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골치, 헝가리 오르반 총리의 민족주의
EU의 골치, 헝가리 오르반 총리의 민족주의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12.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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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지원예산에 거부권…투르크족과 공감대, 중국과 우호관계, 푸틴 지지

 

27개 국가의 연합체인 EU의 눈이 한 사람에 쏠려 있다. 다름 아닌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이다. 오르반 총리는 내년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EU의 예산안을 홀로 거부했다. 26개국 정상이 동의했어도 1개국이 반대하면 전쟁에 관한 지원예산은 부결된다. 예산의 규모가 5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71조원에 달한다. EU는 당초 이달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예산을 의결하려 했으나 오르반 총리의 반대 때문에 결과를 내지 못하고 1월에 특별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내년초에도 오르반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지난 14EU이사회(정상회의)에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의 EU가입 협상 안건이 올라왔을 때도 헝가리는 반대했다. 비회원국의 EU가입도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에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오르반에게 회의장에서 나가줄 것을 설득했고, 오르반이 이에 동의했다. 1개국 정상이 불참한 상태에서 26개국의 만장일치라는 편법을 동원해 두 나라의 EU 가입 협상안이 통과된 것이다.

특별사안에 대해 회원국 만장일치제도를 취하는 EU의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런 허점을 파고들어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물이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다.

 

오르반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쌍심지를 켜는 것은 그의 친러시아적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르반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관찰할 경우 그는 독특한 민족주의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그 원인을 제공한 민족적 대결을 완화시키자는 차원에서 국가를 초월한 EU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지만, 오르반과 같은 민족주의자가 등장하면서 단합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위키피디아
빅토르 오르반 /위키피디아

 

오르반은 1963년 헝가리 중부 세케슈페헤르바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고, 1989년 자유화 운동 당시에 개혁주의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소련군 철수와 자유선거를 주장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공산주의가 종식되고 다당제가 실현되면서 그는 자신의 학생운동단체를 피데스(Fidesz)라는 정당으로 전환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9835세의 나이에 유럽 최연소 총리가 되었고, 2002년 총선에 패배한 후 야당지도자가 되었다가 2010년에 다시 다수당 당수로서 총리에 올랐다. 두 번에 걸쳐 모두 17년째 총리에 재임중이다.

 

오르반과 그의 파데스당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이익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적 이념을 추구한다. 이런 관접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유럽의 NGO와 정치분석가들은 오르반의 정부가 언론을 위축시키고 법원의 독립성을 저해하며 다당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시비를 거는 것은 두 나라 접경지역의 트란스카르파티아(Transcarpathia)의 영유권 문제다. 이곳은 원래 헝가리 영토였는데,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점령한후 우크라이나에 떼주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자파르파티아 주(Zakarpattia Oblast)로 편제되어 있다. 오르반이 푸틴을 좋아해서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제압하도록 도와주어 잃어버린 고토를 되찾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로 수송되는 군사무기의 영토내 이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위키피디아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위키피디아

 

오르반의 헝가리 민족주의는 우랄-알타이족의 대동단결을 추구하는 투란주의로 비약한다. 투란주의(Turanianism)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종족, 즉 투르크족(튀르키예), 핀족(핀란드), 마자르족(헝가리) 등의 단합을 뜻하는 종족주의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도 여주인공이 동양에서 왔다는 점에서 투란주의의 상징이다. 때론 비유럽계 민족을 통칭하기도 한다.

헝가리분지는 5세기 로마제국을 위협하던 아시아계 훈족(홍노)이 점령한 지역이며, 헝가리(Hungary)라는 국명도 훈족(Huns)에서 파생되었다. 현재의 헝가리족은 10세기경 중앙아시아의 마자르족(Magyars)의 후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오르반은 동양의 나라들과 친선을 도모한다. 헝가리는 2015년에 일찍이 시진핑 정부가 추진한 일대일로 정책에 가입했으며, EU 회원국 중에서 가장 친중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아시아 민족인 튀르키예와의 밀착을 추진해 왔다. 2014년 헝가리는 투르크어 국가 총회에 옵서버 자격을 획득했고, 2017년엔 국제투르크아카데미에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다. 2021년 오르반은 헝가리족과 투르크족은 수세기에 걸쳐 역사적, 민족적 유산을 공유한다면서 유럽인들이 야만인으로 표현하지만 훈족과 아틸라의 후예임을 자부한다고 했다헝가리는 투르크어국가 총회에서 마짜르스탄(Macaristan)이란 국호를 사용한다.(아래 사진 참조)

올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그는 헝가리인은 카자흐스탄에서 왔으며, 두 민족이 천년 전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고 했다.

 

2019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투르크어국가 협력회의에 참석한 빅토르 오르반 /위키피디아
2019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투르크어국가 협력회의에 참석한 빅토르 오르반 /위키피디아

 

그는 이민을 반대한다. 순수 헝가리 혈통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다. 오르반은 우리는 희석되어서는 안 되고, 섞여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색깔과 전통, 민족 문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인종주의는 반발을 사기도 한다. 그는 2021보스니아가 200만 무슬림을 어떻게 통합할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고, 그의 발언은 보스니아의 무슬림 단체를 자극해 그해 사라예보 방문이 취소되기도 했다.

 


<참고한 자료?

BBC, Hungary's Viktor Orban: Is one man blackmailing the EU? 

Wikipedia, Viktor Orbán 

Wikipedia, Turanism 

Wikipedia, Zakarpattia Ob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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