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웅의 동해해류연구⑦…강릉·구산·울산항로
이효웅의 동해해류연구⑦…강릉·구산·울산항로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1.03.1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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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항구여건 미비…구산, 울릉도 항해 수월…울산, 신라의 관문

 

4. 강릉(하슬라) 항로

 

하슬라의 항구는 남대천 하류의 안목항과 경포의 관문인 강문항이 있다. 1500년 전에 해수면이 1.1m 정도 높아졌다 주1)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강릉항로는 삼척항에서 북쪽으로 45~50km 위치해 있고 울릉도와의 거리는 165km로 삼척보다 23km 더 멀다. 또한 위치는 울릉도 방위 약 100도를 가지므로 동동남의 사행항로를 가진다. 이 항로는 가을철 북서풍에서는 유리하나 여름철 남풍에서는 항해가 어렵다. 그리고 20km 이상 먼 거리는 바람이 좋을 때는 별 상관없으나 무풍을 만나거나 폭풍을 만났을 때의 20km의 노젓기는 고역이다. 강릉항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함대가 폭풍이나 태풍으로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없다는 점이다. 과거나 오늘날에도 항구 건설은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든다. 과거에는 실직항과 같이 강의 하류를 이용한 자연항이나 만이 있는 곳에 큰 항구가 있었고, 동해안에서는 대부분의 해변이 항포구의 역할을 하였다. <그림 31> 참조

 

 

5. 구산(월성포) 항로

 

구산항은 옛 강원도의 땅으로 월성포 대풍헌(待風軒) 주2)이 있는 곳이며 삼척항과 남쪽으로 84km 떨어져 있으나 울릉도와 거리는 삼척항과 비슷하게 144.5km로 떨어져 있다. 구산항의 사행항로는 동한난류와 남풍을 이용하면 울릉도로 항해하기 수월하다.

과거 월성포 대풍헌이 삼척포 보다 울릉도로 가는 데는 유리하였으나, 반대로 대풍헌으로 귀항할 때는 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수토사들이 대풍헌으로 귀항하려면 북동풍이 제일 좋은데 북동풍은 저기압 때 부는 바람으로 위험한 바람이라 피하고, 울릉도 대풍감에서 동풍을 타고 남서쪽으로 오면서 육지 가까이에서 노를 이용하여 남하하였을 것으로 유추한다.

조선시대 수토사들은 이틀 이상 걸리는 울릉도 항해를 기피하여 삼척포진 주3)과 월성포진 주4)2-3년 주기로 나누어 수토하였다. 대풍헌에서 출항은 월송 만호가 위치한 곳과 가깝기도 하지만, 죽변항 보다는 멀고 북쪽으로 33도의 각을 가진 사행항로이나, 남쪽에서 올라오는 동한난류와 여름철 계절풍인 남서풍이나 남풍을 이용한 순풍항해를 하였다.

 

(그림 33) 울릉도 대풍감(위)과 구산(월성포) 대풍헌(아래)
(그림 33) 울릉도 대풍감(위)과 구산(월성포) 대풍헌(아래)

 

6. 울산 항로

 

신라의 관문은 울산항 주5)으로 이전의 명칭은 울주, 공화(恭化), 흥례(興禮), 하곡(河谷), 굴아화(屈阿火)로 불렸다. '울산'이라는 지명의 어원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우시산국(于尸山國)으로 비롯되며, 삼국사기탈해이사금 21(78) 거도는 벼슬이 간()이 되었다. 이 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신라의 국경에 이웃해 있었는데, 거도가 변방의 관리가 되어 매년 한 차례씩 국경의 들에서 말달리는 놀이인 마숙(馬叔)을 즐기면서 적이 방심한 사이 거도가 군사와 마필을 일으켜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주6)

울주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 주7)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암각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후보 목록 주8)인 세계유산 잠정목록'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여 등재되어있다.

