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온정주의에 기댄 ‘엉클 톰스 캐빈’
백인 온정주의에 기댄 ‘엉클 톰스 캐빈’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3.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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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폭발적 인기로 미국 노예해방 기여…오늘날엔 순종적 톰에 비판적

 

해리엇 비쳐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19세기 미국에서 최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었으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선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으로 번역되었다.

작가는 두 부류의 노예를 등장시켰다. 첫 번째는 백인의 압제에 순응하는 톰 아저씨와 그 가족이고, 둘째는 노예제도를 철폐한 캐나다로 도망치는 조지 해리스와 그의 부인 엘리저다. 헤리엇 비쳐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는 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작가는 기독교적 온정주의와 박애주의로 노예의 삶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톰은 노예이면서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기독교적 사상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첫 번째 주인 조지 셸비에 충실했고, 셸비가 부채에 허덕여 자신을 노예상에게 팔아도 톰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고 순응했다. 어쩌다 배에서 에바의 조난을 구해주고 에바의 아버지 세인트클레어를 두 번째 주인으로 만난다. 두 번째 주인도 좋은 사람이었고, 에바의 천사와 같은 마음에 톰은 행복하게 지닌다. 하지만 그에게 마지막 불행이 닥친다. 에바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세인트클레어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노예상에 또다시 팔려간다. 세 번째 주인 레그리는 악의 화신이다. 그는 레그리에게 잘못 보여 매를 맞아 죽었고, 마지막 순간에 첫 번째 주인의 아들 조지 셸비가 찾아오지만 그는 이미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두번째 유형은 노예의 나라 미국을 떠나 자유의 나라 캐나다로 도망친 해리스 가족이다. 캐나다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은 엉클 톰스 캐빈이 출판되기 20년전인 1833년에 노예해방법을 제정해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이듬해에 시행했다. 영국에서 자유를 얻은 미국은 노예에겐 자유를 주지 않았다. 대신에 영국 식민지였던 캐나다에서 먼저 노예가 해방되었다.

조지 해리스는 주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다 도주를 결심했고, 부인 엘리저는 아들 해리스를 팔리게 되자 남편을 따르기로 한다. 둘은 따로 도망한다. 추노(推奴) 긴장감이 벌어진다. 엘리저는 목숨을 걸고 해방기에 오하이오강의 깨진 얼음판을 건넜고, 착한 백인들의 도움으로 은신처에서 남편을 만나 끝내 자유를 찾게 된다는 스토리다.

 

주인집 딸 에비가 읽는 성경 구절을 감동적으로 듣고 있는 톰(삽화) /위키피디아
주인집 딸 에비가 읽는 성경 구절을 감동적으로 듣고 있는 톰(삽화) /위키피디아

 

이런 신파조는 19세기에 잘 먹혔는지 모른다. 책이 나오던 시대에 아마도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들은 이 책을 거의 읽지 못했을 것이고, 독자의 대부분은 백인 노예해방론자들이었다. 백인에 순응하는 톰 아저씨가 백인독자들에게 먹혔을 것이다.

당시 남부 백인 노예주의자들은 작가가 남부에 온 경험이 없이 커네티컷에서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 소설을 썼으며, 따라서 소설의 내용이 사실과 상당 부분 다르다고 반박했다.

오늘날 감각에서 보면 170년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시대착오이란 비판을 받는다. 백인 주인의 호의에 기대는 톰의 삶이 온당한가 하는 반론이 논란의 포커스다. 치명적인 병에 걸린 에바의 노예해방론, 첫째 주인 아들 조지 셸비가 노예를 풀어주는 모습 등이 가진자들의 아량을 대변하는 작가의 견해다.

스토우도 미국 주류의 백인이었으니까. 오늘날 미국에선 엉클 톰스 캐빈의 주인공 톰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는 안티톰 문학(Anti-Tom literature)이 형성되었다.

 

해리엇 비쳐 스토우 /위키피디아
해리엇 비쳐 스토우 /위키피디아

 

엉클 톰스 캐빈은 185165, ’내셔널에러‘(The National Era)라는 주간지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 주간지는 노예해방주의를 표방했다. 작가는 처음에 몇주만 연재하려 했지만 인기가 폭발하면서 40주나 늘려, 195241일자에 마지막회를 마쳤다. 곧바로 출판업자와 계약해 책으로 묶어 출판했다. 유명한 화가를 초빙해 삽화도 전면 6페이지나 넣었는데, 당시로는 파격이었다고 한다. 1852320일 발간 첫날에만 3,000부가 팔렸다. 첫해에 30만부가 나갔는데, 인쇄가 8대를 풀가동했는데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미국에서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일화다. 남북전쟁(1861~1865) 초기인 1862, 링컨 대통령이 작가 스토우를 백악관에서 만나 이 위대한 전쟁을 시작한 작은 부인이군요”(So this is the little lady who started this great war.)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링컨이 스토우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멘트는 어디에도 확인되지 않는다. 스토우가 대통령 접견 몇시간 후에 남편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는데, 거기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 후대에 누군가가 만들어 낸 말인 것 같은데, 누구도 이 출처불명의 화두를 부정하지 않았다.

 

스토우 부인은 미국 연방의회가 1850년에 의결한 제2차 도망노예법(second Fugitive Slave Act)에 반대하며 이 소설을 썼다. 소설은 결국 노예해방의 대의를 달성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소설 한 권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에 대의명분을 제공했으며, 미국인들에게 노예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1852년 첫 출판된 엉클 톰스 캐빈의 타이틀페이지 /위키피디아
1852년 첫 출판된 엉클 톰스 캐빈의 타이틀페이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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