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 북부, 말레이시아에 편입하다
보르네오 북부, 말레이시아에 편입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4.01.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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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연방③…사라와크와 사바는 연방에 가입, 브루나이는 가입 보류

 

태평양전쟁이 종전한 직후 19459월에 영국군이 보르네오섬 북부에 진주했다. 보르네오 남부의 옛 네덜란드령은 인도네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독립 지도자였던 수카르노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보르네오 북부도 달라고 했지만 일본군 사령관은 현지 주민의 의사와 말라야가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들어 즉답을 피했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군이 밀려오면서 보르네오 북부는 다시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보르네오 북부는 영국인 브룩(Brooke) 가문이 지배하는 사라와크, 현지 술탄이 지배하는 브루네이, 회사 사유지였던 북보르네오 세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영국은 세 곳을 보호령을 통치하면서 브루나이를 제외한 두 곳, 즉 사라와크와 북보르네오를 직할령으로 전환할 것을 시도했다.

 

보르네오의 행정구역 /위키피디아
보르네오의 행정구역 /위키피디아

 

1942년초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사라와크의 백인왕조는 호주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가 런던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말이 망명정부이지, 영국이 사라와크를 되찾아 주면 돌아가 왕권을 돌려받겠다는 것이었다. 1945년말 일본이 패망하고 브룩(Brooke) 왕조가 돌아왔다.

3대 왕(raja) 바이너 브룩은 돌아와 재정을 들여다보니, 나라를 재건할 여력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72세인 그는 아들이 없어 승계 원칙상 조카 앤서니에게 물려주어야 했는데, 그에게 왕권을 념겨줄 마음이 없었다. 왕비도 규정을 고쳐 딸에게 넘겨주자고 했다. 고민하던 바이너는 영국에 나라를 바치기로 했다. 앤서니를 비롯해 귀족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주권양도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65월 바이너 브룩은 의회를 열어 주권양도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516일 표결에서 1916으로 근소한 차이로 주권양도가 결정되었다. 바이너는 영국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백명의 말레이 공무원들은 영국의 식민화에 반대하며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시위에 돌입했다. 말레이인 청년 로슬리 도비가 사라와크 총독으로 온 던컨 스튜어트경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정부는 앤서니가 시위대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보고, 그를 사라와크에서 추방하고 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했다. 사라와크는 1951년에 영국 직할령으로 편입되었다.

 

사라와크의 주권양도 반대시위 /위키피디아
사라와크의 주권양도 반대시위 /위키피디아

 

북보르네오에는 2차 대전 중에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전쟁 막바지에 호주군과 뉴질랜드군 포로들이 2,500명 정도 수용되어 있었는데, 연합군의 폭격에 포로들을 이동시켰다. 포로들은 260kn를 행군하는 도중에 일본군에 사살되거나 질병, 피로, 갈증, 기아, 고문 등으로 죽어나갔고 호주군 6명만이 살아 남아 죽음의 행진을 증언했다.

북보르네오는 북보르네오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 소유였다. 2차 대전 중 연합군 폭격으로 회사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영국 정부는 19467월 남은 주주들에게 적당히 셈을 쳐서 회사를 정리하고, 북보르네오를 직할령으로 편입했다.

 

브루나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의 3개주를 묶어 보르네오 연방을 구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중에 영국 식민부가 브루나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를 합쳐 연방을 만들어 독립에 대비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현지인 중에서는 브루나이의 아자하리(Azahari)가 북보르네오연방론을 제기했다. 그의 생각은 브루나이는 작기 때문에 홀로 서기 어렵고 사라와크와 북보르네오를 합쳐 연방국가를 만든 다음, 브루나이 술탄을 모시고 입헌군주제를 한다는 것이다. 영국도 아자하리의 견해에 공감했다.

