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인도①…토후국 주권 인정
영국령 인도①…토후국 주권 인정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2.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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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포 수로 군주 등급 규정…직할령과 군주국 구별한 이원적 통치

 

1857년 세포이 항쟁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상인들이 주주로 참여한 동인도회사는 군대를 보유했지만 본질적으로 통치를 위한 조직은 아니었다. 이듬해 영국 의회는 인도정부법을 의결해 동인도회사를 해산하고 회사의 모든 권한을 영국정부에 이양하도록 했다. 이로써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통치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인도에 대한 경제적 수요가 상업에서 제조업으로 전환된 것도 통치방식 변화의 배경이 된다.

1858년부터 인도·파키스탄이 독립한 1947년까지 89년 동안 영국이 직접통치한 인도를 브리티시 라지(British Raj)라고 한다. 라지(Raj)는 힌두어로 왕국(kingdom) 또는 제국(empire)이라는 의미인데, 브리티시 라지는 무굴제국, 마라타제국에 이어 인도 현대사의 큰 획을 형성한다.

 

영국령 인도의 군주국과 직접통치령 /GloblaSecurity.org
영국령 인도의 군주국과 직접통치령 /GloblaSecurity.org

 

영국은 본국에 인도 담당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 for India)을 두었다. 인도 장관은 내각에 소속되어 있었고, 의회에 책임을 졌다. 인도 현지에는 총독을 두었는데, 그에게 부왕(Viceroy)이란 칭호가 주어졌다. 인도정부법에 따라 인도의 부왕은 집행위원회(Executive Council)을 구성하고, 그 위원이 각 부서의 장과 자문역할을 했다. 이 위원회가 인도를 지배하는 내각인 셈이다.

영국령 인도의 수도는 캘커타(지금의 콜카타)였다가 1911년 델리 인근에 행정수도로 뉴델리를 조성해 옮겼다. 지방행정은 주(Province)를 두었고, 그 위에 벵갈, 마드라스, 봄베이(지금의 뭄바이)3개 관구를 설치해 지사(Governor)를 임명했다. 주에는 부지사(Lieutenant Governor)를 두었다. 영국은 주 정부보다 관구 정부에 더 많은 권리와 권한울 주어 광역단위로 통치했다.

 

인도는 넓고, 인구도 많고 계급구조와 인종이 다양하다. 유럽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영토에서나 인구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대국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철저하게 분열정책(Divide and Rule Policy)을 채택했다. 그중 하나가 직접통치와 간접통치의 이원화다.

인도는 수많은 작은 제후국으로 나눠져 있었다. 인도 역사에서 아대륙(亞大陸, subcontinent)이 통일되었던 시기는 극히 짧고 대부분 분열되어 있었다. 대제국을 형성한 마우리아 왕조(BC 317BC 180)와 무굴왕조(1526~1857)도 제후국 군주의 복속을 전제로 지배를 했다.

영국은 과거의 동양적 지배방식을 그대로 도입했다. 종주국과 조공국의 관계는 중국만 아니라 인도에서도 오랜 관행이었다. 황제는 조공국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았고, 조공국은 황제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승인)을 받았다. 이 동양적 번왕국(藩王國) 제도를 영국이 그대로 답습했다. 영어로 ‘princely state’인데, 영국 국왕(king 또는 queen)을 종주국 군주로, 토후국의 군주를 왕자(prince)로 보는 관계다. 여기서 prince는 국왕의 아들이 아니라, 국왕 다음의 지위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왕자국인데, 이 글에서는 일단 군주국이라고 하자.)

 

바로다 군주국의 마하라자 사야지라오 가에크와드 3세 /위키피디아
바로다 군주국의 마하라자 사야지라오 가에크와드 3세 /위키피디아

 

군주국 제도는 동인도회사 지배의 한계를 넘는 과정에서 채택되었다. 1857년 이전까지 동인도회사는 전쟁을 통해 크고작은 군주국을 야금야금 합병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벵갈 전쟁, 카르나티크 전쟁, 마이소르 전쟁, 마라타 전쟁을 거치면서 동인도 회사는 인도 동부와 남부 일대에 광대한 영토를 병탄해 직할령을 삼았다. 그런데 세포이 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하이데라바드, 마이소르 등 토후국들의 협조를 얻었다. 영국 지배자들은 토후국 군주를 없애고 직접 지배하는 것보다 그들을 앞세워 인도인들을 간접 지배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동인도회사를 청산하고 본국의 직접 통치로 들어가면서 인도 전역에 남아 있는 제후국들을 군주국(princely state)로 전환하는 작업을 벌인 것이다.

