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족들이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를 치지하고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공작 지위와 영지를 얻게 된 것은 서기 911년이다. 이들이 노르만족(Normans)이다. 노르만의 영주 에드워드는 1066년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침공해 윌리엄 1세로 즉위하며 노르만 왕조를 열었다.

그로부터 100년후 잉글랜드의 노르만족이 아일랜드를 공격하는데, 그 원인은 아일랜드의 왕족이 제공했다. 당시 아일랜드는 작은 소왕국들로 분열해 대립하고 있었다. 렌스터(Leinster)라는 동부지역 소왕국에 더모트 맥머로우(Dermot MacMurrough)라는 왕이 있었는데, 서부지역 코노트(Conchobair)의 왕 로리 오코너(Rory O'Connor)와 갈등을 빚다가 1166년에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는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2세(Henry II)를 찾아가 왕위를 되찾기 위해 지원병을 요청했다. 헨리 2세는 쾌히 허락했다.

잉글랜드 영주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맥머로우를 지원한 사람은 서부 웨일즈 지역에 영지를 갖고 있는 노르만 영주 리쳐드 드 클레어(Richard de Clare) 백작이었다. 그는 강궁(Strongbow)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드 클레어는 맥머로우의 딸과 결혼하고 맥머로우가 죽으면 렌스터를 상속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일랜드의 병력을 보내는데 동의했다.

 

 

1169년 5월 1일 드 클레어는 40명의 기사, 60명의 중기병, 360명의 궁수와 함께 아일랜드 섬 남부 웩스포드에 상륙했다. 그곳에서 맥머로우의 군사 500명과 합세해 북상했지만, 아일랜드인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드 클레어는 추가로 노르만 병사를 투입하고 1년여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에 마침내 렌스터를 되찾고, 더블린, 워터포드를 점령했다. 멕머로우는 렌스터 왕권을 회복했고, 드 클레어는 그의 딸과 결혼했다.

맥머로우는 오래 살지 못했다. 1171년 5월 맥머로우는 세상을 떠났고, 약속대로 드 클레어가 렌스터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맥머로우에겐 동생이 있었다. 켈트의 관습에 왕이 죽으면 동생에 계승권이 있고, 사위는 후순위였다. 이 사실이 빌미가 되어 아일랜드의 코노트, 데스먼드, 얼스터 등 소왕국들이 일제히 노르만군을 공격했고, 랜스터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토착 연합군은 더블린을 2개월간 포위해 노르만 병사들을 아사의 위기로 몰아 넣었다.

드 클레어와 노르만 귀족들은 협상을 제의했다. 노르만이 점령한 지역을 인정해 주면 소왕국 언합의 상급왕(High King)의 권위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은 노르만의 제의를 거부했고,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드 클레어가 이끄는 노르만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승기를 잡아갔다.

 

 

한편 영국 국왕 헨리 2세는 아일랜드 파병을 결정한다. 국왕은 드 클레어와 그의 일당이 아일랜드에서 세력을 굳히기 이전에 자신의 영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다. 헨리 2세는 아일랜드 토착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1171년 9월 몸소 기사 500명, 중기병 4천명의 대병력과 공성무기를 이끌고 아일랜드 워터포드에 상륙했다. 헨리 2세의 아일랜드 상륙은 영국 국왕으로는 처음으로 기록된다.

 

앞서 헨리 2세는 교황 아드리아누스 4세(Adrianus IV)로부터 자신이 ‘아일랜드의 영주’(Lord of Ireland)로 인정을 받는 조취를 취했다. 교황은 아일랜드 카톨릭이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 분노하고 헨리 2세를 통해 아일랜드를 봉지로 하사하는 형식을 취했다.

헨리 2세는 렌스터를 드 클레어의 영지로 하사하고, 더블린, 웩스포드, 워터포드를 국왕 직할지(crown land)로 선포했다.

아울러 토착 아일랜드 왕들과 추장 15명에게는 봉지를 하사하는 형식을 취해 영국 국왕의 휘하의 들어오되, 노르만 귀족들의 영지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하지만 상급왕의 봉토인 코노트, 얼스터, 미스(Meath), 위닐(Ui Neill)의 왕들은 헨리 2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헨리 2세는 복종하지 않은 왕의 영토에 대해서는 노르만 귀족 휴 드 라시(Hugh de Lacy)에게 봉토로 주어 후에 침략해 뺏으라고 지시하고 돌아갔다.

