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주의에 거덜 난 아르헨, 이번엔 달러통용
페론주의에 거덜 난 아르헨, 이번엔 달러통용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1.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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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밀레이, 압도적 표차로 대선 승리…달러화 도입·중앙은행 폐쇄 공약

 

남미 아르헨티나는 21세기 들어와 2001, 2014, 2020년 세 번의 국가부도를 겪었다. 1810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후부터 계산하면 모두 아홉 번의 국가부도를 치렀다고 한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알려진 페론주의 좌파가 집권해 흥청망청 돈을 풀면, 우파가 정권을 잡아 구조조정을 단행하지만 국민들은 금새 고통스러운 긴축에 염증을 느끼고 좌파에 표를 던진다. 그러다 나라가 다시 빚더미에 오르면 유권자들은 우파에게 권력을 준다.

이번에는 우파, 그것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 불리는 극우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CNN 보도에 따르면, 19일 치른 대통령 결선투표의 개표가 95% 진행된 시점에 자유전진당 소속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53) 후보가 투표자의 55% 지지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었다. 경쟁자인 좌파연합의 세르히오 마사(Sergio Massa, 51)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다. 영국 BBC는 당초 여론조사와 달리 밀레이가 10%P 이상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것은 달러화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 /위키피디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 /위키피디아

 

밀레이 당선인은 아르헨티나에선 저명한 경제학자 출신으로, 20년 이상 대학에서 재정경제학을 가르쳤다. ‘오스트리아 학파로 분류되는 그는 2021년 뒤늦게 정치에 뛰어 들어 단박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연평균 140%대에 이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통용하며,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또 정부 부처를 형재 18개에서 8개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그의 정책 중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달러 통용(dollarization)이다. 중앙은행 폐쇄는 달러가 공식화폐로 통용되면 무용지물이 되므로 부수적인 공약에 불과하다.

자국 통화를 버리고 미국 달러, 또는 EU 유로 등 외국 화폐를 통용시키는 제도를 통화대체(Currency substitution)라고 한다. 현재 통화대체 국가로는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집바브웨 등이 거론된다.

파나마는 나라의 규모가 작고 주수입원인 운하 통과료와 해운수수료를 국제통화로 결제하므로, 달러화에 대한 큰 이견이 없었다. 에콰도르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1월 자국 화폐인 수크레를 폐기하고 달러를 통용했다. 에콰도르의 달러통용은 성공했다. 연간 100%나 치솟던 물가가 통화대체 이후 한자리대로 낮아졌다. 엘살바도르는 20011월부터 지역 통화 콜론을 폐기하고 그린백(미국 달러)을 법정통화로 채택했다. 이어 20년후인 2021년에 비트코인도 법정통화로 승인함으로써 두 개의 해외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통상 하나의 국가는 하나의 법화만을 채택하는 게 관례였는데, 엘살바도르에선 두 개의 법화를 공인한 것이다. 세 개 이상 법화를 쓰는 나라도 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는 무가베 독재정권의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독재자가 쫓겨나고 이 나라는 2016년 미국 달러화, 유로, 남아공의 랜드화, 영국 파운드 등 외국화폐의 통용을 허용했다.

달러 통용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단점은 통화주권을 잃는다는 것이다. 에콰도르의 경우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큰 틀인 통화량과 금리정책을 상실했다. 장점도 있다. 물가가 안정된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폐를 찍어내지 않고 달러 수입에 통화량을 맞추다보니, 에콰도르는 달러 통용 이전에 벌어진 물가 상승을 제압하게 되었다.

 

2021년 정치 연설에 나선 밀레이 /위키피디아
2021년 정치 연설에 나선 밀레이 /위키피디아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는 80년의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1946년대 후안 페론이 남미식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의 부인 에비타는 특유의 웅변술로 대중을 현혹했다. 그후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잡았고, 1990년대에 페론주의 정당이 집권했다.

1990년에 페론정권의 재무장관 도밍고 카발로 재무장관은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라는 기발한 제도를 도입했다. 자국 통화 페소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키고 금리 자율변동에 의해 통화와 달러 유통을 제어하는 제도다. 덕분에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하지만 그 결과로 아르헨티나 경제의 미국 종속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번 우파 대통령 당선인은 아예 페소를 버리고 달러를 통용하겠다고 한다. 대학에서 경제만 가르치던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현실 정치에 적용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방의 언론들은 그의 당선 기사를 다루면서 한결같이 극우파(far-right)란 단어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극우파의 극약처방이 80년 동안 찌든 아르헨티나의 고질병을 고칠수 있는지, 관심이다.

 


<참고한 자료>

BBC, Far-right outsider Milei wins Argentina presidential run-off election 

CNN, Far-right outsider Javier Milei wins Argentina’s presidency 

Wikipedia, Javier Milei 

Wikipedia, Currency substitution on

Wikipedia, Zimbab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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