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가 본 한국인, “도덕지향적이다”
일본 학자가 본 한국인, “도덕지향적이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3.13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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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이기론으로 한국과 한국인 분석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2017)라는 책은 제목이 독특해서 사서 읽었다. 저자는 한국사람들의 사고구조와 행동패턴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일본인이었기에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느끼지 못하는 사실을 간파해낼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8년간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1996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국철학을 배우면서 성리학의 리()와 기()를 통해 한국인을 접근했다. 8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인이라는 이상한 종족을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지나치게 도덕에 매달리고 관념적이었다.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이 종족은 귀납적이지 않고 연역적인 사고를 했다. 그는 한국인의 연역적 측면을 성리학의 . 귀납적인 측면을 로 보았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이 중에서 를 멸시하고 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책표지 /네이버 책
책표지 /네이버 책

 

오구라의 해석에 따르면, ‘는 도덕성이고, ‘는 물질성이다. ()는 윤리(倫理)이며, 도덕이자 철학이다. 한국사람들은 유독 철학적이다.

저자는 책의 시작을 이렇게 풀어나갔다.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적 지향적도덕적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 즉 그것은 도덕 환원주의와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도덕 지향성 국가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이것이 한국과의 걸정적 차이로 보았다. 예를 들어 일본 TV드라마에서는 연인들이 달밤에 공원에서 왠지 당신과 더 이상 안될 것 같아라고 고백하고 헤어진다. 그에 비해 한국 드라마에선 연인들이 당신은 이런 이유로 도덕적으로 잘못됐어. 이렇게 부도덕한 당신과 사귀는 것은 나의 도덕성을 심히 손상시키는 일이야고 말하고 헤어진다. 헤어지는 원인이 일본 연인들에겐 성격차 등등으로 구체적이지만, 한국 연안들은 도덕성을 먼저 설교하면서 헤어지는 명분을 삼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나라 드라마를 다 보았으니, 이런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한일 축구전에서 한국 응원단에는 꼭 독도가 등장한다고 오구라는 말한다. 일본을 이겨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에도 일본은 공동개최 전례가 없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한국은 일본의 설명에 메시지(대의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구체적인 예시, 즉 귀납적 근거를 필요로 했지만, 한국사람들은 명분을 중시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오구라는 한국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도덕 쟁탈전을 벌인다고 지적한다. 한국철학사를 공부한 그는 조선시대 성리학 논쟁에 대해 이렇게 파악한다.

조선 철학은 독창성에서는 중국 철학보다 현격하게 떨어지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사회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둘러싼 바늘 같은 세밀한 이론이 강력한 폭탄이 되어 권력 중추를 위협한다는 과격함은 중국보다 철저했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자들이 저들만 아는 이기론을 펴며 지루한 논쟁을 펼치던 것을 지적한 말이다. 미세한 이기 논쟁의 차이는 사대부들 사이에 큰 분란으로 번져 사화와 당쟁의 폭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사이트
오구라 기조 /교토대 사이트

 

저자는 한국인이 강력한 도덕() 지향성을 갖게 된 이유의 하나로 지정학적 위치를 꼽았다. 한국은 주위가 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어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강렬한 자각을 하고 있었고, ‘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도덕 지향성을 고양시킨 사상인 주자학은 남송(南宋)이 북방의 금()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의식의 결정체로서 주희가 승화시킨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도 위기 의식 때문에 주자학 일변도가 되었다고 오구라는 보았다.

만주족에 의해 명()이 멸망하자 조선의 위기의식은 갑자기 고조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에서는 리()의 순도가 높아졌으며, 리에 의한 위계질서가 강화되었다. 조선은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를 리의 근거로 보지 않고 명이 갖는 중화의 전통을 청이 아니라 조선이 계승했다는 논리를 만들어 리의 전통적 근원을 손에 넣게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했다.

 

저자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그의 글을 본 어느 사람의 요청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이 책을 쓴 시점은 1998, 한국이 IMF 경제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경험한 한국인들은 또다시 무시무시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인들은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며 개인보다 나라를 앞세우는 특유의 도덕성을 발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민족을 자화자찬하는 국뽕성 글이 쏟아지는 시대에 이웃나라 사람이 본 한국인과 한국사회 해석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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