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전쟁] 골란고원 중요성은 수자원
[물과 전쟁] 골란고원 중요성은 수자원
  • 아틀라스
  • 승인 2019.03.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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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골란고원 이슈 점화…이스라엘 시리아 모두 영토 주장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북부 골란고원(Golan Heights)은 산맥 남단에 솟은 헤르몬산(Mount Hermon, 2,814m)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려 농경지를 적시는 수원지다. 주요 하천들이 이 고원에서 발원하므로, 수자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전략적 요충지다. 이스라엘 국민의 식수의 3분의1을 공급하는 바니야스 강이 이 고원에서 발원하고, 이스라엘의 주요 식수원인 갈릴리 호수 물의 3분의1이 이 골란고원에서 흘러 내리고 있다.

강수량이 많고 토지가 비옥해 예로부터 이 고원에는 농경과 목축이 성했다. 사막의 나라인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입장에서는 이 고원이 생명선과 같은 지역이다.

평균 해발고도 1,000m인 이 고원에는 이스라엘 주민이 17,000여명 살고 있고, 아랍계 드루즈파 주민도 17,000명이 시리아 국적을 보유하며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유대인 정착촌까지 건설했다.

전체 면적은 1,800으로, 제주도 넓이만하다. 이중 3분의21,200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나머지는 시리아 령이다.

 

골란고원 위치 /김현민
골란고원 위치 /김현민

 

 

골란고원이 국제이슈로 부상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할 때가 됐다고 지난 21일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트럼프가 2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방미에 맞춰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리아와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이 실효지배하지만, 국제법상 침략 점령지이므로, 영토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골란고원이 다시 분쟁의 이슈로 떠오른 것은 이 고원이 갖는 수자원적 측면과 전략적 측면이다. 고원에서 이스라엘 저지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50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은 수자원의 약 40%를 이곳에 의존하고 있다.

골란고원은 2차 대전 직후 시리아 영토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19676일 전쟁이라 불리는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19734차 중동전쟁 때는 시리아가 1,400여 대의 탱크를 동원해 탈환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이스라엘은 고원의 나머지 지역까지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유엔은 1974년부터 이 지역에 완충지대를 두고 약 1,000명의 평화유지군(UN DOF)을 주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에 유대인 정착촌을 30여 곳 건설했고, 1981년 아예 병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검문소 /위키피디아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검문소 /위키피디아

 

 

이 땅의 주인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바뀌었다.

성서 이전 시기에는 아모리인과 아람인들이 지배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이 지역을 빼앗아 점령하고, 이스라엘 왕국은 유대인 일파인 단(Dan) 족과 므낫세(Manasseh) 족이 이 고원을 지배하고 솔로몬왕이 관료를 내려 보냈다.

이스라엘 왕국이 붕괴된 이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를 거쳤다. 로마 시대엔 이스라엘 왕국의 헤롯 2세가 지배했다가 내줬고, 1차 유대-로마 전쟁때 골란고원의 유대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다가 집단자살했다.

중세 이후 골란고원은 이 지역에 할거하던 이슬람 국가들의 땅이었다.

19세기 후반들어 시오니스트들이 이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1891년과 1894년 사이에 유대 금융인 에드몬드 드 로스차일드 남작이 시리아 남부에 약 80을 사들였다. 수년동안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한 노력은 일부분만 성공적이었고 유대인들이 드문드문 거주했다. 러시아 유대인들도 토지를 매입했고, 미국 시온조직도 토지를 구매했다.

하지만 1899년 다마스쿠스의 파샤가 로스차일드 토지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다. 1904~`908년 사이, 크리미아 유대인들이 정착했으나 실패했다. 아랍인들의 적개심, 오스만 제국의 방해 등 때문이었다.

1921~1930년 기간에 골란고원은 프랑스의 위임 통치를 받았고, 이 때 로스차일드가 다시 토지대장을 획득하고, 유대인 정착민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프랑스 위임통치를 받던 골란고원이 시리아에 넘어가면서 유대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났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유대인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요르단 강의 지류를 바꾸기 위 시도했으며, 이는 19666일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쟁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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