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주는 착시효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주는 착시효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2.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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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스탈린주의 정치인을 시골 촌부로 묘사…피노체트 정권에서 쓰여진 소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칠레의 공산주의 정치인이자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년과 죽음을 청년 우편배달부의 눈으로 그린 소설이다. 작가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가 네루다의 추종자였듯이, 소설의 주인공 마리오도 네루다 숭배자로 설정되었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는 중남미의 대표적 시인이자, 칠레의 외교관, 정치인이었다. 그는 13살에 시를 발표해 시인으로써 천재성을 보였으며,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표지 /출판사​
​책 표지 /출판사​

 

네루다의 초현실주의는 세계관에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는 문학적 탁월함으로 어려서 외교관으로 발탁되었고, 30대 초반에 스페인에 주재하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내전을 목격하고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인민전선을 도와주는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을 흠모하게 되었다. 그는 골수 스탈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스탈린그라드 찬가’(1942), ‘스탈린그라드의 새 애창곡’(1943) 등을 연이어 내놓아 1953년 스탈린 평화상을 수상했다.

네루다는 블라디미르 레닌을 숭배했고,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송가도 썼다. 네루다의 스탈린주의는 남미 좌파 문학세계에서 그와 쌍벽을 이루는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와 틈을 벌리게 한 요인이었다. 파스는 나는 점점 스탈린에게서 환멸을 느끼는데, 그는 더 스탈린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치적으로 네루다는 급진적 행동가였다. 그는 미국의 청과물회사 유나이티드푸룻을 코카콜라와 포드자동차에 비유했으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피에 굶주리는 파리”,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1945년에 공산당원으로서 상원의원에 선출되었고, 과격한 광산노조의 파업투쟁을 두고 급진당 대선후보인 가브리엘 곤잘레스 비델라와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그는 노동자의 폭력시위를 진압한 비델라를 비판횄으며, 비델라가 대통령이 선출되자 피신해 해외를 전전했다.

그는 말년에 소련의 인권탄압에 회의를 느낀 듯한 발언을 했으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소련 작가들이 탄압받는 것에 대해 코멘트를 피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Ardiente paciencia)는 네루다가 죽은지 12년이 지난 1985년 쓰여졌다. 영어(Neruda's Postman)로 번역되고, 영화 일포스티노(Il Postino)로 제작되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소설은 1969년부터 네루다가 사망한 1973년까지 4년간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라는 해변마을에 촌부처럼 사는 네루다의 소박한 삶을 소재로 했다. 이 기간에도 네루다에겐 격동기였다. 197066세의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으나 좌파연합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양보했다. 남미 최초로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네루다는 프랑스 주재 대사로 임명되었다. 파리 주재 시절이던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벨위원회에선 그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대 기류가 있었으나 좌파 지식인들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수상이 결정되었다.

그는 파리 체류시기에 전립선 암이 커지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귀국해 고향에 돌아왔다. 그가 이술라 네그라에서 간병치료를 하던 중, 19739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주도하는 쿠데타가 발생해 아옌데가 죽고 정권이 전복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네루다 진영에서 시위를 선동할 것을 두려워해 그의 별장 주변을 철두철미하게 봉쇄했다. 그 사이에 네러다의 병세는 악화하고 산티아고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923일 사망했다. 군부세력이 그를 독살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1990년 피노체트가 물러난후 지금까지 사망의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 /위키피디아
파블로 네루다 /위키피디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극단적인 이념주의자이자 행동가로서의 면모를 소거하고 우편배달부의 연애행각에 개입하고 바닷가 마을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평범한 시골노인네로 설정했다. 네루다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평범한 인간이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다가 병들어 죽는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의도성을 갖는다. 세상을 아름답게 표한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상가를 미화하려는 것이다. 또한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은 소설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1985년 피노체트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에 작가는 네루다에서 정치를 제거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고, 영화도 만들어 돈을 벌려고 한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슬라 네그라의 파블로 네루다 별장은 현재 박물관이 되었고, 매년 그의 생일(712)에는 박물관과 마을에서 시낭송회 등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술라 네그라의 파블로 네루다 박물관 /위키피디아​
​이술라 네그라의 파블로 네루다 박물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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