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24년간 철권 통치를 해온 루마니아 공산정권에도 개혁의 기회는 있었다. 동유럽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89년 3월 루마니아 공산당 내 개혁파 6인은 차우셰스쿠에게 서한을 보내 개혁과 개방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차우셰스쿠가 이 요구를 받아들여 선제적으로 개방조치를 취했더라면, 적어도 처형은 면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 ‘6인의 편지’(Letter of the Six)를 무시했다. 그로부터 9개월후 그는 시민봉기 1주일만에 힘없이 무너졌다.

 

발단은 국경도시 티미쇼아라(Timișoara)에서 활동하는 개혁교회 소속 목사 퇴케시 라슬로 (Tőkés László)였다. 소수민족인 헝가리족 출신인 그는 1989년 7월 헝가리 TV와의 인터뷰에서 “루마니아에는 인권이 없다”며 차우셰수크 정권의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그의 인터뷰가 국경 근처에서 시청되었고, 그 내용이 루마니아 인민들에게 퍼져나갔다. 루마니아 법원은 목사에게 추방령을 내렸고, 비밀경찰의 사주를 받은 테러리스트들이 그를 위협했다.

12월 16일 티미쇼아라에는 라슬로 목사의 국외추방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보안경찰은 시위대에 발포를 했고,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시체 안치소에서 도둑맞은 시위자 시체가 현장에서 매매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데모는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루마니아 당국은 소수민족에 대해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을 펼쳤다.

시위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시위자들은 관공서를 습격해 서류를 불태웠다. 당국은 군대를 투입했다. 헬리콥터가 도시 상공을 날며 시위해산을 종용하는 전단을 뿌렸다. 티미쇼아라의 시위는 격화되어 20일까지 진행되었다. 루마니아 당국은 국경도시의 시위에 관한 보도를 차단했다. 하지만 서방에서 보내는 미국의소리방송(VOA)과 유럽자유라디오는 티미쇼아라의 시위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했고, 루마니아 국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있었다.

당시 챠우셰스쿠는 이란을 방문하고 있었다. 수도에 남아 있던 부인 엘레나(부통령)은 총리를 보내 사태를 수습케 햇지만, 시위대는 차우셰스쿠 퇴진을 요구했다. 상황은 교착되었다.

 

 

12월 21일 아침, 귀국한 차우셰스쿠는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10만명을 동원해 관제 집회를 열었다. 근교의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챠우셰스쿠는 중앙위원회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는 평상시처럼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을 강조하며 티미쇼아라의 시위를 파시스트의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앞줄에 있는 사람들은 박수를 쳤지만, 먼 곳에 있는 참석자들은 지도자의 연설에 야유를 보냈다. 차우셰스쿠는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연설도중에 노동자 임금을 인상할 것이며, 대학생 장학금을 올리겠다고 미끼를 던졌다.

그의 연설이 끝날 무렵, 군중 후미에서 폭음이 들렸다. 시위자 가운데 누군가가 사제폭탄을 폭발시킨 것이다. 광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집회는 강제 해산당했다.

이 관제집회는 국영 루마니아 국영방송에 의해 생중계되었고, 차우셰스쿠가 당황하면서 뒷걸음치는 모습이 루마니아 전역에 방영되었다. 관제 집회에 대학생과 시민들이 합류해 독재 타도를 외치는 민중집회로 발전한다. 보안경찰 세쿠리타테(Securitate)는 진압에 나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군대도 진압에 동원되었다.

 

 

다음날인 12월 22일은 루마니아 역사가 뒤바뀐 날이다. 하루밤 사이에 상황이 반전되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국방장관이었던 바실리 밀레아(Vasile Milea)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차우세스쿠 정권은 밀레아가 반역자였으며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자살한 게 아니라 발포 명령을 거부하다 총살당했다는 얘기가 퍼졌다. 여기서 군부가 흔들려 일부가 시위대의 편으로 돌아섰다.

