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가입으로 나토의 내해가 된 발트해
스웨덴 가입으로 나토의 내해가 된 발트해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2.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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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중심 고틀란드 섬, 러시아 출구 봉쇄하는 지정학적 중요성 부상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발트해로 나가는 출구를 열기 위해 1700년에 스웨덴과 전쟁을 벌였다. 이른바 북방전쟁(1700~1721)이다.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러시아는 내륙국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17035월 표트르는 발트해 입구에 성채를 쌓고 주민을 옮겼다. 이것이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시초다. 1712년 표트르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발트해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가 발트해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에 북유럽의 강대국은 스웨덴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스웨덴은 영국의 편에 서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거부했다. 나폴레옹의 편에 서 있던 러시아가 스웨덴을 공격했고 이 전쟁(핀란드 전쟁, 1808~1809)에서 스웨덴이 패하고 속령인 핀란드를 러시아에 내주었다. 이때의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1812년 스웨덴은 중립국을 선언했고, 그 기조는 201여년 동안 유지되었다.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표트르 대제 동상 /위키피디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표트르 대제 동상 /위키피디아

 

스웨덴이 오랜 기간 이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NATO)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동안 스웨덴의 발목을 잡았던 헝가리 의회가 동의함으로써 스웨덴은 나토의 32번째 회원국이 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앞서 지난해 4월 발트해의 또다른 중립국 핀란드가 NATO에 가입했다.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체결한 중립화 조약을 75년만에 폐기하고 서방 진영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의 핀란드 중립화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는데, 소련에 굽신거리는 중립화라는 비아냥거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련은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40)과 계속전쟁(1941~44)을 일으켰으나 핀란드의 완강한 저항으로 얻은 게 별로 없이 휴전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 체제가 굳어지자 양국은 타협했다.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하지 않는 조건으로 중립을 요구했고, 핀란드도 이를 받아 들였다. 1948년 협정으로 핀란드는 중립 국가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핀란드는 미국의 마셜플랜에 참여하지 않았고, 소련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도 중립을 취했다. 나토는 물론 바르샤바 조약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핀란드도 소련에 대항하기엔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소련에 거스르는 행동을 자제해야 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만해도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는 EU에 가입했어도 군사적으로는 NATO 가입에는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2년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두 발트 국가는 상황인식을 달리했다. 나토에 가입하기로 한 것이다.

 

발트해 /위키피디아
발트해 /위키피디아

 

핀란드와 스웨덴이 NATO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는 나토의 내해가 되었다. 물론 러시아의 상이 상트페테르스부르크와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가 발트해에 접해 있긴 하지만 발트해 연안의 대부분이 나토 회원국의 품에 넘어갔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기 이전만 해도 발트해는 공산진영의 내해나 다름 없었다. 그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독립하고 폴란드에 이어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이번에[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들어감으로써 러시아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발트해(Baltic Sea)는 덴마크,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등 9개국에 의해 둘러 싸인 북유럽의 내해(內海). 면적은 37, 한반도의 두 배쯤 되며, 해안 길이가 8,000km나 된다. 평균 깊이는 55m, 가장 깊은 곳에 465m로 수심이 낮은 바다(淺海)에 해당한다. 이 바다에는 보트니아만(Gulf of Bothnia), 핀란드만(Gulf of Finland), 리가만(Gulf of Riga), 그단스크만(Bay of Gdańsk) 등 크고 작은 만이 있다.

발트해는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을 통해 북해,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다. 또 이 바다는 겨울에는 얼지만 고틀란드 섬 이남은 겨울에도 행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부동항(不凍港)을 추구해온 러시아로선 발트해 입구에 있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고틀란드에서 훈련하는 장갑차 /위키피디아
고틀란드에서 훈련하는 장갑차 /위키피디아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한가운데 위치한 섬 고틀란드(Gotland)가 부각되고 있다. 이 섬의 면적은 3,183으로 제주도의 두배쯤 되고, 인구는 61,000명이다.

섬은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어 오랜 역사 기간 동안에 지중해의 몰타처럼 힘 있는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대 게르만의 고트족(Goths)과 어원을 같이 한다. 바닷길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독일 한자(Hansa)동맹의 회원도시로 출발했다가 바이킹 해적, 튜튼기사단, 덴마크, 노르웨이의 손바뀜을 거쳐 1646년부터 스웨덴의 지배로 굳어졌다.

1808년 핀란드 전쟁 때 러시아 병력 1,800명이 이 섬에 상륙했으나 스웨덴이 2,000명의 구원군을 파견해 한달만에 탈환했다. 이후 스웨덴은 이 섬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소련 붕괴후 긴장이 완화되자 스웨덴은 2005년 고틀란드섬에서 병력을 완전히 철수했다. 그후 섬은 스웨덴인들의 여름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이 섬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스웨덴은 섬에 병력을 재배치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20226월 스웨덴은 나토와 합동으로 고틀란드 방어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는 나토에 가입하기 이전이었다. 러시아의 발트해 사령부는 칼리닌그라드에 있는데, 고틀란드에서 250km 거리에 있다. 오랜 중립국이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스웨덴과 핀란드로 하여금 나토 가입을 서두르게 했고, 마침내 나토는 발트해에서 러시아를 포위하게 되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Gotland 

Atlantic Council, Gotland could be a game-changer for Baltic defense 

Wikipedia, Baltic Sea 

Wikipedia, Saint Petersburg 

Wikipedia, Swedish neut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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