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애환 배어 있는 성남 모란시장
현대사의 애환 배어 있는 성남 모란시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3.15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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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의 5일장…1962년 개설, 평양출신 김창숙이 모란봉에서 딴 이름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엔 성남시 성남동 일대에 형형색색 파라솔이 광장을 뒤덮는다. 수도권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좌판에 앉아 온갖 먹거리를 앞에 놓고 떠든다. 우리나라 최대 정기시장을 자랑하는 모란시장의 풍경이다. 4일과 9일에 장이 서는 것은 조선시대에 큰 규모였던 송파장의 장날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도심속 5일장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린다. 사회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나이든 이들이 많이 눈에 띤다. 옛추억이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의 남대문시장만 해도 상시장이고, 5일장의 풍경은 없다. 2020년 개통된 수인분당선이 모란역을 지나면서 모란시장은 서울에서 손 쉽게 드나드는 장소가 되었다.

모란시장은 서민들이 드나드는 재래장이기도 하고,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14일의 장날은 더 시끌벅적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패들도 한쪽 구석에서 목청을 높이고, 날이 풀려 더 많은 사람이 몰린 것 같다. 재밌는 것도 많다. 개구리 구운 것도 있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듯 입을 헤죽이며 손톱만큼도 안 되는 고기를 뜯었다.

 

모란민속5일장의 형형색색 파라솔. /사진=성남시청 사이트
모란민속5일장의 형형색색 파라솔. /사진=성남시청 사이트

 

이 시끌벅적한 이 시장의 공식명칭은 모란민속5일장이다. 오래된 것 같지만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1962년에 김창숙(金昌叔)이란 인물이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평양 출신의 김창숙이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그리워하며 평양의 모란봉에서 따 모란시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시장에는 우리 현대사의 숱한 애환이 녹아 있다.

김창숙은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해방이 되자 월남해 육사 7기로 임관했다. 전쟁이 끝난 1957년 육군대령으로 전역하고 제대군인의 농촌정착 사업에 뛰어들었다. 6·25 전쟁에서 많은 부상병이 사회에 쏟아져 나왔으나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못했다. 김창숙은 경기도 광주군의 탄천 하천부지를 개간하기 위해 제대군인 40~50명을 모았다. 그는 광주군의 버려진 하천부지를 얻어 모란지역으로 부르고, 1961년부터 황무지를 일구기 시작했다. 얼마 안되어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박정희 정권은 제대군인 정착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개간사업을 적극 후원했다.

모란지역 개척단은 김창숙이 대표로 있는 재향군인회의 사설조직이었다. 개척단원들은 자녀교육과 생활필수품 조달을 위해 1962년에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을 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모란시장의 시초로 본다. 광주군청에 시장개설 신청서가 제출된 것은 1963년이고, 허가가 떨어진 것은 19644월이었다.

모란농장은 실패했다. 따라서 시장도 사라질 위기에 있었지만 1968년 서울시가 광주대단지에 청계천의 빈민들을 모란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시장이 유지되었다. 참고로 이때 성남으로 몰려온 이주민 틈에서 오늘날 주사파의 씨앗이 싹 텄으니, 이곳은 경기동부연합의 요람이기도 하다.

모란시장의 이모저모 /박차영
모란시장의 이모저모 /박차영

 

성남 인근에는 조선시대 이래 남한산성내의 성내장을 비롯해, 낙생장, 대왕장, 판교장, 분당장 등이 있었으나 현대 물결에 모두 사라지고, 현대에 생성된 모란시장만 살아남아 오히려 번창했다.

성남시로 승격된 이후 1974년 모란시장이 폐지되었으나, 이듬해에 옛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과 하천제방 인근에 시장이 다시 생겨났고, 19916월엔 평일은 공영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장날에 한해 5일장으로 이용하는 형태로 존속되었다.

모란민속5일장은 12천여로 복개지 위에 개설되었다. 현재의 시장은 1990년대에 성남시가 상인 953명에게 구획된 지역을 개별점포로 배정한 것이 발전해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5일장으로 떠올랐다. 현재 화훼부, 양곡부, 약초부, 의류부, 신발부, 잡화부, 생선부, 민물부, 야채부, 고추부, 애견부, 가금부, 음식부 등 13개부서로 분류되고 있다.

모란시장이 각광을 받자 성남시는 남측 인접부지에 2만여규모를 마련해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장날엔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5일장으로 육성하고, 평일에는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토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전에 따른 막대한 예산과 무등록 시장의 양성화라는 문제에 막혀 있다고 한다.

 

모란시장의 이모저모 /박차영
모란시장의 이모저모 /박차영

 


<참고한 자료>

전통시장 관련법 개정 방안에 대한 고찰 : 성남 모란시장을 중심으로, 임진 김영기 이민권 외 2, 유통과학연구, 2011

성남 모란지역 탄생사, 이은희, 아시아문화연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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