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③…불운의 황제 후마윤
무굴제국③…불운의 황제 후마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1.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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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와 동생에 배신당하고 15년간 망명생활…복귀후 6개월만에 숨져

 

2대 황제 후마윤의 재위 기간은 아버지 바부르가 죽은 153012월부터 15561월 사망할 때까지 25년이다. 하지만 황제에 오른지 10년만에 나라를 뺏기고 15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오랜 망명 끝에 제국을 다시 일으켰으나, 6개월만데 계단에서 떨어져 죽은 불운의 군주로 기록된다.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건국한지 4년만에 병사하고 장자 후마윤이 나라를 떠맡았다. 제국의 초기는 불안했고, 어린 황제는 우유부단했다. 지방에는 로디 왕조의 군벌들이 고개만 숙였을 뿐 후마윤이 실수하기를 노렸다. 아버지 바부르는 몽골족의 풍습대로 네 아들에게 골고루 영토를 나누어 주었고, 후마윤의 형제들은 자신의 영지를 사실상 독립국으로 운영했다.

20대의 젊은 황제는 흥청망청했다. 아편도 상습적으로 피웠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환경에서 지내던 유목종족이 풍요로운 농경지대에 안착하면서 나태해졌다. 창고엔 재물이 가득했고, 음식과 술은 무궁무진했다. 하렘은 각부족에서 보낸 여인들로 가득 찼다.

후마윤이 주지육림에 빠져 있는 동안에 빳빳하게 고개를 든 토호들이 있었으니, 동부 비하르의 셰르 샤(Sher Shah)와 남부 구자라트의 술탄 바하두르(Bahadur)였다. 역심을 품은 자들이 조짐을 보일 때엔 싹이 크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후마윤이 어느쪽을 먼저 제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1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적들은 몸집을 불렸다.

1532년 후마윤은 비하르를 공격해 추나르 성을 빼앗았다. 로디 왕조의 장군이었던 셰르 샤는 유연한 인물이었다. 아직 무굴에 저항할 힘이 없다고 판단한 셰르 샤는 제국에 충성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아들을 인질을 보내고, 그 대신에 추나르 성을 돌려달라고 했다. 마음이 여린 후마윤은 빼앗은 성을 돌려 주었다.

1535년엔 구자라트를 공격했다. 구자라트는 이미 포르투갈에 고아(Goa)를 내주며 서양의 최신 화포를 들여와 무장하고 있었다. 화력은 떨어지지만 오스만 투르크의 화포로 무장한 후마윤의 군대가 쉽게 구자라트를 제압할수 있었다. 바하두르는 포르투갈의 진지로 도주했다. 후마윤은 더 이상 바하두르를 쫓지 않았다.

동서고금의 제왕들이 역적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친척들을 집단으로 살해하는 것은 반란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후마윤의 자비는 오히려 역모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셰르 샤와 바하두르는 밀지를 주고 받으며 반무굴 전선을 구축했다.

후마윤 /위키피디아
후마윤 /위키피디아

 

재기를 노리던 셰르 샤는 다시 일어났다. 그는 빠른 속도로 비하르와 벵갈을 차지했다. 15396월 비하르의 차우사(Chausa)에서 후마윤과 셰르 샤의 군대가 맞붙었다. 이 전투에서 무굴의 군대는 8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일부는 세르 샤의 칼에 맞아 죽고 일부는 갠지스강에 빠져죽었다. 왕비 베가 베검은 포로가 되었고, 또다른 왕비 두명과 공주들도 강물에 빠져 죽었다. 후마윤은 전쟁터에 처첩을 끌고 가는 그런 군주였다.

황제도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는 적의 야간 습격을 받고 도주하다가 말에 떨어져 물에 빠졌다. 그 순간 물을 배달하는 병사가 그를 보았다. 샴수딘 무하마드라는 병사는 물을 기르는 가죽 주머니에 공기를 불어 넣어 황제에게 던졌다. 후마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후마윤이 고전을 하는 동안에 지방 총독을 맡고 있던 동생 캄란과 힌달은 형을 돕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며 형이 패할 경우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패잔병을 이끌고 수도 아그라로 돌아온 후마윤은 처형해도 시원치 않을 이복동생들을 용서했다. 하지만 셰르 샤는 군대를 몰아쳐 서쪽으로 진격했고, 15404월 아그라 동쪽 200km에 있는 카나우지(Kannauj)에서 무굴군은 대패했다. 이로써 후마윤이 펀잡의 라호르로 도주했고, 인도의 무굴제국은 붕괴했다.

 

 

무굴제국이 비운 자리에 셰르 샤의 수르 제국(Sur Empire)이 들어섰다. 수르 왕조는 15년간 인도 북부를 다스렸다. 셰르 샤는 수도를 델리로 옮겼다.

