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0시 1분(트랜스바이칼 시간대 기준), 100만을 넘는 소련군이 일제히 국경을 넘어 만주로 진격했다. 6개월전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약속한 시간이다. 얄타에서 미·소 정상은 독일이 항복하면 3개월후에 소련군이 일본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시각은 서유럽 시간으로 5월 8일, 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 새벽 0시 43분이었다.

혹자는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기 6일 전에 소련이 의도적으로 동아시아에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미군 폭격기가 3일전(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의 패망에 가시화된 시기에 소련이 뒤늦게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소련군의 대일전쟁 참전은 3국 정상 간에 약속된 사항이다. 소련군 개입은 미국의 원폭 투하와 함께 일본의 저항의지를 꺾어버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소련군의 참전이 일본의 패망을 앞당겼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는다.

8월초만 해도 장제스나 마오쩌둥은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일본은 태평양과 동남아 일부에서 밀리긴 했지만 중국에선 전선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국민당군이 지리멸렬 상태였고, 공산군도 지하와 깊은 산중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은 공군요원 수만명을 중국에 파견했을 뿐 지상군은 한명도 파견하지 않았다. 중국인 너희들이 너희 땅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었다.

이럴 때 소련군이 무려 160만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했다. 일본 관동군의 주력은 동남아 전선에 투입되었고, 만주엔 보조병력으로 채워져 있었다. 만주와 몽골에 남아 있던 일본군은 66만 정도로 추산된다. 소련군은 병력수나 화력 면에서 관동군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소련군은 독소 전쟁을 끝냈기 때문에 일소전쟁에 주력 부대와 화력을 투입할 여력이 있었다.

 

 

소련이 아시아 국가의 해방을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대규모 군대를 투입한 것은 결코 아니다. 소련은 제정러시아 이래 오랫동안 추구해온 극동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참전한 것이다. 참전 조건은 랴오둥의 뤼순(旅順)과 다렌(大連)항, 북한의 청진항, 만주의 중동철도와 남만주 철도의 이권이었다. 게다가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를 되찾는다는 조건도 얻어냈다. 한발 나아가 어수선한 틈을 노려 만주를 집어삼킬 생각도 했을 것이다.

만주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집착은 제정 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러시아인들은 코사크족을 앞세워 1639년에 아무르강 하구 오호츠크해를 발견했다. 그들은 따듯한 지역을 찾다가 만주를 넘보기 시작했다. 1643년 러시아 개척자들은 아무르강 유역에서 청나라에 조공을 하고 있는 몽골계 다우르족과 접촉했다. 러시아인들은 이 몽골족을 제압하려 했고, 당시 청나라 순치제는 군대를 파견해 대응했는데, 이 전투가 조선도 두 차례 참여한 나선정벌(1654, 1658)이다.

1689년 러시아와 청조는 국경 협상을 벌어 시베리아와 만주의 경계를 확정하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했다. 그후 청나라의 기력이 쇠하면서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헤이룽강 이북을 빼앗기고, 2년후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마저 빼앗겨 버렸다. 이로써 외만주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내만주만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외몽골이 소련의 영향권에, 내몽골이 중국 영향권에 남은 것과 마찬가지다.

청말에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의 연장선인 중동철도와 남만주철도, 뤼순·대련항의 조차권을 확보했으나 러일전쟁(1904~1905)에 패한 이후 일본에 빼앗겼다.

40여년만에 일본과 소련의 대세가 역전되었다. 소련은 러시아제국이 만주에서 가졌던 권리를 모두 되찾기 위해 백만대군을 일으킨 것이다.

 

 

소련은 만주를 침공하기 하루 전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무장관이 모스크바 주재 대사 사토 나오다케(佐藤尚武)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선전포고를 대신했다. 일본은 양국간 중립조약이 유효한데다 독소 전쟁에서 기력을 쏟았기 때문에 소련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소련군의 기습공격은 성공했다. 소련군은 동과 서, 북쪽의 세 방면에서 포위, 공격했다. 중국군에게 그렇게 막강하던 관동군은 소련군의 기습에 맥없이 무너졌다. 관동군은 의외로 약했다. 통신시설이 허술했고, 보급망이 끊어졌다. 하이라얼(海拉爾)과 무단장(牡丹江)에서 소규모 저항이 있었지만, 관동군은 우월한 소련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했다. 만주와 내몽골의 전선은 유럽전선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였다. 소련군은 1주일만에 성패의 관건이 되는 주요 거점을 확보했다.

침공 이틀째인 8월 10일,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는 만주국 황제 푸이에게 수도 신징(新京, 창춘)을 버리고 지린성 퉁화(通化)로 도피할 것을 요구했다. 푸이는 거부했다. 야마다는 피신하지 않으면 적군에 살해될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다음날인 11일 푸이는 창춘을 떠났으나, 소련군이 이미 퉁화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다.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듣고 만주국 내각은 장제스와 협상하기 위해 만주국 해체를 결정했고, 이에 푸이는 칙서를 내려 퇴위를 선언했다. 그는 오갈데가 없이 전전하는 가운데 일본으로 가려다가 8월 17일 공항에서 소련군에 체포되었다. 한때 대청제국의 선통제였던 그는 포로가 되어 전범의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8월 15일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은 관동군에 혼선을 불러 일으켰다. 천황은 항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다만 포츠담 선언울 수용한다고 말했다. 포츠담 선언은 항복을 뜻했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진 천황의 목소리도 불투명했다. 관동군 일부 장교는 천황이 항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대소항전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군은 저항하는 관동군에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8월 20일 소련군은 선양(瀋陽), 창춘(長春), 치치하얼(齊齊哈爾)을 접수했다. 일본 군부와 관동군 사령부는 산하 부대에 저항을 중지하라고 하달했다.

소련군은 만주 이외에도 사할린 남부, 쿠릴열도, 북한 지역에 군대를 파견했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넘겨주기로 한 영토이고, 북위 30° 이북의 북한은 소련의 신탁통치령으로 약속된 곳이다.

 

 

스탈린은 일본이 항복하기 하루전인 8월 14일, 장제스 정권과 중소우호조약을 체결했다. 그 내용에 일본이 항복한 후 3주일 내에 소련군이 철군을 시작해 3개월내에 완전하게 철수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스탈린은 철군을 차일피일했다. 일본이 항복한지, 3주, 3개월이 지나도록 소련군은 만주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련군은 이듬해인 1946년 5월 3일에 완전 철군하기까지 9개월간 만주에 주둔했다. 그 사이에 소련군은 만주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는 아무리 전범국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용서를 받지 못한다. 수십만명의 일본군 포로는 시베리아 노역장으로 끌려갔고, 잔류한 일본 여인들은 소련군의 잡단강간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장제스는 스탈린이 만주를 접수하려는 것으로 보고 철군을 강하게 요구했다. 스탈린은 만주를 점령한 기간에 국민당 군대의 만주 진입을 억제하고, 관동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 주었다. 소련은 철군을 질질 끌며 만주에 막강한 공산군을 형성했다. 아울러 북조선에 친소적 인물인 김일성을 앉혔다. 소련이 노린 것은 바로 대리통치를 통해 만주와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것이었다.

소련의 대일전쟁 참전은 동아시아 역사에 큰 획을 긋는다. 소련군은 만주 점령 9개월 동안 공산당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고, 북한을 공산화함으로써 한반도 분단과 6·25 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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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kipedia, Soviet invasion of Manchuria

Wkipedia, Evacuation of Manchukuo

Wkipedia, Soviet–Japanese War

Wkipedia, Soviet occupation of Manchu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