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독립운동 촉발한 책 ‘나를 만지지 마라’
필리핀 독립운동 촉발한 책 ‘나를 만지지 마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4.03.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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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리살, 카톨릭에 저항하며 민족 의식 고양…미국 지배기에 자치법에 영향

 

호세 리살의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늘민, 2015)를 읽으면서 필리핀을 다시 보게 되었다. 1880년대 필리핀에 이런 훌륭한 소설가가 있었다는 사실, 이 당시에 필리핀은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무렵에 성리학과 중화주의 미몽에서 막 깨어나던 개화파들의 사상에 비하면 리살은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명은 놀리 메 탄게레’(Noli Me Tángere)로 신약성서 요한복음(20:13~17)에 나오는 구절의 스페인어 표현이다. 예수가 부활해서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는 대목이다.(대한성서공회) 영어 성경엔는 “Do not hold on go me”로 번역되었고, 책의 영어 번역에 "Touch Me Not이란 제목이 달리기도 했다.

 

책 표지 /네이버책
책 표지 /네이버책

 

배경은 스페인 지배가 300년 이상 되던 1880년대 산디에고라는 지방도시다. 주인공 크리스토스토모 이베라와 애인 마리아 클라라가 결혼을 약속한다. 이베라는 스페인과 원주민의 혼혈(메스티소)이고, 클라라는 원주민 부자 카피탄 티아고의 딸이다.

카톨릭 신부 다마소가 악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다마소는 이베라의 아버지를 죽게 하고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 강에 내던졌고, 클라라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 주인공들이 카톨릭 사제들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에 소설이 반카톨릭의 성격을 띤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호세 리살(José Rizal, 1861~1896) 자신이거나 그의 주변 인물을 상징한다.

주인공 이베라는 리살 자신이다. 리살은 스페인 식민지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를 깨고 민족이란 개념을 세웠다. 그는 부유층 메소티소 집안에서 태어나 선진문물을 배운 계몽지식인, 일루스트라도(ilustrado)였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에서 공부릃 한 그는 안과 전공 의대생으로, 26살의 젊은 나이에 장편소설 놀리 메 탄게레를 스페인어로 쓰고 독일에서 출판했다.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베라는 개혁적이었고, 민족의식을 자각해 나갔다.

그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범죄가 될수 없습니다. 그 정반대지요! 지난 300년 동안 우리는 저들에게 구걸하여 살았습니다. 저들의 사랑을 구했고, 저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저들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모욕하며 빈정대고 동일한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은 우리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펼칠 것입니다.” (II, 302p)

리살은 개혁과 자치운동을 주장하는 온건노선으로,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생각을 달리했다. 소설에서 이베라는 민중에 기반을 둔 무장투쟁론자 엘리아스의 제의를 거부한다. 엘리아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 국민들은 수세기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번개가 내리쳤고 그 번개가 부르고스, 고메즈, 자모라를 죽임으로써 우리 조국을 일깨웠습니다. 그때로부터 우리의 마음에는 새로운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열망들이 흩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하느님의 인도에 따라 하나로 단결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을 내벼러 두지 읺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열망은 바로 자유를 향한 열망입니다.” (II, 190p)

리살과 엘리아스는 결별한다. 게다가 리살의 선대가 엘리아스의 할아버지를 괴롭히던 토호세력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둘 사이의 감정은 격해진다. 하지만 소설은 끄트머리에서 둘의 화해를 이끌어 낸다. 엘리아스가 라살을 구출해 해외로 망명시킨다.

 

주인공 이베라의 여인 마리아 클라라는 작가의 약혼녀였다가 영국인 철도기사에게 결혼한 레오노르 리베라-키핑이라는 실제인물이고 한다. 어려서부터 이성친구였고, 유학 중에서 편지로 서로의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리살의 소설이 카톨릭 교단에서 금지되고 그가 스페인 당국에서 위험인물로 지목되자 그녀의 부모는 영국에서 잘 나가는 엔지니어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다. 소설에서도 이베라가 카톨릭에서 파문을 당하자 양아버지 카피탄 티아고는 마리아 클라라의 결혼상대를 바꿔 스페인 출신 남성 리나레스를 지정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클라라는 결혼을 포기하고 수녀가 되는 것으로 종결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친 여인 시사는 리살의 어머니가 도로변에 있는 누추한 감옥에 수감되었던 경험을 녹여냈다고 한다. 스페인의 비판자들은 소설이 과장되었다고 지적했지만, 리살이 경험한 내용들이다.

 

소설이 유럽에서 출간되자 필리핀 카톨릭의 한 분파인 도미니크회는 책의 유입과 인쇄, 판매를 금지시켰다. 책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사람으로 보았다.

성경의 구절에서 제목을 달았지만 나를 만지지 마라는 현실의 카톨릭을 부정했다. 스페인이 고작 수천명의 군인으로 7,000여개의 섬을 통치하고 남부의 모로(이슬람)족의 저항을 제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카톨릭 사제들로 하여금 지방의 통치를 일임하다시피 했다. 필리핀에는 프란시스코회, 도미니크회, 아우구스티누스회 등 여러 파벌이 들어와 경합하면서 마을에선 제왕적 통치를 수행했다. 필리핀에서 민족주의가 반카톨릭에서 출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리살은 나는 특정 종교의 의식이나 잘못된 신앙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성직자들을 비판한다. 종교의 가면을 슨 사람들은 당연히 공격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소설은 다마소와 살비 신부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호세 리살 /위키피디아
호세 리살 /위키피디아

 

이 소설은 리살로 하여금 민족운동 지도자로 부상시켰다. 필리핀에 있는 그의 가족은 스페인 식민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그의 매형 중 한 사람은 소설 속에서 이베라의 아버지가 다마소 신부에게 당했던 것처럼 시신이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했다고 한다.

리살은 귀국을 망설였다. 하지만 민족운동가로서 국민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92년 그가 귀국하기 직전에 두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 하나에는 스스로 위험에 뛰어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두 번째 편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자신의 몫숨을 바칠 결심을 했다는 표현이 들어 있다.

귀국하자 그를 바로 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했다. 스페인당국은 곧바로 그를 민다나오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의 유배 소식은 급진주의자들을 자극시켰다. 호세 리살이 체포된 직후에 급진운동조직 카티푸난(Katipunan)이 조직되었다. 안드레스 보나파시오가 조직한 이 비밀단체는 온건한 투쟁이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무장독립운동을 추진했다. 카티푸난의 폭동계획이 폭로된 후 스페인 지배자들은 리살의 존재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189612월 그를 처형했다. 35세의 젊은 나이였다.

 

리살이 죽고 2년후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 패했고, 필리핀은 미국령이 되었다. 미국 하원의원(위스콘신) 헨리 쿠퍼는 새로 미국령이 된 필리핀을 이해하기 위해 리살의 소설을 읽었고, 그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리살의 작품으로 인해 필리핀인이 미개하고 야만적인줄 알았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쿠퍼 의원은 필리핀에 자치를 주어야 한다면서 법안을 만들었는데 이 법안이 필리핀에 하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필리핀 조직법(Philippine Organic Act)이다. 쿠퍼법이라고도 하는 이 법은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고, 1907년 필리핀에 초대 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호세 리살은 현재 필리핀 사람들에게서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가 죽은 1230일은 호세 리살의 날로 법정공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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