말라야 연방이 독립하기 전인 1953년에 브루나이 술탄, 사라와크 총독, 북보르네오 총독이 참석한 가운데 싱가포르 총독 맬컴 맥도널드는 보르네오 세 지역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는 방안을 제시했다. 브루나이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Omar Ali Saifuddien III)는 나라가 작기 때문에 영국의 보호가 필요하다는데는 공감했지만, 이웃 주와 합치는 것은 원하지는 않았다. 석유로 번 돈을 나눠주기 싫어 했던 것이다.

19561월 아자하리는 브루나이인민당(PRB, Parti Rakyat Brunei)을 창당하고 설립등록을 마쳤다. 브루나이인민당은 북보르네오연방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1957831일 말랴야연방이 독립했다. 영국은 말라야연방에서 싱가포르를 제외시켰다. 해군기지가 있는데다 무역거점이었기 때문에 직할령으로 남겨두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좌파운동은 제어할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었고, 영국은 싱가포르의 독립을 고려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첫총리 리콴유(李光耀)는 싱가포르만으로 독립하면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말라야 연방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말라야연방의 압둘 라만 총리에게 연방 가입을 제안했다. 영국은 리콴유의 제안을 지지했다.

압둘 라만도 싱가포르가 중공의 지원을 받아 공산화되면 말라야연방이 위협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싱가포르를 연방에 넣으면 중국인 비율이 높아지는 문제가 말레이 지배층의 걱정거리로 대두했다. 말라야연방은 말레이인 55%, 중국인 35%, 인도인 10%로 말레이인의 우세를 유지할수 있는데, 싱가포르가 들어오면 중국인 비율이 40%에 근접한다. 말레이인이 과반으로 내려가고 중국인이 인도인과 힘을 합치면 자칫 말레이인 우선주의가 무너지게 된다. 중국인과 인도인이 상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대등한 비율의 인구구성은 말레이인에게 불리하다. 이때 라만이 구상한 방안이 북보르네오를 포함한 광의의 연방이었다. 보르네오에는 말레이인 비중이 높기 때문에 북부가 연방에 들어오면 싱가포르 가입에 따른 중국인 비율을 완충시켜 줄수 있다.

 

코볼드 위원회 /위키피디아
코볼드 위원회 /위키피디아

 

1961527일 압둘 라만 말라야 총리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를 포함하는 말레이시아연방의 창설을 제안했다. 나라 이름도 말라야(Malaya)에서 말레이시아(Malaysia)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브루나이의 오마르 알리 술탄도 라만의 구상을 지지하고 말레이시아연방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북보르네오연방을 만들려던 생각을 버리고 압둘 라만의 구상을 지지했다. 다만 연방가입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에 이듬해 1월 영란은행 총재를 지낸 코볼드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코볼드 위원회가 구성되어 영국령 보르네오 사람들의 여론을 들었다. 이들은 2월에서 4월까지 보르네오 주민 4,000명을 면담하고 의견을 들었다. 위원회는 사라와크와 북보르네오 주민 다수가 연방 가입을 지지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반대했다. 수카르노는 보르네오 북부가 인도네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말레이시아연방 구상은 신식민주의라고 비난했다. 필리핀은 북보르네오가 자국에 들어온 술라왕국의 지배영역이었다고 주장했다.

브루나이도 걸림돌이 되었다. 오마르 알리 술탄은 석유대금을 배분하는 문제에서 연방정부와 의견을 달리했다. 영국은 보르네오의 석유를 원했기 때문에 술탄의 변덕에 끌려다녔다.

라만 총리는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연방을 결성할 채비를 했다. 말레이시이 연방 선포 예정일은 말라야연방 선포일과 같은 1963831일로 잡았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이의를 제기하며 유엔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방 선포가 연기되었다. 유엔 조사단이 직접 찾아와 현지 주민의 연방가입 지지율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요구를 일축했다. 이렇게 해서 1963916일 말라야연방, 싱가포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를 포함한 14개 주의 말레이시아연방이 출범했다.

북보르네오는 곧 사바(Sabah)로 이름을 바꿨다. 싱가포르는 2년후 연방에서 탈퇴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North Borneo Federation 

Wikipedia, History of Sarawak 

Wikipedia, History of Sabah 

Wikipedia, History of Malay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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