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에 대한 원죄 인정하기 싫은 호주
원주민에 대한 원죄 인정하기 싫은 호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17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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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반대 기류, 올들어 급격히 상승…원주민 자문기구 설치, 끝내 부결

 

호주 대륙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5만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인류는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인도네시아 열도를 지나 호주로 건너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호주 대륙에는 1788년 영국이 식민화하기 전에 75~125만명의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인이 들어오면서 원주민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 이유는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설명했듯이 서양인들이 죽이고 병원균을 퍼트린 때문이다. 현재 호주 원주민의 인구는 호주 총인구 2,600만명의 3.8%98만명을 헤아린다.

호주 원주민은 인종학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 호주 대륙에 사는 애버리지널(Aboriginal) 과 토레스 해협의 도서민(Torres Strait Islanders)이다. 애버리지널은 250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하나의 조상에서 내려온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에 비해 토레스인들은 6만여명에 불과하며, 인종적으로 뉴기니 등 멜리네시아 계통으로 애버리지널과 다른 인종적 특성을 갖고 있다. 토레스 제도는 퀸스랜드 주의 부속도서로 관리되는데,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788~1930년 사이 호주 원주민 학살지 /뉴캐슬대 홈페이지 캡쳐
1788~1930년 사이 호주 원주민 학살지 /뉴캐슬대 홈페이지 캡쳐

 

250년전 영국인들은 선주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호주 땅을 주인 없는 무주지(無主地)로 간주했다. 그 땅에 살던 최초국민(first peaples)은 동물로 취급했다. 선주민은 영국인들의 학살 대상이었다. 호주 뉴캐슬대학의 연구진1788~1872년 사이에 애버리지널에 대해 150건의 학살사건이 있었으며, 학살된 곳의 지도로 표시해 온라인을 통해 업데이트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호주의 6개 주가 자치권을 획득한 이후에도 원주민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춤을 추는 호주 원주민들 /위키피디아
춤을 추는 호주 원주민들 /위키피디아

 

원주민들은 인간 대우를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원주민의 의견을 표현하는 자문기구를 설치할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해왔다. 이들의 주장이 지난해 5월 정권을 잡은 노동당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원주민을 호주 최초 국민(first peaples)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자문기구로 보이스(Voice)를 신설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1014일 실시되었다. 호주에선 6개 주 가운데 3분의2, 4개 주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헌법을 개정할수 있다.

총선 공약으로 개헌을 내건 노동당은 개헌을 통해 원주민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이스를 설립하면 원주민 생활이 더 나아지고, 국가통합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노동당이 집권한 직후인 지난해만 해도 개헌 찬성 지지율이 80%에 달했다. 원주민이 헌법상 대우를 받을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호주 개헌안에 대한 여론 추이 /위키피디아
호주 개헌안에 대한 여론 추이 /위키피디아

 

하지만 기류가 서서히 바뀌었다. 백인들과 1788년 이후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기득권을 고집한 것이다. 겉으론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원주민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데 개헌으로 이들을 대변하는 헌법 기구까지 만들면 평등이 무너지고 역차별이 생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어떤 이는 자문기구를 만들면 입법과 행정 절차가 늦어진다고 이유를 댔다. 인종에 따라 국민을 구분하는 것으로 사회 분열을 빚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금껏 차별해오다가 막상 동등하게 대우하자니 싫었던 것이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6개주에서 모두 부결이었다. 원주민 비율이 많은 서호주 주에서도 반대표가 60%를 넘었다. 총투표에서 ‘Yes’39.31%, ‘No’60.69%였다.

호주는 오랫동안 백인 중심의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유지하다가 1973년 이를 공식적으로 철폐했다. 호주는 중국인, 한국인 등 황인종에게는 문을 열었지만 피부가 검은 원주민들에겐 땅을 뺏고 학살했다는 원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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