), 안핑트리하우스(Anping tree house)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남산에 있는 호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반얀트리(Banyan tree)는 무서운 공격력을 갖고 있음을 타이난에서 알게 되었다. 타이난은 타이페이가 대만의 중심이 되기 이전, 청나라 시절에 성도(省都)였다. 안핑수옥은 청나라가 2차 아편전쟁에 패배하고 1858년에 구미 여러나라와 체결한 베이징 조약으로 타이난을 개방하면서 영국의 무역회사 상관이 있던 곳이어ᅟᅥᆻ다.

 

안핑수옥 /박차영
안핑수옥 /박차영

 

1867년에 영국의 테이트 회사(Tait & Company)가 질란디아 요새(안핑고성) 근처에 상관(商館)과 창고를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한자로는 더지양행(德記洋行)이라고 표기했다. 영국회사는 각설탕과 장뇌(좀약)을 거래했다. 주변은 대만해협으로 나가는 석호가 연결되어 있어 창고와 부두가 붙어 있었다. 이곳 창고에서 바로 배로 화물을 옮겨 싣고 내렸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만을 식민화하면서 영국회사에게 나가라고 했다. 일본은 장뇌와 아편을 전매하면서 이곳 창고를 활용했다.

1911년에 일본의 대만총독부는 이곳 건물을 일본염업주식회사 인핑출장소 창고로 사용했다. 건물이 소금창고로 활용되면서 관리가 부실해졌고, 이때부터 반얀트리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국상사 시절의 건물 사진 /박차영
영국상사 시절의 건물 사진 /박차영

 

벵골보리수는 침략성이 강해 주변 땅을 빼앗아 확장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주변엔 다른 식생들이 자라질 못한다. 벵골보리수는 가지에서 뿌리가 나와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습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또 뿌리에서 강한 산을 뿜어내 석회암을 녹인다. 이런 성질 때문에 이곳의 반얀트리는 석회암 성분의 석회반죽으로 지어진 벽을 먹어치우듯 올라갔다. 건물의 벽은 보리수의 뿌리로 얽혔고, 천정은 보리수 줄기로 뻥 뚫리고 나뭇잎이 지붕을 덮었다. 건물이 밀림으로 변해버렸다.

 

안핑수옥 /박차영
안핑수옥 /박차영

 

1945년 중국 정부가 이 건물을 환수했을 땐 이곳을 소금창고로 쓸 수밖에 없었다. 건물은 이후 대만소금제조주식회사의 염장(鹽場)이 되었다. 1981년 리노베이션을 했지만, 벵골보리수가 워낙 성해 더 이상 창고로도 쓸수 없게 되었다.

2004년 타이난시는 디자이너들을 불러 이 건물에 대한 개조작업을 실시했다. 디자이너들이 나무와 옛건물의 조화를 구상해 냈다. 나무잔도를 깔고 철골전망대를 만들었다. 하늘다리보도가 만들어졌고, 바퀴를 돌려 물을 끌어올리는 무자위도 관광용으로 설치되었다.

 

하늘다리보도 /박차영
하늘다리보도 /박차영

 

근처에 주지우잉(朱玖瑩)의 옛집을 리모델링해 안핑수옥과 연계했다. 주지우잉은 한학을 하고 서예에 조예가 있던 관료였는데, 1968년 정년퇴직한 이후 이곳에 살았다.

예쁜 기념품 가게도 만들었다. 스러져 가는 옛 건물을 리디자인해 관광상품으로 만든 곳이다.

 

 

주지우잉 고택 /박차영
주지우잉 고택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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