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중국, 두 종류의 대만인
두 개의 중국, 두 종류의 대만인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1.14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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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독립 주장하는 민진당 라이칭더 당선…베이징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 반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진보당 소속 라이칭더(賴淸德·65) 당선인은 1959, 신베이(新北)시 완리(萬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광산촌이었던 그의 고향은 그후 폐광되어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변해 있다. 완리에는 천등을 날리는 스펀, 황금의 도시 진과스가 있고, 바닷가엔 지질 백화점 예류지질공원이 있다. 그중 우리나라 정동진처럼 영화 하나로 뜬 지우펀(九份)이라는 곳이 있다.

대만 총통 당선인을 살펴보다가 지우펀이 떠오른 것은 그곳에 오늘날 대만 정치사의 사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1989년에 량차오웨이(梁朝偉) 주연의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가 촬영되었는데, 1947년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인을 학살한 2.28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 장소가 지오펀이었다.

 

당선 소감을 밝히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 /민진당 유튜브 캡쳐
당선 소감을 밝히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 /민진당 유튜브 캡쳐

 

2·28 사건은 1947228일부터 516일까지 대만 전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로, 대만의 정치, 사회구조의 모순을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되었고,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중국 영토로 회복되었다. 대만에는 명청 교체기인 17세기 말에 명의 유신 정성공(鄭成功)을 점령할 때 본토에서 건너온 한족의 후손인 본성인과(本省人)1945년 수복 이후 새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외성인들은 본성인들을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라고 의심했고, 본성인들은 외성인들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에 대해 지배자인 것처럼 군림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발단은 타이페이시의 어느 담배노점상에서 일어났다. 노점에서 담배를 팔던 여인이 담배공사 요원의 단속에 걸려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단속에 항의하며 충돌이 일어났고, 단속요원은 경찰서로 도주했다. 외성인 경찰이 본성인 시민을 폭행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본성인들은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에 발포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국민당 정부를 이끌던 장제스는 군대를 파견해 진압했다. 당시 사망자는 대략 18,000에서 28,000명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건이 있은지 2년후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마오쩌둥의 공산군에 밀려 본토를 내놓고 대만으로 탈출했다. 대만의 토박이들은 마지못해 장제스의 부대를 맞았던 것이다.

 

국민당 군대와 그를 따라온 외성인들은 주로 베이징 주변에 살던 중국 북부인이다. 그에 비해 명말청초에 건너온 본성인은 저장성, 광둥성 등 남부인 출신이다. 두 종류의 중국인 사이에 앙금은 지워지지 않았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에 건너온 후 오랫동안 계엄통치를 하면서 일당독재를 실시했고, 그 기간에 외성인이 본성인을 지배했다. 외성인은 국민당의 핵심적 지지층을 형성햇고, 본성인들은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다. 국민당의 1당 독재 시기에는 본성인들은 각종 차별, 탄압을 받았던 반면에 외성인들은 기득권을 차지했다.

외성인 총통은 장제스와 그의 아들 장징궈, 마잉주, 롄잔 등이다. 그에 비해 본성인 출신 총통은 천수이볜, 차이잉원이다. 현재 대만에서 본성인과 외성인의 인구비율은 85%15%로 알려져 있다.

 

1988113일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가 사망하고 대만출신 리덩후이가 총통직을 이어받아 계엄령을 해제하고 대만 헌정 이래 처음으로 직선제를 도입했다. 리덩후이는 그 동안의 대륙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실의 중화민국을 추구하려고 했는데, 두 개의 중국론(양국론)을 펼쳤다. 본토의 중공정권(중화인민공화국)1996년 총통선거에서 하나의 중국에서 이탈한 리덩후이를 떨어뜨리려고 했으니, 그는 54%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민주화 직전인 1986년에 창당한 민주진보당(민진당)인데, 본성인이 적극 지지했다. 민진당은 대만 독립을 주장했다. ‘하나의 중국정책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공히 주장하는 바였다. 서로 갈라져 두 개의 정권을 세워 통치하면서도 대의명분으로 통일 정권을 내세운 것이다. 그에 비해 본성인들은 대만은 본래부터 독립된 나라였고, 청나라 시절 200년 정도밖에 복속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독립된 나라임을 주장했다. 민진당은 2000년 총통선거에 천수이볜을 내세워 승리했다.

2008년에 외성인 출신 국민당 마잉주가 총통을 되찾았다. 마잉주는 3차 국공합작을 내세우며 양안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러나 2016년 총통선거에서 여성이자 본성인 출신의 민진당 소속 차아이잉원이 총통에 올랐다. 차이잉원 시절의 양안관계는 악화되었다. 연임을 끝내고 실시된 2024년 이번 선거에서 그동안 8년 단위로 정권을 내주던 패턴이 깨지고 민진당 소속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었다.

 

2024년 대만 총통선거 후보별 지지율 분포 /위키피디아
2024년 대만 총통선거 후보별 지지율 분포 /위키피디아

 

개표 결과를 보면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40.05%,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가 33.49%,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26.46의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2야당 민중당 후보가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을 얻은 것은 민진당-국민당의 오랜 양당구도가 흔들리는 징조로 보이며, 또한 본성인이니 외성인이니 하는 해묵은 감정이 20-30 세대에 의해 부정되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라이칭더 후보는 차이잉원보다 대만독립파의 성향이 더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본성인의 중심지역인 타이난 시장을 역임했다. 타이난 시장이던 2014년 상하이 푸단대를 방문해 대만 독립은 대만인의 자결권을 위한 것이라며, 1989년 텐안몬(天安門) 시위는 애국운동이라고 말했다. 텐안몬 사태는 중국에서 금기어다. 그는 국호를 대만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총통 후보로 확정되자, 베이징 정부는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며 비난했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중국 국무원 천빈화 대변인은 대만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섬 안의 주류 민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조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총선에 대해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눈치를 보았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최근에 대만은 이미 주권국가이므로, 당선되더라도 독립을 선포하지 않겠다면서 한발 물러서는 발언을 했다. 중화민국 국호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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