토후국 군주의 입장에서는 무굴이든, 마라타든, 영국이든 받드는 상국(上國)만 달라졌을 뿐 자신의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 유지되고 상속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1878년엔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령 인도의 황제에 올랐다. 아울러 인도 총독은 지방군주국의 영토를 보장하고 후계자 입양권을 인정한다는 본국의 입장을 발표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들을 협력자이자 동맹자로 받아들였고, 제후국들은 영국 국왕에 복종하는 조공국이 되었다.

 

레와 군주국의 왕궁 /위키피디아
레와 군주국의 왕궁 /위키피디아

 

19478월 독립하기 직전에 영국령 인도 전체 영토의 60%가 직할령이었고, 40%가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의 인구는 전체의 23%에 이르렀다.

군주국은 형식적으로 독립국이었다. 군주가 피지배자에게 세금을 걷었고, 치안에 필요한 자경권도 확보했다. 크게는 면적 21에 인구 1,600만의 하이데라바드에서, 작게는 1.65, 인구 82(1941)의 빌바리(Bilbari)까지 다양했다.

1957년 인도·파키스탄이 독립하기 직전에 공식적으로 565개의 군주국이 있었다. 숫자는 부풀려 졌으나, 실제로 유효한 군주국은 210개 정도로 간추려 진다. 나머지는 자민다르(Zamindar) 또는 자기르(Jagir)라는 대지주의 땅이었다. 대표적인 군주국은 하이데라바드, 마이소르, 카슈미르, 바로다, 시킴, 인도레, 괄리오르 등이다.

군주의 명칭도 다양했다. 힌두 지배자의 경우 위대한’(great)이란 뜻의 마하(maha)를 써서 마하라자, 마하라나, 마하라오 등을 사용했고, 여성 군주 또는 왕비의 경우 마하라니라고 했다. 남인도에서는 바르마(Varma)라고 했다. 무슬림 군주국에선 나왑(Nawab), 니잠(Nizam), 등을 사용했다. 라자, 라제, 라이, 라나, 라오 등 군주국이 종래에 사용하던 타이틀을 그대로 사용케 했다.

 

영국은 500여개 군주국을 동일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군주가 영국령 인도 또는 영국의 식민지를 방문할 때 해군이 쏘는 예포의 수로 군주국 등급을 차별했다. 가장 많은 경우 21, 적은 경우는 9발인데, 이 범위에 드는 군주국 수는 1947년 기준으로 118개였다. 나머지 우수마발의 군주들에겐 예포 한방도 쏘지 않았다.

예포 수는 군주국 등급을 나타났다. 영국은 예포를 쏘는 군주국을 살류트국(Salute state)이라 부르며, 별도로 관리했다. 21발의 예포를 쏘는 군주국은 면적 20이상인데, 이는 영국 영토보다 넓은 나라다. 하이데라바드, 카슈미르, 마이소르, 바로다, 괄리오르 5개국이었다. 19발의 대우를 받는 나라는 그 아래의 왕국이었는데, 보팔, 인도르, 우다이푸르 등 6개국이었고, 11~17발 사이의 국가는 77개국이었다.

예포 수의 증가가 군주국의 격상이었다. 1917년 괄리오르의 군주는 19발에서 21발로 격상되었고, 1921년 카슈미르도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마이소르 왕국의 국왕(11살)과 형제 자매들(1895) /위키피디아
마이소르 왕국의 국왕(11살)과 형제 자매들(1895) /위키피디아

 

영국 지배자들은 민중운동의 반발에 대처하기 위해 옛지배자들과 손잡았다. 지방군주는 물론이고 대지주인 자만다르와 소지주을 지지자로 끌어들여 방파제로 삼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지주의 땅을 돌려주고 보호해 주었다.

영국은 또 종교적 대립을 적극 활용했다. 종교, 계급, 인종의 코뮤니티에게 다양한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분열시켰다. 공동의 이해·직업·언어·종교로 결합된 사회집단이 다른 집단과 구별해서 자신의 특질이나 우위성을 강조하는 방식의 코뮤널리즘(communalism)은 영국의 인도 지배 과정에서 생상된 용어다. 힌두교와 무슬림 집단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를 대외적으로 독립국인양 활용했다. 영국령 인도는 1900, 1920, 1928, 1932, 1836년 올림픽에 별도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독립 직전의 브리티시 라지는 1945년 국제연합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했다. 영국 지배하의 인도는 오늘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로 분리되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British Raj

Wikipedia, Princely state

Wikipedia, Salute state

GloblaSecurity.org, Princely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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