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①…부활하는 고대제국
마한①…부활하는 고대제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0.2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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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발굴, 호남지역 유물 출토로 반남고분군의 주인 새롭게 인식

 

전남 나주 시내에서 영산강을 건너 한참을 가면 반남면이라는 시골이 나온다.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신라고도 경주의 고분만한 거대한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해발 98m의 자미산을 중심으로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 일대에 40여기의 무덤이 있다. 이를 합쳐 반남고분군이라고 명명한다.

지금까지 전라도의 뿌리는 백제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반남고분은 서울 송파, 공주, 부여에 있는 백제 왕릉보다 훨씬 크다. 백제왕이 멀리 나주에 묻혔을리 없다. 저 고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유홍준은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반남고분군을 지나며 설명한 내용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I”(1993)에 적었다.

그런데 신촌리 제9호 무덤에서는 다섯 개의 옹관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그 가운데 옹관에서는 금동관이 출토되었습니다. 이것은 공주의 무녕왕릉이 발굴되기 이전에는 유일하게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으로 그것은 백제의 금관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금동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그것이 고고학과 역사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데, 대체로 삼한시대 마한의 마지막 족장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30년전 유홍준이 반남고분군의 부장품을 마한의 것으로 추정했다. 그후 호남 일대 고대유적지 발굴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반남고분군은 마한의 유적으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반남고분군 입구에 위치한 국립나주박물관은 홈페이지에 고분군을 설명하며 마한의 비밀을 간직하다고 했다.

 

반남고분군 /문화재청
반남고분군 /문화재청

 

마한의 존재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三國志) 가운데 위서 동이전에 처음 나온다. ‘삼국지는 서진(西晉) 사람인 진수(陳壽)280~289년 사이에 편찬한 위··오로 나눠져 있던 중국 삼국시대 정사다.

여기에 고조선 준왕(準王)이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衛滿)에 속아 나라를 빼앗기고 바다를 통해 한()의 지역으로 망명해 한왕(韓王)을 칭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BC 194년의 일이다. 삼국지에서 한은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으로 나뉜다고 했다. 마한, 변한, 진한은 별도의 나라가 아니라 지역별로 그룹핑한 명칭으로 보인다. 마한은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도 일대이고, 변한은 경남 일대, 경상북도 일대로 비정된다.

역사학자들은 마한(馬韓)말한’, ‘몰한에서 파생되었다고 유추한다. ‘’, ‘마루’, 즉 으뜸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마한은 삼한 중에서 가장 크고 위세가 있는 곳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마한의 소국은 55개 또는 54개이며,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개라고 했다.

마한은 고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삼한을 대표했고, 조선말기 고종은 고대 한()에서 따와 나라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고 지었다. ‘으뜸 한’(마한), ‘큰 한’(대한)이 같은 의미이고, 오늘날 대한민국도 멀리 마한에서 유래했다. 북한은 과거 북쪽에 위치한 고조선에서, 남한은 남쪽의 삼한에서 나라이름을 채택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수 있다.

어쨌든 변한은 가야로 전환되었고, 진한은 12소국의 하나였던 사로국(斯盧國)에 잠식되어 신라로 재편되었다. 마한도 진한처럼 소국의 하나였던 백제국(伯濟國)에 흡수되어 마침내 소멸했다.

그러면 마한은 언제 멸망했는가. 이는 마한이 언제까지 존속했는지를 설명하고, 반남고분군이 마한의 문화유산인지를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이 문제는 또한 올해 불 붙은 전라도천년사 논쟁의 핵심주제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마한은 온조왕 27, 즉 서기 9년에 멸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백제 건국왕 온조는 한해 전(온조 26)마한이 점점 약해지고 있으니, 오래 갈수 없으리라. 남보다 먼저 마한을 손에 넣어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해 겨울 임금은 마한을 습격하여 나라를 합병했으나 오직 원산(圓山)과 금현(錦峴) 두 성은 항복하지 않았다. 이듬해 여름에 원산과 금현 두 성이 항복해서 그 백성을 한산(漢山)의 북쪽으로 옮기었다. 이것으로 마한이 드디어 멸망하였다고 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삼국사기에 마한이 온조 때 멸망했다고 분명히 적혀 있는데, 전라도천년사에서 서기 369, 심지어 530년에 멸망했다고 주장한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광주mbc, 2023. 5. 26)

