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은 호남의 금강산…수석의 전시장
월출산은 호남의 금강산…수석의 전시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0.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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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 끝자락에 돌출한 바위덩어리…구름다리, 통천문 지나 천황봉에 올라

 

월출산은 영암과 강진 경계에 돌발적으로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덩어리다. 무등산이나 지리산이 높긴 하지만 밋밋하고 흙을 밟고 올라가는데 비해 월출산은 깎아지는 바위산이다. 등산로도 바위틈을 깎아 만들었고, 오르내림이 잦다. 해발고도는 810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을 오르는 발걸음 수로는 1,000m는 족히 넘고도 남을 일이다.

삼국시대에는 월라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렀다. 모두 달이 난다, 달이 뜬다는 뜻이다. 가수 하춘화가 17살에 불렀다는 영암아리랑이 머리에 떠오른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지구 입구 /박차영
월출산 천황지구 입구 /박차영

 

우리는 KTX를 타고 나주역에 내려 영암으로 이동했다. 영암(靈巖)은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이다. 옛적이 어떤 이가 월출산의 바위를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그 바위가 스스로 산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바위 덕분에 영암에는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우리는 천황지구 입구에 도착했다. 산을 쳐다보고 첫 인상은 거대한 바위에 짖눌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숲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이 열렸을 때 찾아본 금강산, 우리의 설악산만큼이나 험악하다. 북한산은 저리 가라는 형세다.

입구에 윤선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고산 윤선도가 1659년 보길도로 유배를 가던 중에 이곳에 들러 시 한수 남겼다고 한다. 내용을 풀어보면, “월출산이 높다하는데,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봉 제일봉을 한 번에 가렸구나/ 그렇다고 실망할 것 없다. 해가 돋아 햇살이 퍼지면 안개는 걷히고 말 것 아닌가

월출산을 임금으로, 안개를 간신으로 빗대어 당시 조정을 비판한 싯구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귀양을 가면서도 풍류를 남겼다. 우리가 간 날은 다행스럽게 안개가 끼지 않았다.

 

천황봉 아랫마을 /박차영
천황봉 아랫마을 /박차영

 

월출산은 소백산맥에 속하고 그 중에도 광주 무등산의 줄기에 해당한다. 산 덩어리(山體)가 매우 크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이 동에서 서로 작은 산맥을 이룬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능선을 가로 막는다.

월출산은 한반도 서남단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다. 근육질의 남자처럼 위풍당당하고, 기가 넘쳐나 불꽃처럼 치솟은 산이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승조천(火昇朝天)이라 하여 아침 하늘에 불꽃 같은 기상을 지닌 산이라고 적었다. 우리도 월출산을 오르며 그 기운을 마음껏 담아보기로 했다.

 

구름다리 /박차영
구름다리 /박차영

 

산 중턱 절벽에 구름다리가 걸쳐져 있다. 바람폭포를 지나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인공구조물은 지상 120m 높이에 건설되었다. 길이 54m, 1m로 한국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이며, 월출산의 명물이다. 흔들리지 않게 건설되었으나 워낙 높은 곳에 설치되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렸다.

일찍이 1978년에 시공되었으나, 다리의 폭이 좁고 시설이 노후해 안전을 위해 20065월에 재시공되었다. 연인원 1,200명이 투입되었으며, 260톤의 인장력을 견딜수 있는 주케이블과 난간케이블은 신소재인 PC강연선을 사용했다고 한다. 해발고도로 510m. 200여명이 동시에 통과할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510m, 천황봉까지는 거리로 2km, 높이로 300m를 더 올라가야 한다. 수학적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막상 가보면 가까운 거리가 아닌 것을 알수 있다.

 

통천문 /박차영
통천문 /박차영

 

드디어 우리는 정상인 천황봉 입구에 있는 통천문(通天門)에 이르렀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으로, 바위 굴이다. 천황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굴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월출산 북서쪽 능선이 펼쳐진다.

 

천황봉 정상석 /박차영
천황봉 정상석 /박차영

 

통천문을 지나 10분 정도 더 가면 천황봉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멀리 영암고을과 영산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월출산 소사지(小祀址) 표지판이 서 있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임진왜란 때까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터라고 한다. 예로부터 명산대천에 대사터 3, 중사터 24, 소사터 23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유구가 확인된 유일한 장소였다는 설명이다.

월출산은 서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풍경이 장관이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꽃,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에 항상 걸려있는 운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가 본 단풍은 아직 절정은 아니었다.

천황봉은 예로부터 달맞이 명소였다. 월출산의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 보는 보름달의 자태는 그지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그 달을 기다리지 않았다. 올라올 때의 험준함을 경험한 터라, 야밤에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은 공포심 때문이기도 했다.

 

월출산 소사지 표지석 /박차영
월출산 소사지 표지석 /박차영

 

월출산에는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국보로 지정된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이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고, 거기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 남쪽의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우리는 천황봉에서 도갑봉으로 향하다가 방향을 틀어 경포대로 내려왔다. 행정구역으로는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였다.

소백산맥 끝자락 월출산은 수석의 전시장이었다. 월출산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일컬어진다. 금강산이 아름답다지만, 월출산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바위 병풍의 비경 /박차영
바위 병풍의 비경 /박차영
서쪽 능선에서 본 천황봉 /박차영
서쪽 능선에서 본 천황봉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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