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된 그곳…건청궁 특별개방
명성황후 시해된 그곳…건청궁 특별개방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3.08.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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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이후 철거했다가 2006년 복원…궁안의 궁, 8.15.~9.18. 관람 허용

 

1895년 청일전쟁 직후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 일본의 형세가 불리해졌다. 일본은 조선주재 공사를 외교통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에서 군출신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로 교체했다.

그해 91일 부임한 미우라는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황을 만회하기 위해 민비를 시해할 계획을 세우고, 하수인을 동원해 실행계획을 짰다. 미우라는 한성신보사 사장 아다치(安達)와 낭인들을 공사관으로 불러 6천원의 거사자금을 주고 시해의 전위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여우사냥이 시작되었다.

1895년 음력 820, 양력 108일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며, 이를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한다. 한 나라의 왕비가 침략자의 창검에 참혹하게 살해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태워진 날이다.

장소는 경복궁 건청궁(乾淸宮)이었다. 명성황후는 그 시각 건청궁 안의 곤녕합(坤寧閤)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의 낭인무리들은 경복궁에 난입했다. 저지하던 궁내부대신 이경직도 일본의 칼에 죽으니 세자(후에 순종), 힘없는 궁녀, 민비만 있었을 뿐이었다. 놈들은 세자를 밀쳐내고 민비를 찾아 수차례 칼로 난자했다. 그들은 국모의 시체를 태우고 경회루에 재를 뿌렸다.

 

복원된 건청궁 외관 /문화재청
복원된 건청궁 외관 /문화재청

 

을미사변 그날,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경복궁 건천궁이 특별개방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815일부터 918일까지 건청궁을 특별 개방하고 당시의 궁중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회도 함께 개최한다. 운영 시간은 10:00~16:00이다.

건청궁은 1873(고종 10)에 사대부 주택 양식으로 건립되었고 1887년 대한민국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힌 곳이다. 1885년부터 1896년까지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활공간이자 조선의 여러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며 건청궁은 1907~1909년 사이에 철거되었고 이후 문화재청은 200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을 완료했다.

 

이번 특별개방 전시에서는 고종의 처소였던 장안당을 왕의 집무실과 생활실로, 명성황후의 처소였던 곤녕합을 왕비의 알현실, 생활실, 궁녀 생활실로 조성해 선보이며, 각 실에서는 용상, 용교의, 문갑, 경대 등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유물들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장안당 서쪽의 누각인 추수부용루의 창호를 열어두어 향원정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특별 개방 기간 동안 경복궁 입장료와 별도로 건청궁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사전 예매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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