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단은 잊혔지만 설렁탕은 남았다
선농단은 잊혔지만 설렁탕은 남았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3.25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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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선농단, 농사의 신 신농씨 후직씨 제사 지내던 곳…구한말 사라졌다 축제로 부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祭基洞)은 제사를 지내는 터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에 농사의 신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 제사를 지내는 선농단(先農壇)이 이곳에 있었다. 이곳에서 모시는 신 둘 다 중국 신이다. 화낼 필요가 없다. 왕정시대에 사대부들은 조선이 작은 중화(小中華)라고 믿었고 중국의 신이 곧 우리 신이었다. 조선왕정이 끝나갈 무렵인 1908년에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의 함께 선농단의 신들이 종로구에 있는 사직단으로 옮겨져 통합제사를 지냈고, 그후 두 곳은 쓸쓸히 터만 남게 되었다.

일정시대에는 선농단 자리에 청량대(淸凉臺)라는 공원이 만들어졌다. 선농단 귀퉁이에는 지금까지도 청량대라고 새겨진 비석이 길게 누워있는데, 1945815일 해방이 되던 그날 주변 주민들이 그 비석을 거꾸러뜨려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제기동의 선농단은 말 그대로 터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엔 주변이 모두 논이었을 터이지만, 지금은 아파트와 주택이 빼곡하다. 1979년부터 제기동의 뜻 있는 마을 유지들이 선농단친목회를 조직해 매년 제사를 지냈다.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청에서 선농제향을 지역전통문화 행사로 승격시키고 매년 420일 선농단에서 선농제향을 올리고 있다.

 

서울 제기동 선농단 /박차영
서울 제기동 선농단 /박차영

 

신농씨는 중국 설화 속의 3() 중 하나다. 3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여와씨(女媧氏)를 말하는데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고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바로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후직은 중국 전설에서 요임금의 농관이었다고 하는데 농업의 신이자 오곡의 신이다.

 

근대문명이 도입되기 전에 우리나라는 농업국가였다. 농사가 잘 되어야 세금이 잘 걷히고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살게 된다. 농사를 망치면 민중반란이 일어나고 왕조가 흔들린다. 신라가 그렇게 망했다.

예로부터 왕은 농경을 중시했다. 농사가 근간이었다. 따라서 매년 모내기 즈음에 왕이 손수 농사를 짓는 흉내를 냈다. 이를 친경(親耕)행사라고 했다. 임금이 납시었는데 그냥 갈수는 없다. 황소 한 마리 끌고가 잡아서 뼈를 우려고 밥을 말고 국수를 넣어 한그릇씩 대접했다. 그게 오늘날 설렁탕이다. 백성들이야 임금이 농사를 짓는 게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보다도 설렁탕 한그릇 얻어먹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무지렁이들은 선농단보다는 설렁탕이 더 발음하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선농단을 사라졌어도 설렁탕은 오래오래 살아남아 우리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선농단 제사 모형도(선농단역사훔화관) /박차영
선농단 제사 모형도(선농단역사훔화관) /박차영

 

선농제의 뿌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에서 입춘 뒤 해일(亥日)에 명활성 남쪽 웅살곡에서 선농제를 지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983(성종 2) 1월에 왕이 기곡제를 지내 신농에게 제사하고 후직을 배향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선농제는 조선시대에도 답습되었다.

조선시대에 제사는 매년 경칩이 지난 뒤 좋은 날로 해일(亥日: 돼지날)을 가려 왕이 직접 가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 후에는 직접 경작을 하는 적전지례(籍田之禮)를 행했다. 가뭄이 심할 때는 선농단에서 기우제도 지냈다. 선농단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되었다.

 

​선농단 친경행사 모형도(선농단역사훔화관) /박차영​
​선농단 친경행사 모형도(선농단역사훔화관) /박차영​

 

선농단 아래부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0m, 가슴높이둘레 2m, 가지밑 줄기높이 2.25m로 상당히 크다.

나이(수령)500년이 넘는데, 조선 성종 7(1476)에 선농단을 지으면서 중국에서 어린 묘목을 선물받아 심은 후 키웠다고 한다. 선농단 제사가 끝나면 막걸리를 이 나무 주변에 뿌려 주었다고 한다.

 

선농단 향나무 /박차영
선농단 향나무 /박차영
서울 제기동 선농단 /박차영
서울 제기동 선농단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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