헨리 2세는 아들 존(John)에게 ‘아일랜드 영주’ 지위와 영지를 주고 드 라시에게 통치하게 했다.

국왕이 귀국한 후 노르만 귀족들은 토착 왕국과 부락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토착 켈트족들은 산속으로 압박해 나갔다.

1175년 10월 헨리 2세는 아일랜드의 상급왕 루어리 오 콘코바르(Ruaidrí Ua Conchobair)를 윈저 성으로 불러 조약을 체결했다. 윈저 조약(Treaty of Windsor)은 렌스터, 더블린, 워터포드를 영국의 영지로 인정하고, 나머지 지역은 현지 왕과 추장들이 통치하되 영국 국왕에 충성을 서약하는 내용이다. 또 아일랜드인들로 하여금 사육하는 소의 10마리당 1마리의 가죽을 공물로 영국 국왕에게 바치도록 했다.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조는 아일랜드를 봉건적 방식으로 통치했다. 국왕의 직할지와 노르만 귀족 영지만 영국령이고, 나머지 지역은 영국에 복속하는 조건으로 아일랜드 토착세력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의 종교와 생활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성 패트릭에 의해 개척된 아일랜드 카톨릭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베네딕트 수도회, 시토 수도회 등 유럽 대륙에서 이식된 종파에 의해 대체되어 갔다. 또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이 제도화되었고, 주화가 만들어졌으며, 영국식 행정제도, 건축기술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의 지배에 저항심을 느꼈다. 아일랜드의 켈트족은 앵글로-노르만의 시기에도 고유한 문화를 잃지 않고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다. 1261년 데스먼드의 왕 피닌 맥카시(Fínghin Mac Carthaigh)가 이끄는 토착부대는 칼란 전투(Battle of Callann)에서 앵글로-노르만군을 대파했다. 이후 아일랜드에서 노르만의 영향력은 크게 쇠퇴했다.

 

 

오히려 노르만 귀족들이 아일랜드화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귀족들은 아일랜드어를 사용했고, 아일랜드인과 결혼하고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놀이를 했다. 앵글로-노르만들은 “아일랜드인보다 더 이일랜드인으로 되었다”"(More Irish than the Irish themselves)는 말이 전해진다.

영국 본국에서는 노르만 귀족들이 아일랜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1366년 킬케니법(Statute of Kilkenny)을 제정했다. 이 법은 앵글로-노르만인들이 영어만을 사용해야 하고, 분쟁 해결도 잉글랜드 법에 따르고, 아일랜드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며 아일랜드의 민속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곧 사문화되어 버렸다.

1348년 흑사병(Black Death)이 돌면서 앵글로-노르만의 영향력은 더블린 근처 페일(Pale)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흑사병은 농촌 지역에 사는 아일랜드인보다 도시에 밀집해 사는 영국인에 더 심한 타격을 주었다. 페일은 더블린을 중심으로 80km 지역으로 주변에 장애물을 설치한 고립된 지역이었다. 영국은 더블린 근처만 지배하고, 페일 이외의 지역은 아일랜드인들의 땅으로 귀속되었다.

영국의 장미전쟁(1455~1486) 기간엔 어느 세력도 아일랜드를 통치할 여력이 없었다. 아일랜드 영주 자리마저 피츠제럴드(Fitzgerald) 백작 가문으로 넘어갔다.

장미 전쟁이 끝나고 영국에선 튜더 왕조가 열렸다. 잉글랜드 의회는 포이닝스 법(Poynings' Law)을 제정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아일랜드 의회가 잉글랜드 왕의 허락 없이 열 수 없고 아일랜드의 모든 법안은 일글랜드 왕과 추밀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잉글랜드에서 통과된 모든 법안은 아일랜드에서 시행되도록 했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직할통치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더블린 주변 이외는 영국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았다.

튜더 왕조는 노르만 왕조에 이어 다시 아일랜드를 침공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 결심은 1536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Henry VIII)에 의해 이행된다. 이로써 1171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의 노르만 시대는 360년만에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