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백두산 화산 폭발로 멸망했나
발해는 백두산 화산 폭발로 멸망했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9.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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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년 폭발로 추정, 발해 멸망 원인으로 보았으나, 946년 분화설 굳어지며 부정

 

한때 발해가 백두산 화산 폭발로 멸망했다는 견해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지질학과 기후학이 발달하면서 대규모의 백두산 폭발이 발해의 운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었다. 해동성국이라던 발해가 한달만에 갑자기 멸망한 사실에 연구자들이 그 원인을 궁금해 하던 차에 일본에서 이 주장이 나왔다. 이 이론은 부풀려져 발해를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에 빗대 동양의 폼페이라는 비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 견해는 지질학자들의 정밀조사에 의해 부정되었다.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가 발해멸망 20년 후인 946년으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백두산 화산 폭발 이전에 냉해가 발생해 국력 약화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지질학, 기상학적 연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할수 있다.

 

945년 백두산 화산폭발의 영향권 /위키피디아
945년 백두산 화산폭발의 영향권 /위키피디아

 

백두산 화산 폭발과 발해 멸망을 처음 연결시킨 학자는 일본의 화산학자 마치다 히로시(町田洋)였다. 그는 1992년에 발표한 화산분출과 발해이 멸망이란 제목의 글에서 백두산이 915년에 폭발했다고 설정했다. 그의 가정이 맞다면 수도와 주요지역이 백두산 주변에 집중되어 있는 발해로선 화산폭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해 10년후 거란이 침공하자 손을 쓰지도 못한채 무너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백두산 화산 연구의 대가 윤성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백두산 폭발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폭발로 열려진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폭발보다 훨씬 큰 규모이며,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국내의 또다른 백두산 화산 전문가인 소원주씨는 백두산 분화 규모가 베수비오 분화의 수십배나 되는 규모였으므로 당시 백두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소원주는 백두산 폭발로 심각한 냉해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한 기상재해로 발해의 민심이 이반되어 발해가 멸망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발해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발해 멸망을 적은 유일한 기록은 승자인 거란이 쓴 요사(遼史). 요사에 야율아보기(거란 태조)가 그들의 갈린 마음(彼離心)을 틈타 움직이니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했다. 발해 멸망의 원인으로 꼽히는 내분설의 동기를 백두산 폭발이 제공했다는 가설은 다른 증거가 없는한 설득력을 가졌다.

 

이후 지질학자들의 연구가 깊어지면서 백두산 폭발시기가 발해 멸망 후라는 사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독일의 지질학자들이 백두산 인근 화새류에 매몰된 재료의 연대 측정을 통해 백두산 분화가 945~985년이라고 추정했다. 중국의 연구팀도 백두산 화산폭발의 연대가 946년이며, 겨울에 분화가 일어났다고 했다. 2002년 일본인 나카무라의 연구에서도 935년 전후한 시기에 폭발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주목할만한 성과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질학 연구자인 클라이브 오펜하이머(Clive Oppenheimer) 교수팀의 연구였다. 오펜하이머 연구팀은 백두산에서 24km 떨어진 곳에서 채취한 화석화된 나무를 이용해 밀레니엄 분화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했다. 이들은 백두산 분화의 시기를 94610월에서 12월 사이로 결론지었다.

오펜하이머의 조사와 분석은 미치다의 견해를 뒤집었다. 역사학자들은 서기 946년의 사료를 뒤져보았더니 백두산 분화를 추정케 하는 대목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먼저 고려사에서 정종 원년(946)▲是歲, 天鼓鳴, .(이 해에 천고가 울려서 사면령을 내렸다) ▲定宗元年 天鼓鳴(정종 원년 천고가 울렸다)는 두 건의 기사가 있었다. 비슷한 내용이다. 천고(天鼓)는 하늘에서 나는 북소리라는 의미인데, 엄청나게 큰 소리가 하늘 멀리서 울렸다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개성까지 거리 400km인데 백두산 폭발음의 공명이 이 먼 거리까지 들려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興福寺年代記“946107일 밤에 하얀 재가 마치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夜白灰散如雪)고 적혀 있다. 흥복사는 수도 나라 지역에 있는 절인데 이 기사는 백두산 화산재가 이곳까지 날아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貞信公記日本記略이란 기록에 “947114일에 하늘에서 소리가 났는데, 마치 천둥이 우는 소리와 같았다(空中有聲如雷鳴)는 기록이 동시에 실려 있다. 시점이 애매하긴 하지만, 이 기록은 백두산 분화의 소음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화산 폭발음은 먼 곳까지 들린다. 1883년에 폭발했던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의 폭발음은 16km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막을 터뜨렸고, 4,653km 떨어진 로드리게스 섬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한다. 그의 8배 이상인 백두산 분화는 한반도는 물론 일본열도를 흔들었을 것이다.

 

백두산 천지 /위키피디아
백두산 천지 /위키피디아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백두산 화산폭발이 발해멸망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공감대를 잃어버렸다. 그러자 미치다는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이후 유민의 부흥 운동이 당시 백두산 분화를 통해 결집력이 약해지면서 이후 발해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 주장도 힘을 잃었다.

그렇다고 이 논란은 완전하게 묻힌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백두산 폭발에 앞서 발해 멸망 3년 전에 한랭화가 있었으며, 발해가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멸망했을 것이란 견해도 제기되었다. 백두산 분화에 따른 발해멸망설은 백두산 재폭발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참고한 자료>

백두산 화산폭발과 역사 사회적 영향, 이석현, 조선대, 2019

발해 멸망은 과연 백두산 화산 폭발 때문인가, 김은국, 2019, 해동성국 발해 중, 동북아역사재단

Wikipedia, 946 eruption of Paektu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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