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선학원, 일제하 민족불교의 산실
안국동 선학원, 일제하 민족불교의 산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1.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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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왜색화 거부하고 선풍진작 표방, 일제의 훼방으로 고전…조계종과 한 뿌리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에서 나와 북쪽으로 200m쯤 가면 선학원(禪學院)”이란 간판이 달린 건물이 나온다. 덕성여고 뒤쪽에 위치해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40번지다. 입구 안내문에는 일제 치하에서 민족불교를 수호한 산실이요, 대한불교 조계종의 모태라고 적혀 있다.

이 건물의 사연은 10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사찰령을 발표한지 10년째 되던 1921, 조선불교의 맥을 찾으려는 스님들이 힘을 합쳤다. 성월, 남전, 도봉, 석두, 혜월, 용성, 만공스님이 포함되었고, 만해 한용운은 3·1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어 마음으로만 참여했다. 수좌들과 재가신도들은 당시 돈으로 27,000원 가량을 모았다. 이들은 이 돈으로 안국동의 땅 190평을 샀다. 공사는 1921810일에 시작되었다. 인사동에 있던 범어사 포교당을 처분하면서 나온 돈과 건자재도 투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해 1130일 법당이 준공되었는데, 그것이 선학원의 시초다.

이듬해에 선학원 설립에 마음을 모았던 전국의 수좌들과 신도들이 선우공제회를 출범시켰다. 선우공제회는 한국불교를 왜색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저항해 선풍진작과 민족불교를 표방했다. 조선총독부는 선우공제회의 사단법인 등기를 거부하며 갖가지 방해를 했고, 선학원은 1926년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해 명맥을 유지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박차영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박차영

 

법보신문에 따르면, 1934년 선우공제회는 조선불교선리참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총독부의 재단법인 허가를 받게 되었다. 재단법인이 출범할 때 참여했던 수덕사, 범어사, 직지사 등은 현재 조계종의 대표 사찰이다. 이 무렵 선학원과는 별도로 조선불교조계종 건설 운동이 있었고, 1941년에 출범했다. 초기 조계종의 주역들은 선학원을 태동시킨 스님들과 상당수 오버래핑된다.

선학원이 조계종의 뿌리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가 있다. 다만 선학원과 조계종은 일제통치기에 민족불교를 지키려는 스님들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쌍생아라고 이해해야할 것 같다.

선학원의 설명문에 따르면, 현재 재단 산하에 중앙선원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570여개의 분원과 포교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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