신라에서는 왜구 침입에 대비하여 임해 주9), 장령, 장봉 등 여러 진()들이 있었으나 왜구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진을 함락하기도 하였다. 울산항은 왜구들의 침입 루트 주10)로 많은 전선과 군사들이 들어와서 신라의 금성이나 월성을 노렸다. 왜구들은 일본의 쓰시마(대마도), 이끼(일기도), 마쓰우라(송포) 등에서 침략하였다. 쓰시마에서 울산까지 약 140km, 일본 큐수에서 울산은 250km 정도로 봄철의 남풍과 동한난류를 타면 쓰시마에서 하루 정도, 큐슈에서 2일 정도 걸린다. 울산에서 서라벌까지 약 40km는 군인 도보로 6~7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므로 2~3일이면 신라의 수도를 공격할 수 있어 수시로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지증왕 이전 시기에는 왜구들이 수시로 신라를 괴롭혔으나 동해왕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이후에는 왜구의 침입이 200년 이상 없었다. 그것은 이사부의 신형함대와 신병기가 왜구들에게 알려지고 울산, 부산포까지 순시하며 동해와 신라의 바다를 지켰기 때문이다.

219년 후, 성덕왕 30(731)에 일본국 병선 300척이 신라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으나 왕은 장수에게 명해 군사를 내어 크게 깨뜨렸다. 주11)

 
(그림 34) 한선 모형(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쟁박물관)
(그림 34) 한선 모형(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쟁박물관)
(그림 35) 왜선 모형(고베해양박물관)
(그림 35) 왜선 모형(고베해양박물관)

 


주1) 장동호, 동해안 항포구의 자연환경 및 GIS 분석을 통한 우산국 정복의 출항지 연구,이사부와 동해2, 이사부학회, 2010, p224

주2) 「울진 대풍헌 현판 기문류(記文類) 자료의 해제 및 번역, 해제 및 교열 이원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탈초 및 번역 정명수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영토해양연구 Vol. 17(2019. 6.)

주3) 『삼척향토지, 삼척시립박물관 조사연구총서[27], 2016, p82 삼척포진(三陟浦津) 수군첨절제사영(水軍僉節制使營)은 근방의 여러 읍()을 나누어서 중()ㆍ좌()ㆍ우익(右翼)에 속하게 하였다. 본도(本道)는 중익(中翼)에 강릉, 좌익(左翼)에 양양, 우익에 삼척ㆍ울진ㆍ평해(平海)로 하였고, 중익에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좌ㆍ우익에는 병마단련사(兵馬團練使)ㆍ부사(副使)ㆍ판관(判官)을 두었다.

주4)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정책(搜討政策)에 대한 고고학적 시·공간 검토, 심현용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 영토해양연구 Vol. 6, p167, <1872년 지방지도>를 비롯하여 <여지도서>(1757~1765), <광여도>(1767~1776), <해동지도>(1776), <비변사인방안지도>(18C중엽), <여지도>(18C중엽), 관동지(1829~1831), 관동읍지(1871), <대동여지도>(1861) 등에서 평해군을 그린 고지도 안에 월송 포진성이 그려져 있어 참고가 된다.

주5) 『울산광역시사, <백승옥, 울산대학교역사문화학과 강사> 김철준은 우시산국을 울산으로 보고, 우로전에 점해왕이 지원나간 우유촌의 위치도 영해보다는 울산으로 보는 것이 거리상으로나 방향상 마땅한 것으로 보았다. 2002, p319

주6)김부식, 이강래 옮김, 삼국사기Ⅱ』열전 제4, p788

주7) 국립문화재연구소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발굴조사보고서, BANGUDAE PETROGLYPH  DAEGOK-RI, ULJOOEXCAVATION, 강순형. 2015

주8)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1791745), 유네스코한국위원회(대한민국 13)

한국의 고대 산 요새, 대곡천 암각화, Gaya Tumuli ,강진군 가마터, 설악산 자연보호구역, 낙안읍성 성곽 마을, 외암마을, Salterns, 한양 도성, 남부 해안 전역의 공룡 화석 유적지, 남서부 해안 갯벌, 화순 운주사 석불과 탑, 우포 습지

주9) 『삼국사기, 新羅本紀 第三, 소지(炤知) 마립간(麻立干), 임해와 장령진을 설치하여 왜적에 대비하다 49307(), 秋七月, 置臨海·長領二鎮, 以備倭賊.

주10) 『울산광역시사, (2002) 백승옥, 울산지역은 왜군이 경주로 침입하는 주요한 루트중의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비록 후대에 쌓은 성이지만 성덕왕 21(722) 때에 쌓은 관문성이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p331

주11) 김부식, 이강래 옮김, 삼국사기Ⅰ』신라본기 제8, p225,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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