마한이 서기 9년에 멸망했다면 4~5세기 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남고분군은 마한의 것이라고 할수 없다. 하지만 건국한지 30년도 되지 않은 소국이 한반도 남부의 거대한 세력을 멸망시켰다는 백제본기의 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먼저 서기 9년 이후에도 마한이란 기록이 이덕일씨가 신뢰를 주는 삼국사기에도 여러차례 등장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왕 5(서기 61) 가을 8월에 마한 장수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을 바쳐 항복하였다고 했다고 쓰여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대왕 70(122)임금이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했다고 했다. 멸망했다던 마한은 110여년 후에도 살아서 움직인 것이다. 김부식은 마한에 관해 삼국사기 여러 곳에서 혼선을 드러냈다.

중국 사서에도 마한은 3세기도 등장한다. 서진과 동진의 역사를 기록한 진서(晉書)에는 서기 280년에서 290년 사이에 마한이 9차례 사신을 보냈다는 기사가 있다. 적어도 서기 290년까지 마한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재야 사학계가 집중적으로 공격한 타깃은 이병도 박사의 마한 멸망 369년설이다. 이병도 박사는 일본서기 신공기(神功紀) 49년조를 마한 멸망의 시기로 보았다. 신공기의 내용인즉, 일본이 백제와 연합해 신라와 가야를 치고 침미다례((忱彌多禮) 등 남만(南蠻)의 여러나라를 복속시킨후 그 땅을 백제에 주었다는 것이다. 이병도 박사는 이때 전투의 주체가 백제이고, 왜군은 지원군으로 보아 일본서기를 재해석했다. 이병도는 백제가 공격해 합병한 지역은 마한 잔존세력이며, 시기는 신공기 49년에 2주갑(120)을 더해 369년으로 보았다. 일본서기 고대사 부분은 120년 당겨 기록되었다는 역사학계의 해석이다.

신공기에 등장하는 백제왕은 13대 근초고왕이다. 근초고왕(재위 346~375)은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활로 쏘아죽인 정복왕으로서, 마한을 멸망시켰다는 설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한 멸망 369년설은 일본서기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이덕일 등 재야사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핑크뮬리에 물든 반남고분 /나주박물관
핑크뮬리에 물든 반남고분 /나주박물관

 

마한에 관한 문헌기록은 주로 중국 사서에 의존하고, 우리 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엔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문헌기록의 부족은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최근 호남지역에서 고대의 유물이 많이 발굴되면서 마한은 고고학의 뒷받침을 받으며 새로이 부활되고 있다. 굳이 일본서기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마한은 6세기까지 존재한 것으로 규명되는 추세다.

전남대를 중심으로 한 호남사학계는 마한의 멸망시기를 530년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가 된 것은 1960년 중국 난징박물관에서 발견된 양직공도(梁職貢圖). 양직공도에는 521년 백제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백제 주변국(旁小國)으로 반파(叛波), (), 다라(多羅), 전라(前羅), 사라(斯羅), 지미(止迷), 마련(麻連), 상기문(上己汶), 하침라(下枕羅) 등이 등장하는데, 이중 지미, 마련, 상기문, 하침라가 마한의 소국이라는 것이다. 양직공도는 마한이 적어도 521년까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간접사료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영산강 유역은 고조선 준왕이 망명하기 이전부터 최소한 700년 이상 마한 땅이었다. 백제는 530년에서 660년까지 130년 정도만 백제가 지배했을 뿐이다. 그동안 백제를 뿌리로 알던 호남사람들이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마한이 존재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참고한 자료>

임영진, 우리가 몰랐던 마한, 2021, 홀리데이북스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I, 1993, 창작과비평사

原文 東夷傳, 1996 서문문화사

국립나주박물관, 반남고분군

전라도천년사 홈페이지

광주MBC, 역사 왜곡 논란 전라도 천년사쟁점은? [시사온] I 20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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