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자들이 쓴 ‘조선자본주의공화국’
영국 기자들이 쓴 ‘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1.14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의 이중경제 가속되지만 감시와 형벌로 붕괴 어려워…점진적 개방 전망

 

영국의 두 한국특파원이 2017년에 출간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읽으면 그간 7년이 지났지만 북한에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북한의 핵 도발과 전쟁에 대한 위협은 심해졌다.

서울에 주재하던 로이터통신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James Pearson)과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대니얼 튜터(Daniel Tudor)가 공동집필했다. 원제는 ‘North Korea Confidential’으로, 2015년 해외에서 먼저 출간됐다.

책이 유명해 진 것은 북한이 이 책을 소개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를 향해 공화국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하는 특대형 범죄를 감행했다고 엄포를 놓은 탓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북한이 협박을 할까, 궁금해서 책이 더 팔려 나갔다. 북한의 협박이 이 책을 홍보해준 결과가 된 셈이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자본주의체제를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판 표지엔 미국 달러화가 하늘에서 빛나고 핸드폰과 돈다발이 그려져 있다. 저자들이 북한을 다녀왔다는 얘기는 없다. 탈북자, 북한 전문가, 자료등을 취합해 스키니진, BB크림, 스마트폰 등이 인기를 끄는 북한 내부의 변화와 주민 생활상을 그려냈다.

한글판 표지 /네이버책
한글판 표지 /네이버책

 

저자들은 남한에 알려진 것보다 북한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많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명을 아사로 몰아 넣은 대기근을 겪으면서 국가가 더 이상 인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백성들도 더 이상 국가에 기대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자생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생,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영국기자는 북한의 장마당의 확산에 관심을 집중했다. 끔찍한 대기근을 겪으면서, 더 이상 배급에 기댈 수 없게 된 이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사적 거래의 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는 일종의 이중경제가 존재하게 된다. 하나는 국가가 정해 준 직장에서 받는 형편없는 월급과, 다른 하나는 합법적이지 않지만 사적으로 넓게 통용되는 방식, 회색시장에서 얻는 돈이다. 그리고 북한의 지배층 또한 이 같은 회색경제에 대해 암묵적인 공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북한주민들은 여가를 누리기 위한 비밀스러운 방법을 찾고 있다. 예컨대 KBS나 중국을 통해 송신되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신호가 잡히는 곳에선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더구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DVDUSB 메모리 스틱을 통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장마당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이들에게 팔려 나간다. 체제에 대한 충성심의 약화 때문인지, 단순히 외국 매체와 방송을 본 사람들도 뇌물만 건넬 수 있다면 대개 처벌받지 않는다.

각종 그림책(만화) 또한 책매대라는 이동식 노점 책방을 통해 구할 수 있으며, 최근 평양의 엘리트들은 태블릿을 일종의 신분적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른바 평해튼(평양+맨해튼의 합성어)에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모바일 기기에 시선을 빼앗긴 남녀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북한의 보통 사람들은 음주가무 또한 즐겨서,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평양소주대동강 맥주를 마시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가닌한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만든 밀주를 즐긴다. 그들은 사회 계급을 불문하고 서로의 집에 모여서 파티를 열기도 한다. 담배 산업도 한창이다. 김정은은 ‘727’이라는 값비싼 담배를 좋아한다. 이외에도 새봄’, ‘크레이븐 A’, ‘아침등 수많은 담배들이 있고 이 중 일부는 중동에 수출되어 북한 권력층에게 짭짤한 수익을 준다.

북한에서의 패션은 보수적이고 의류 범죄와 패션 경찰이 존재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의 패션 수도로 일컬어지는 청진은 북한 최초로 스키니 진이 인기를 끈 지역이다. 당연히 스키니 진이나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처럼 맵시를 과시하는 것이 북한의 젊은 여성에게는 해방감을 주는 경험으로 여겨진다. 청바지는 여전히 미국산이라는 이유로 단속의 대상이 된다. 미용 상품 수입도 활발해서 중국에서 BB크림을 수입하고,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불법적이지만, 쌍꺼풀 수술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패션이나 미용 분야의 확산에는 한국 TV와 영화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외국판 표지 /amazon.com
외국판 표지 /amazon.com

 

그렇다면 북한의 시장경제 확산이 북한 체제를 뒤집을수 있을까.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 아직도 강력한 감시구조와 감옥(수용소)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불어 닥친 자본주의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체제와 형벌의 시스템도 있다.

김정은이 물려받은 체제는 김씨 일가의 개인숭배에 기반을 두며, 김정은 개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특히 조직지도부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국가의 유일한 부서로, 김정일 시기부터 국가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개인비서국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일정을 짜고 경호를 조정하는 등의 역할을 하며 체제를 강화한다. 다만 여기에는 일종의 힘의 균형이 작용한다. 김정은이 각 부서의 막강한 힘을 위시해 북한을 모조리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다른 성향을 가진 권력자들로 이뤄진 층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룡해 실각설을 비롯해 이른바 장성택 라인의 부상과 축출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는 김정은뿐만 아니라 어느 개인도 북한을 홀로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북한에는 일반 범죄자를 다루는 인민보안부(현 인민보안성)의 비정치적 수용소도 존재하지만, 문제는 정치범수용소다. 북한의 비밀경찰과도 같은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안전보위성)가 책임지는 정치범수용소는 사실상 사법 체계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바일 통신망인 고려링크와 공무원 등에 대한 감시를 비롯해, 정치적인 의심이 있는 대상자를 조사한다. 누군가 심문소로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당하고 유죄를 받아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는 막대한 자의적 힘을 행사한다. 각종 구역으로 나눠진 정치범수용소가 돌아오지 못할 지점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들은 북한이 결국엔 국가 개방으로 갈 것으로 보았다. 두 영국 기자는 북한 정부의 사실상 파산상태와 체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처한 지정학적 환경이 놀랄 만큼 잘 균형 잡혀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중기적으로 북한에 일어날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로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 국가 개방이라고 지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