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능행길, 정통성 확인 행위…6천명 동행
조선왕 능행길, 정통성 확인 행위…6천명 동행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4.01.09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조 535년 동안 940회 능행, 연평균 1.76회…창차 앞뒤에 악대 동반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국왕은 백성들을 지배하기 위해 화려한 의례를 과시한다. 조선 국왕의 능행길도 그런 경우의 하나였다.

고려대 강제훈 교수 연구팀은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능행의 목적과 의미, 궁궐에서 왕릉으로 가는 능행 행렬의 구성과 능행 경로, 실제 능행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능행(陵幸)은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 왕이나 왕비의 능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는 일을 말한다.

 

정조의 현릉원 행차 /국립중앙박물관
정조의 현릉원 행차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자들은 능행이 국왕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점차 강화되었다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행에는 국왕의 행차 구성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소가노부(小鴐鹵簿)가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 능행 규모는 시위 병력과 의장, 동반하여 따라가는 문무백관을 포함해 4,500명 내외로,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조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농민병 중심에서 직업병 중심으로 국역(國役) 체제가 변화함에 따라 능행에도 상비병 동원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능행의 규모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대략 2,900~4,000, 많으면 6,400명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능행 행차t, 조선초기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가 어가 앞에 편성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선전관청 소속 악대가 어가 앞뒤에 배치되었다. 행차 중에는 삼현육각(피리, 대금, 해금, 장고 등)을 맡은 악대와 취타악기(태평소, 나발, 자바라, 북 등)를 연주하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함께 했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한 1926년까지 535년 동안 총 940, 연평균 1.76회의 능행이 있었다. 태조대부터 성종대까지(1392~1494) 능행이 한 해 한 번 이상은 시행되었던 반면, 연산군대부터 현종대까지(1494~1674)는 능행이 백성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인식과 오랜 전쟁 후 회복을 위해 능행 횟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숙종대를 기점으로 이후 능행이 활발해졌다.

조선왕릉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의례를 행하는 공간이 죽은 이를 모신 공간 못지않게 크고 중요하게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기존에 별도의 사당에서 지내던 기신제를 왕릉에서 지내기 시작하였고, 왕이 직접 행하는 의례 절차가 확대되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능행 경로를 추출하고, 조선시대 도로망을 바탕으로 한 지리정보시스템(GIS) 프로그램을 활용헤 궁궐에서 왕릉을 오가는 왕복 경로도 지도상에 시각화했다.

 

777년(정조 1) 능행로(출궁) 지도 /문화재청
777년(정조 1) 능행로(출궁) 지도 /문화재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