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이 정치 펴던 창덕궁 인정전을 볼 기회
조선 왕이 정치 펴던 창덕궁 인정전을 볼 기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4.02.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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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깊이보기, 궐내각사’ 심화해설 프로그램과 연계…3.1.~3.31. 매주 수~일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仁政)’어진정치라는 뜻이며,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法殿)이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해 결혼식, 세자책봉식,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 때의 중요한 건물이다. 창덕궁 인정전은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 순조 3(1803)에 화재로 재건, 그리고 철종 8(1857)에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고 불리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해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 온 것이며,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인정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창덕궁 인정전 내부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내부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31일부터 331일까지 매주 수~일요일마다 기존 해설프로그램과 연계해 창덕궁 인정전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외관은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트인 통층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 단을 높인 천장 중앙에는 구름 사이로 두 마리 봉황 목조각을 달아놓아 으뜸 공간으로서의 화려한 권위를 극대화했다.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인정전을 수리하면서 전등, 유리창, 커튼이 새로 설치되고, 실내바닥이 전돌(벽돌)에서 마루로 바뀌는 등 근대적인 요소가 가미된 전환기의 궁궐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입장은 한 번에 20명씩으로 한정한다. ·목요일은 기존 정규해설 관람객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20명씩 순차 입장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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