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③…장고분의 존재
마한③…장고분의 존재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1.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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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첫 조사…해방후 학계에서 거론되다 신덕고분 이후 왜계 고분 확인

 

마한 연구자들에게 피할수 없는 지점이 장고분이다. 우리나라에선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고분이라고 하는데, 일본 4~6세기 대표적인 묘제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전남·광주 지역에 나타난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원형(圓形)과 네모꼴(方形)의 무덤(분구)이 붙어있는 모습인데,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서 영어로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된다.

전라도천년사(4)에 따르면, 전북고창을 포함해 전남·광주 지역에 장고분은 15개이며, 방분 2, 원분 10기 등으로, 왜계 고분은 30기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장고분은 고창 영광 함평 광주 담영 영암 해남 등에 분포하는데, 마한 핵심지역인 나주 반남의 외곽지역에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광주 월계동 1호분 /나주박물관
광주 월계동 1호분 /나주박물관

 

호남에 왜계 고분이 있다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일본 고고학계가 반남고분군을 처음으로 조사한 때는 1917~1918년이었다.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는 4명의 위원으로 팀을 구성해 반남면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 일대의 고분을 발굴조사했다. 조사는 대대적으로 했으나, 보고서는 야츠이 세이이치(谷井濟一)가 정리한 한 장 짜리가 고작이었다. 보고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반남면 자미산 주위 신촌리, 덕산리 및 대안리 대지 위에 수십기의 고분이 산재하고 있다. 이들 고분의 겉모양은 원형 또는 방대형이며 한 봉토가 여러 개의 도제옹관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 고분은 그 장법(葬法)과 관계 유물 등으롤 미루어 아마 왜인의 것일 수도 있다. 자세한 보고는 후일 나주 반남면에 있어서의 왜인의 유적이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제출하겠다.”

하지만 일본 고고학자들은 20년이 지나도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다만 보고서에 금동관, 금동신발, 귀고리, 곡옥 등이 있다는 내용은 도굴을 촉발시켰을 뿐이다.

그러다가 1938년에 아리마쓰 교이치(有光敎一)를 중심으로 한 제2발굴단이 신촌리와 덕산리, 흥덕리 등지에 대해 발굴조사를 실시한후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유사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때는 도굴로 인해 원래의 상태를 거의 상실했다고 한다.

그러면 일본이 왜 자신들의 임나본부설을 입증해줄수 있는 왜계 고분의 발굴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을까. 그들은 한 장짜리 보고서만 내고 도굴을 조장한 셈이다. 이덕일은 공저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의 첫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반남고분으 출토 유물들이 임나본부설을 지지하기는커녕 임나본부설을 뒤집을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측일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반남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반남고분의 주인공들이 고대 일본열도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기 때문에 엎어버리고 도굴을 조장했다는 게 이덕일의 해석이다.

 

해방이 된 후 한반도에 전방후원분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大和) 정권이 임나본부를 두어 가야지역을 지배했다는 주장도 식민지 지배를 위한 역사왜곡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던 중 1972년에 고려대박물관 주임이던 윤세영이 한국 속의 전방후원분이란 제목의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후에 고려대박물관장을 지낸 윤세영은 당대 저명한 고고학자였다. 그는 경희대 황용훈 교수와 함께 충남 부여 일대 네 곳을 조사한 후 얻은 결론이라고 했다. 당시로선 상상도 할수 없는 주장이었다. 고고학계가 뒤집어졌다. 그해 7월 문화재위원회는 윤세영, 황용훈을 불러 조사내용을 들었다. 두 사람은 고분이 산이나 구릉이 아닌 평야지대에 축조된 점, 분구의 외형과 규모 등에서 일본 전방후원분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과학적 규명을 위해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설명회에 참여한 조유전은 문화재위원들은 냉랭했다. 한마디로 수긍할수 없다고 일축했고, 발굴조사의 필요성도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저서 한국사미스터리에서 회고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일본형 무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1983년 강인구 영남대 교수가 함안·고성지방 전방후원분의 발견과 의의라는 제목의 글을 영남대학신문에 실었다. 그는 경남 고성의 무기산고분, 전남 나주의 신촌리 6호분, 경남 함안의 말이산 고분 등이 전방후원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인구는 이들 일본의 전방후원분이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건너가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인구의 주장은 일본고고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경남 고성, 경남 함안은 옛가야지역이므로 이곳에서 전방후원분이 발견된다면 임나본부설을 뒷받침할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일본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고성 송학동에 위치한 무기산고분은 발굴 결과, 겉모양은 전방후원분과 매우 닮은 모습이지만 1999년부터 3차례 실시된 동아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장고형이 아니라는 최종판정을 받았다. 1970년대 윤세영이 주장하던 부여의 고분도 자연구릉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장고분은 경남, 충남에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함평군 예덕리 신덕고분군 발굴장면(직상방, 2000) /나주박물관
함평군 예덕리 신덕고분군 발굴장면(직상방, 2000) /나주박물관