차우셰스쿠는 신임 국방장관을 물색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빅토르 스탄쿨레스쿠(Victor Stănculescu)를 국방장관에 지명했지만, 그는 차우셰스쿠 정권에 부역하기 싫어 멀쩡한 왼쪽 다리에 가짜 깁스까지 하면서 국방장관 자리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는 어쩔수 없이 국방장관을 떠맡게 된다.

 

 

시위군중들은 공산당 본부를 비롯해 정부 기관을 점거한데 이어 대통령궁으로 들이닥쳤다. 차우셰스쿠는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여러 대의 헬리콥터를 불렀지만 한 대만 왔다. 시위대는 임시정부인 '구국 전선 평의회'를 조직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장악했다. 차우셰스쿠는 비상사태를 선언하려 했지만, 마지 못해 국방장관이 된 스탄쿨레스쿠가 이를 거부했다.

시위대가 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차우셰스쿠와 지근거리에 접근했다. 차우셰스쿠와 부인 엘레나는 가까스로 헬리콥터에 올라 도망쳤다. 그들이 도망치는 장면마저 자유 루마니아 방송로 개칭한 카메라에 포착되어 전세계로 전파를 탔다. 부부는 북한으로 도망가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곧이어 콘스탄틴 더스컬레스쿠(Constantin Dăscălescu) 총리가 사임하고, 내각도 총사퇴했다. 혁명 세력은 정권을 비판한 혐의로 구속된 양심수들을 석방시켰다. 구국전선평의회는 공산당내 자유주의자였던 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를 혁명 지도자로 옹립했다. 밤이 되면서 군인들도 시위대에 대거 가담했다. 대령 이상 고급장교들까지 시위대에 참가했다.

차우셰스쿠 부부를 태운 헬기의 조종사 바실리 마루탄 중령도 더 이상 차우셰스쿠에 충성하지 않고, 헬기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조종사는 대공사격을 받고 있다는 핑계를 댔다.

차우셰스쿠는 하는수 없이 헬기를 포기하고 육로로 도주했다. 차우셰스쿠는 도로를 달리는 민간 차량을 잡아 탔는데, 그 운전기사는 수십 m를 가다가 엔진 과열이란 핑계를 대고 차량에서 내리라고 했다. 차우셰스쿠는 다시 차를 잡았지만, 이 운전기사는 현지의 농부와 짜고 차우셰스쿠 일행을 농업박물관에 감금시켰다.

이튿날인 23일, 구국 전선 평의회는 농민의 밀고를 받고 차우셰스쿠 부부를 체포했다. 이 사실이 자유 루마니아 방송을 통해 전국에 보도되었다.

크리스마스 날인 25일 차우셰스쿠 부부는 특별 군사재판에서 대량 학살 및 부정 축재의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그날로 총살되었다.

왜 구국전선은 서둘러 차우셰스쿠 부부를 처형했을까. 차우셰스쿠를 지지하는 군인들이 도심에 진입해 탱크와 장갑차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여차하면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킬 기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혁명군과 반혁명군 사이에 유혈 충돌로 900여명이 사망자를 냈다. 혁명세력은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서둘러 반혁명 수괴를 처형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차우셰스쿠 사후, 사태 수습에 나선 임시정부는 구국전선이 맡았다. 구국선전의 지도자 일리에스쿠는 공산당내 선두그룹이었는데, 차우셰스쿠의 견제에 밀려 지방당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할 때 고르바쵸프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국전선은 공산당을 해체시켰다. 이어 1990년 5월 20일 대선과 총선이 예고되고, 구국전선은 정당으로 전환되었다. 과거의 공산당원들이 대거 구국전선에 입당했다.

1990년 대선에서 이온 구국전선 후보인 일리에스쿠가 85%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구국 전선은 상원과 하원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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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Romanian Revolution

Wikipedia, Ion Iliescu

Wikipedia, Letter of the S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