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당과 정원이 예쁜 북촌 백인제가옥
별당과 정원이 예쁜 북촌 백인제가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1.02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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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원과 인제대 건립자가 살던 집…한옥과 일본식의 조화, 근대풍도 채용

 

서울 종로구 북촌에 있는 백인제 가옥은 야트마한 구릉의 지형을 잘 살린 한옥이다. 대문에서부터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대문은 조선 사대부 집의 솟을 대문 형식을 채용했다.

집안에서 가장 멋진 곳은 별당채다. 구릉지의 가장 높은 곳에 별당을 지어 북촌 고을을 한눈에 내려다볼수 있다. 그곳에서 집주인은 휴식을 취하거나 손님을 맞아 차를 함께 하며 대화를 하거나, 밤에 주연을 베풀었으리라.

별당채 서쪽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고, 오솔길도 꾸며져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한적한 정원을 꾸민 것이다. 집이 넓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주변 가옥 12채를 사들였기 때문에 대지 넓이만도 907(2,460)에 이른다. 서울 사대문 안에 1,000평 집이었으니, 대대로 사대부집이었다. 안채가 있고, 사랑채, 대문간채, 별당채가 따로 있다.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은 인제대학교와 서울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白麟濟) 가족이다. 백인제는 6·25 때 동생과 함께 납북되었고, 그의 부인 최경진(1908~2011)이 집을 관리하다가 2009년 서울시에 인도했다. 서울시는 1977년에 민속문화재 22호로 지정했고, 집을 인도받은 후 백인제의 이름을 따 201510월부터 시민에게 공개했다.

 

백인제가옥 대문 /박차영
백인제가옥 대문 /박차영

 

건립자는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집은 고종 11(1874)에 세웠다고 한다. 한상룡은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한확의 후손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이완용의 조카로 당대의 세도가였던 한상룡은 1907년 경성박람회에서 압록강 흑송이 소개되자, 그 목재를 목재를 가져다 1913년에 새 집을 지은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한상룡은 해방후 친일파로 분류되었다. 어쨌든 한상룡은 한성은행 부실의 책임을 지고 이 집을 내놓아, 1928년 이 집은 한성은행 소유로 되었다.

1930년부터 천도교도의 숙소로 일시 사용되었는데, 이는 3.1 운동 무렵, 인근에 손병희의 대저택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1935년 개성출신 언론인 최선익의 소유가 되었고, 1944년부터 의사 백인제 박사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백인제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이 집에 살다가 서울시에 넘긴 것이다.

 

백인제가옥 별당채 /박차영
백인제가옥 별당채 /박차영

 

주소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 716, 동네는 가회동이다. 문화재 공식명칭은 가회동백인제가옥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 한옥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안을 돌아다닐수 있다. 당시 한옥에는 예가 거의 없는 2층 공간도 지었다. 본채 전체 영역에 유리문을 달았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정원을 조성한 것도 한옥에 적용한 근대적인 요소다.

안채와 대청의 툇마루는 모두 전통식으로 구성된데 비해 사랑채는 일본식을 적용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어 일본 고위인사들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배려한 의도로 보인다. 본채 전체 공간에 유리창호를 사용해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백인제가옥 이모저모 /박차영
백인제가옥 이모저모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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