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극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극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2.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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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대화를 나누며 막연히 고도를 기다린다…암울하던 시절의 이야기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2차 대전 직후 유럽에서 유행한 부조리문학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문학에서 부조리(absurdity)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반발해 인간 실존에 접근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현실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2차 대전은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가장 발달한 문명을 누린 유럽인들이 증오에 가득 차서 잔혹하게 서로를 죽이고 죽었다. 숱한 종교와 철학은 의미 없는 것이고, 생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던 시기였다.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프랑스에 건너가 살다 2차 대전을 만났다. 그는 독일에 반대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돕던 중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삼촌의 밀고로 비시정부 지역 남프랑스 보클루즈의 한 농가에 피신해 숨죽이며 살았다. 그 정황에서 구상한 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삶은 부질없는 것이다. 종교의 가르침과 철학의 고고함도 쓸데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야수와 같이 서로 죽이고 물고 뜯었다. 그는 종전을 애타게 기다렸고, 그 기다림의 대상이 주인공 고도(Godot)로 추상화되었다.

책표지(민음사)
책표지(민음사)

 

국립극장의 연극을 보고, 책을 읽었다. 연극에서 이해하지 못한 대사를 활자로 확인하는 묘미가 있었다.

작품은 2차대전 중인 1942~43년에 작성되어, 1952년에 발간되었다.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등장인물은 다섯 명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둘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마냥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며 쓸데없는 말을 하염없이 지껄인다. 그 무의미한 대화가 연극 150분의 절반을 차지한 것 같다. 쓸데없고 무의미한 지껄임 속에서 둘은 세상의 부조리를 그린다. 아무말 잔치와 같은 대화 속에서 세상에 대한 귀챦음, 무관심이 반영된다.

그러던 중에 포조와 짐꾼 럭키가 나타난다. 이 둘은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포조와 럭키는 주종관계다. 세상의 숱한 주종관계, 주인과 노예, 지주와 농노, 기업가와 노동자, 승자와 패자의 하나일수 있다.

포조와 럭키가 떠나고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은 고도의 목장에서 일하는 목동이다. 그는 고도가 오늘 오지 않고 내일 올 것이라고 알려주고 1막이 끝난다.

2막은 1막의 다음날이다. 하루 사이에 기억이 사라졌고, 주변의 상황이 달라졌다. 나무에 잎이 조금 자랐다. 포조는 눈이 멀었고, 럭키는 귀가 멀었다. 둘은 전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만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양치기 소년이 또 등장하는데 어제 일을 잊어버렸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나무에 목을 매 죽을 것인지, 고민한다. 떠나자고 하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온세계가 전쟁터이던 시절, 갈데 없이 숨어지내던 작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면 작품의 분위기가 읽혀진다. 2차 대전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지금 고도는 누구인지는 관객과 독자의 몫이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 베케트는 이런 질문을 받고 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도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고 했다.

 

연극 포스터
연극 포스터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허무하고 비극적이다. 부조리한 세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부질없는 대화는 여전히 우리 세상사를 반영한다.

작품이 나온지 70년이 지난 시점에 국립극장은 청중으로 꽉찼다. 신구와 박근형이라는 원로급 스타가 출연했다는 사실이 관심을 촉발한 것 같다. 하지만 활자를 읽고 난 후에 주인공이 젊은이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작품을 써내려가던 시절은 30대 중반이었다. 또 베케트는 등장인물이 모두 남성이라고 강조했는데, 국립극장 연극에서 럭키는 여배우를 출연시킨 점이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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