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안에서 나온 광해군 정비의 저고리
불상 안에서 나온 광해군 정비의 저고리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12.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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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선찰사 목조 불상 복장유물에서 나와, 불상과 함께 보물로 지정

 

올해 마지막으로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유산 가운데 주목되는 유물은 광해군 정비 장열왕비(章烈王妃)의 저고리다. 저고리는 안동 선찰사(仙刹寺) 목조불상 내부에 복장유물로 봉안되어 있었다.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수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해 응원(應元), 수연(守衍), 성인(性仁), 인균(印均) 등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각승들이 참여해 1622(광해군 14) 조성한 불상이다. 불상 복장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을 해석하면 불상은 광해군의 정비(正妃)광해군 부인 유씨(장렬왕비, 15761623)’가 발원하고 왕실의 비빈이 출가하던 자수사·인수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11존의 불상 중 하나였다. 불상은 별도로 마련된 왕실의 원당(願堂)에 봉안되었던 것이었다.

불상의 복장에서는 조성발원문과 함께 병자생왕비유씨명의(丙子生王妃柳氏命衣)’라는 묵서가 적힌 광해군 부인 유씨 개인의 저고리가 발견되었다. 이는 왕비의 개인적인 발원으로 이 불상이 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17세기 조선 왕실 복식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한국복식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을 보물로 지정했다.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중 저고리 /문화재청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중 저고리 /문화재청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중 발원문 /문화재청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중 발원문 /문화재청

 

한편 문화재청은 고려 후기 동종인 부안 내소사 동종을 국보로 승격함과 동시에 선찰사 불상 및 복장유물을 비롯, 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국보 지정>

부안 내소사 동종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번에 국보로 승격되었다.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자 기준작이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를 통해 도인(道人) 허백(虛白)과 종익(宗益)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韓冲敍)700근의 무게로 1222(貞祐 10) 제작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본래 청림사에 봉안되었다가 1850(철종 1) 내소사로 옮겨졌는데, 이 내용을 적은 이안기(移安記)도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보물 지정>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신라시대 고분인 금령총(金鈴塚)을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금령총은 무덤 내부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금령 등 의미 있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

신라시대 고분인 서봉총(瑞鳳塚)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쌍무덤(瓢形墳)의 북분에 해당하는 서봉총 역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금제 귀걸이,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 기록이 있는 은제 합 등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陰刻鸚鵡文 淨甁)

12세기 이후에 청자로 제작된 정병으로, 볼록한 배 모양의 몸체 옆에 물을 담는 주구(注口)가 있으며 몸체 위로는 가늘고 긴 형태의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가 있다.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水甁)으로 불교에서 사용된 기물. 수행하는 승려가 지니는 물건 중 하나였으며, 부처 앞에 깨끗한 물을 담아 바치는 불교 공양구다.

 

복재선생집(復齋先生集)

조선 개국공신인 복재(復齋) 정총(鄭摠, 1358~1397)의 유고 시문집이다. 황보량(皇甫良)이 지은 발문(跋文)에 의하면 1446(세종 28) 그의 둘째 아들 정효충(鄭孝忠)이 수집·편차(編次)하고 손자인 정옥경(鄭沃卿)이 편집하여 강원도 관찰사(觀察使) 이선제(李先齊) 및 도사(都事) 정호연(鄭浩然)에게 간행을 부탁하였고, 수양양도호부사(守襄陽都護府使) 황보량의 감독으로 목판을 완성하였다. 이때 조성한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초간본을 이번에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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