셰르 샤는 원래 이름이 파리드(Farīd)였으나, 호랑이(셰르)를 죽인 후 이름을 바꿨다. 무굴에 앞서 로디 왕조에서 장군으로 있다가 왕조가 무너진 이후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새로운 제국을 일군 것이다. 셰르 샤는 인도 황제가 된 후 아프가니스탄 군주의 칭호인 샤(Shah)를 사용했다. 그는 말와, 라자스탄, 펀잡, 신드를 점령하며 북인도~파키스탄~벵갈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다. 하지만 그는 1545년 칼린자 성을 공격하다가 폭발사고로 중상을 입은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셰르 샤의 둘째 아들 이슬람 샤가 수르 왕조의 2대 황제를 이었다. 형 아딜 칸이 제위를 뺏기 위해 도발했으나 패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다. 이슬람은 155411월 사망하고 다시 제위 계승전에 벌어졌다. 1554년말에서 1556년 사이에 5명의 군주가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 사이에 망명했던 전 왕조의 군주 후마윤이 나타나 무굴제국을 다시 일으켰다.

 

수르 왕조 지배영역 /위키피디아
수르 왕조 지배영역 /위키피디아

 

그러면 아버지가 세운 무굴제국을 빼앗긴 후 천하의 불효자식 후마윤은 15년의 긴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까.

아그라에서 퇴각한 후 펀잡의 라호르로 도주했으나 그곳마저 셰르 샤에게 빼앗겼다. 카불의 주인인 이복동생 캄란(Kamran)에게 의지하려고 했으나, 캄란은 매몰차게 형을 뿌리쳤다.

그는 신드로 갔다. 신드의 지배자는 캄란의 장인이었다. 후마윤은 신드에서 눈치 밥을 먹는 가운데 하미다 비누라는 소녀를 만났다. 33세의 황제는 스므살 어린 소녀에게 마음이 꽂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Akbar).

 

후마윤은 의지할 곳 없이 정치 없이 떠돌다가 페르시아에 구원을 요청했다. 페르시아 사파비드 왕조의 타마스프 1(Tahmasp I)는 그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 그때 그와 함께 국경을 건너간 인원은 40명에 불과했다.

후마윤은 페르시아에서 10년간 무위도식했다. 그는 페르시아 문화에 젖었다. 그가 무굴제국을 되찾았을 때 궁전과 무덤을 페르시아풍으로 꾸민 것도 망명생활을 하면서 쌓은 취향 때문이었다. 식객 생활이 무료할 즈음, 페르시아 황제는 고국으로 돌아가로고 등을 떠밀었다. 페르시아는 그냥 보내지 않고 12,000명의 군대를 주어 한쪽 구석이라도 영토를 만들라고 했다.

 

1545년 후마윤은 이복동생 아스카라가 지배하는 칸다하르를 공격해 함락했다. 이어 카불을 공격해 또다른 이복동생 캄란을 체포했다. 후마윤은 이때도 이복동생들을 죽이지 않았다. 다만 성지 메카로 보내 다시는 인도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두 형제는 메카에서 기도를 하며 살다가 죽었다. 또다른 동생 힌달은 체포되었으나 후마윤의 자비가 내려질 틈을 주지 않았다. 암살자가 그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수르 왕조를 타도하는 것만 남았다. 기회는 수르 제국이 만들어 주었다. 1554112대 황제 이슬람 샤가 죽고 수르 제국엔 치열한 왕위계승전이 벌어졌다. 이슬람이 죽고 12살 된 그의 아들 피루스가 제위에 올랐으나, 삼촌인 아딜 샤가 조카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횄다. 그러자 이복형제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일어나 나라가 사분오열되었다.

우유부단하던 후마윤은 이때만은 강한 결단력을 보였다. 후마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8만명의 군대를 일으켜 델리를 공격했다. 아버지 바부르가 델리를 점령한 것처럼 다시 신속한 기동력으로 인도의 심장부를 장악했다. 15556월 그는 제위를 빼앗긴지 15년만에 다시 무굴제국을 일으켜 세웠다.

 

셰르 만달 /위키피디아
셰르 만달 /위키피디아

 

고생 끝의 낙은 오래 가지 못했다. 다시 황제에 오른지 6개월째 되던 15561월 후마윤은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 셰르 만달(Sher Mandal)의 계단에 넘어져 죽었다. 셰르 만달은 무굴제국을 무너뜨린 셰르 샤가 건축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8각형 모스크다. 그날 시간을 알리는 시종이 본래 시간보다 일찍 황제에게 기도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책에 빠져 있던 그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다 발이 옷에 걸려 넘어져 죽음을 맞았다. 15년을 기다려 나라를 되찾은 것도 신의 뜻이요, 기쁨을 누릴 시간을 6개월만 준 것도 신의 뜻이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Mughal emperors

Wikipedia, Humayun

Wikipedia, Sur Empire

무굴황제, 이옥순, 2018, 틀을깨는생각

이야기 인도사, 김형준, 2020,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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