 

그런데 뜻하지 않던 곳에서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었다. 1989년 전남 함평의 향토문화연구회가 함평 금산리 일대에 방치된 고분들이 많은데 한번 조사해달라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연락했다. 박물관 사람들이 월야면 예덕리에 가서 보니 도로가에 무덤처럼 생긴 엄청나게 큰 규모의 언덕이 있었다. 흙으로 봉토를 덮은 즙석분(葺石墳) 유구일 가능성이 컸다. 이듬해 함평 향토사학자가 장고산고분을 발견했다고 박물관에 다시 연락을 해왔다. 박물관측이 차제에 이 고분을 측량하고 발굴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19913월 봉토를 살피던 발굴팀은 고분 원형부에 도굴 흔적의 구덩이를 발견했다. 고분이 확인된 후 도굴자들이 먼저 덤벼든 것이다. 박물관측은 즉각 발굴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돌방(석실)의 네 벽면, 문의 안쪽이 온통 붉게 칠해져 있었다. 전형적인 일본식 고분의 주칠(朱漆)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유물들도 출토되었는데, 무덤 입구에 놓는 두껑접시(蓋杯)도 수십개 나왔다. 대형 칼에는 일본 후나야마(船山) 고분의 유물처럼 손잡이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일본식이 분명했다. 도굴꾼들은 나중에 잡혀 65점의 유물을 찾을수 있었다.

신덕고분은 길이 50m, 높이 10m,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즙석분으로 기록된다. 평지 구릉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배치된 2기의 무덤 중 남쪽의 대형 무덤은 봉토가 앞쪽이 네모난 형태이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 형태이고 북쪽의 무덤은 원형이다.

전라남도는 이 고분을 신덕고분(新德古墳)이란 이름으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했다. 문화재청 산하 광주박물관은 신덕고분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같은 방식으로 조성되었음을 공식으로 확인했다.

국내 고고학계는 이런 형태의 고분의 형태를 일본과 달리 장고분으로 부르기로 했다. KBS 역사스페셜(2005. 7. 22 방영)에 따르면, 함평군 장년리에는 장고산마을이 있는데, 오랫동안 야산으로 알려져 있던 산이 장고처럼 생겨 장고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야산은 1991년 고분으로 확인되었다. 해남 북일면 방산리에도 장고산이란 옛지명이 있다. 전남·광주 일대에서 왜계 고분을 장고산라고 불렀으니, 학계에서도 이를 따른 것이다.

 

왜계 고분의 분포 /전라도천년사
왜계 고분의 분포 /전라도천년사

 

신덕고분 이후 장고분은 속속 확인되었다. 전남 영암의 자라봉 고분, 함평 장고산 고분, 영광 월산리고분, 광주 월계동·명화동 고분 등. 14~15개의 장고분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었다.

이제 우리 고고학계도 더 이상 장고형 고분, 즉 일본 야마토식 고분에 대한 연구를 피할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이 고분의 주인이 누구이며, 왜 영산강 일대에 산재해 있는지 여부다.

 


<참고자료>

전라도천년사 4권 선사고대3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 이덕일·이희근, 1999, 김영사

한국사 미스터리, 조유전·이기환, 2004, 황금부엉이

KBS HD역사스페셜, 한일역사전쟁! 영산강 장고형 무덤(2005722일 방송)

나주박물관, 한국의 장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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