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반도의 고대 해양제국 랑카수카
말레이반도의 고대 해양제국 랑카수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1.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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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최초 국가…메콩강 옥에오, 중국 남부 거쳐 우리에게도 영향 미쳤을 것

 

6세기초 중국 양()나라에서 그려진 양직공도(梁職貢圖)는 당대 동아시아 여러나라의 정보를 많이 알려준다. 직공(職貢)은 사신을 말하는데, 양직공도 원본에는 30여개국 정도의 사신이 그려졌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그중 12개국 사신의 기록만 남아 있다. 그 중 백제 사신과 보고내용이 적혀 있어 우리나라에서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양직공도에 랑아수국(狼牙脩國)이란 나라의 사신이 등장한다. 사신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약간 검은 피부에 신발은 신지 않았고 옷도 거의 입지 않았다. 열대지방에서 온 사신을 보여진다. 고고학자들의 연구 끝에 이 나라는 말레이반도 태국 영토에 위치하는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그곳에 랑카수카(Langkasuka)라는 고대왕국이 있었는데, 이 나라의 국왕이 515년에 중국에 사신을 보낸 것이다.

 

양직공도의 狼牙脩國 사신 부분 /維基百科
양직공도의 狼牙脩國 사신 부분 /維基百科

 

양직공도는 양 무제(武帝)의 일곱재 아들이면서 천재적인 화가였던 소역(蕭繹, 훗날 元帝)이 그렸다. 왕자 시절에 그는 외국 사신을 직접 보거나 견문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설명을 넣어 화첩을 만들었다. 양직공도에는 波斯(페르시아(에프탈) 등 중앙아시아, 林邑(참파婆利(인도네시아 발리) 등 동남아시아, 中天竺(인도北天竺獅子(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백제와 왜 등 동아시아의 사신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양나라의 수도 건강(建康, 난징)에서 백제 사신과 랑카수카 사신이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동남아시아 풍 문화가 백제·마한에서 나타난다. 지배계급이 위세품으로 사용하던 구슬이 대표적이다. 동남아 사신이 중국에 귀중품을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면, 중국이 그중 일부를 백제에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중국 남부 항구에사 백제와 랑카수카의 상인이 보석을 거래했을수도 있다.

랑카수카 위치 /위키피디아
랑카수카 위치 /위키피디아

 

양직공도에 랑카수카에 대한 설명은 198자로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南海(남지나해)에 있으며 廣州(광저우)에서 24천리 떨어져 있다.

- 동서는 30일 거리, 남북은 20일 거리이다.

- 항상 따뜻하고 초목이 무성하며 눈과 서리가 없다.

- 금은과 波律沈香이 많다.

- 남녀 모두 웃통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古貝로 몸을 감았다. 국왕은 雲霞布로 어깨를 덮고, 귀족과 신하는 짚신을 신고 허리에는 금줄을 두른다. 귀에는 금귀고리를 하고 여자는 포를 입는데 그 위에 瓔珞을 더한다.

- 전돌을 쌓아 성을 만드는데 重門과 누각이 있다. 누각은 3층짜리도 있다.

- 왕이 행차할 때에는 코끼리를 타고 을 갖추고 위에 하얀 우산을 쓴다. 병사들의 호위가 매우 엄중하다.

- 사신(國人)이 말하기를 처음 나라를 세운지 400여 년이 지나 쇠약해졌는데 왕족 중에 현명한 자가 있어 백성이 그를 따르자 왕이 가두었지만 쇠사슬이 저절로 끊어지니 감히 죽이지 못하고 추방했다고 한다. 천축으로 도망가자 천축()이 장녀로 처를 삼게 하였는데 이윽고 狼牙修 왕이 죽자 그를 맞이하여 왕이 되었다. 20여 년 후에 죽고 아들인 婆伽達多가 왕이 되었다.

- 天監 14(515)에 사신 阿撤多를 보내어 표를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권오영 논문 인용)

 

랑카수카의 위치는 어디인가. 양직공도에서 제시한 바, 광저우에서 24천리 떨어진 곳은 막연하다. 당시 측량기술도 빈약했으므로 역사학자들 사이에 랑카수카의 위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태국 파타니주의 야랑(Yaran)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고고학자들은 그 근처를 고대 랑카수카의 도읍으로 비정하게 되었다.

랑카수카는 말레이반도에서 기록상 등장하는 최초의 국가다. 말레이반도에서 가장 좁은 지협(地峽, isthmus)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타이만을 끼고 메콩강 하류의 옥에오(Oc Eo)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벵골만을 끼고 인도로 갈수 있다. 배가 길쭉한 말레이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 랑카수카에서 내려 하역한 다음, 그 물건을 좁은 육로를 이동시켜 말레이반도 서쪽 항구에서 실어 인도로 보낼수 있다. 수에즈 운하가 뚫리기 전에 인도로 가는 유럽인들이 중동의 지협을 건너던 것과 비슷한 이치였을 것이다. 베트남 남부 옥에오에도 고대 캄보디아와 메콩강 하류를 지배하던 푸난(扶南) 왕국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랑카수카는 항구도시로서 인도 남부, 스리랑카, 옥에오, 중국 광저우·난징을 연결했을 것이다. 또 자바섬과도 연결했다. 6세기 무렵 랑카수카는 동남아시아 해상에서 강성한 해양 도시국가였다.

 

랑카수카는 산스크리트어로 빛이 나는 땅이란 뜻이다. 중국 양나라 기록에 의존하면 이 나라는 서기 80~100년 사이 1세기말에 건국되었다. 말레이시아 케다 연대기에 따르면, 랑카수카 왕국은 메롱 메하왕사(Merong Mahawangsa)에 의해 건국되었다. 불교왕국이었다고 한다. 양나라 기록에 따르면, 이 왕국은 건국후 4세기가 지난 515년에 바가다타(婆伽達多) 왕의 명에 의해 사신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 그후에도 523, 532, 548년에 중국에 사절단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8세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원한 스리비자야가 말레이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랑카수카는 쇠약해 졌다. 그후에도 명맥은 존속하다가 1470년대에 말레이반도의 케다(Kedah) 술탄국에 흡수된 것으로 파악된다.

말레이반도의 무역도시 랑카수카의 역할은 그후 말라카로 이어졌고, 영국이 지배하던 시기에 싱가포르로 이전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랑카수카는 그 존재조차 찾기 어렵다. 다만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거쳤을 다양한 교역품이 이곳을 거쳤을 것이며, 그 문화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한반도에도 냄새를 풍겼으리라 여겨진다. 백제와 마한의 문화유산에서 랑카수카를 느낄수 있다.

 

랑카수캉의 지정학적 위치 /위키피디아
랑카수캉의 지정학적 위치 /위키피디아

 


<참고한 자료>

狼牙脩國海南諸國의 세계, 권오영, 2013, 백제학회

Wikipedia, Langkas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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