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표작 부안 내소사 동종, 국보 예고
고려의 대표작 부안 내소사 동종, 국보 예고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10.3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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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제 허리띠 2점, 고려 청자, 조선 문집-불상 등 5건은 보물 예고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부안 내소사 동종이 국보로 지정 예고되었다. 또 신라 고분에서 나온 금제 허리띠 등 5건이 보물로 예고되었다.

문화재청은 6건에 대해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듣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보 예고>

부안 내소사 동종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번에 국보로 승격할 것을 예고했다.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잘 드러내는 대표작이자 기준작이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를 통해 도인(道人) 허백(虛白)과 종익(宗益)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韓冲敍)700근의 무게로 1222(貞祐 10) 제작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본래 청림사에 봉안되었다가 1850(철종 1) 내소사로 옮겨졌는데, 이 내용을 적은 이안기(移安記)도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내소사 동종은 공중을 비행하는 듯 연출된 역동적인 용뉴, 종의 어깨 부분을 올림 연꽃 문양으로 입체적으로 장식하고 몸체에 천인상(天人像) 대신 삼존상을 부조로 배치한 점, 섬세한 꽃잎으로 표현된 4개의 당좌(撞座), 균형 잡힌 비례와 아름다운 곡률을 가진 몸체 등 뛰어난 장식성과 조형성을 지녀 고려 후기 동종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는 장인 한중서의 숙련된 기술력과 예술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동종을 제작한 한중서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민간 기술자인 사장(私匠)에서 시작해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관청 소속의 관장(官匠)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38년간 고령사 청동북(1213), 복천사 청동북(1238), 신룡사명 소종(1238), 옥천사 청동북(1252) 등 여러 작품을 남긴 것으로 확인된다. 동일 작가가 여러 점의 다양한 작품을 남긴 사례로 특별한 의미가 있고 그 중 내소사 동종이 그의 대표작품이다.

 

부안 내소사 동종 /문화재청
부안 내소사 동종 /문화재청

 

<보물 예고>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신라시대 고분인 금령총(金鈴塚)을 일제강점기인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금령총은 무덤 내부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금령 등 의미 있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목관 안에서 매장자 허리에 착용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금제 장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띠고리(鉸具), 띠꾸미개(銙板), 띠끝꾸미개(帶端金具), 드리개(腰佩)로 구성되는데, 드리개의 경우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드리개보다 길이가 짧은 것으로 보아 고분 주인이 미성년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

신라시대 고분인 서봉총(瑞鳳塚)을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쌍무덤(瓢形墳)의 북분에 해당하는 서봉총 역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금제 귀걸이,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 기록이 있는 은제 합 등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에는 신라 금제 허리띠의 전개과정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 허리띠 이후 띠꾸미개의 중심 문양은 좌우 대칭으로 표현된 세 잎 무늬로 유지되는데,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중심 문양이 뾰족한 형태로, 금관총 출토 금제 허리띠(1962년 국보 지정)의 띠꾸미개와 더불어 가장 화려한 장식성을 보여준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

12세기 이후에 청자로 제작된 정병으로, 볼록한 배 모양의 몸체 옆에 물을 담는 주구(注口)가 있으며 몸체 위로는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가 있다.공양구

보수된 부분 없이 보존 상태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유색, 유면 등의 상태도 좋으며, 현존하는 다른 정병들과 비교해 볼 때 첨대가 짧지만 양감이 풍만하다.

 

복재선생집

조선 개국공신인 복재(復齋) 정총(鄭摠, 1358~1397)의 유고 시문집이다. 황보량(皇甫良)이 지은 발문(跋文)에 의하면 1446(세종 28) 그의 둘째 아들 정효충(鄭孝忠)이 수집·편차(編次)하고 손자인 정옥경(鄭沃卿)이 편집하여 강원도 관찰사(觀察使) 이선제(李先齊) 및 도사(都事) 정호연(鄭浩然)에게 간행을 부탁하였고, 수양양도호부사(守襄陽都護府使) 황보량의 감독으로 목판을 완성하였다. 이때 조성한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초간본을 이번에 지정 예고했다.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수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해 응원(應元), 수연(守衍), 성인(性仁), 인균(印均) 등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각승들이 대거 참여하여 1622(광해군 14) 조성한 불상과 복장유물이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광해군의 정비(正妃)광해군 부인 유씨(장열왕비章烈王妃, 15761623)’가 발원하여 왕실의 비빈(妃嬪)이 출가하던 자수사·인수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11존의 불상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별도로 마련된 왕실의 원당(願堂)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왕실 원당에 봉안된 원불의 실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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