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④…동모산은 어디인가
발해④…동모산은 어디인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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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 둔화시 성산자산성으로 비정되었다가 최근엔 투먼시 마반촌산성으로 무게중심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곳은 동모산(東牟山)이라고 했다. 사료에 동모산은 대조영이 군대를 일으킨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2,000리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구당서엔 대조영이 자기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의 계루부가 있던 땅을 차지하여 동모산을 근거지로 삼아 성을 쌓고 그곳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신당서엔 대씨(大氏)는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거느리고 읍루(挹婁)의 동모산을 차지했는데, 영토는 영주로부터 동쪽으로 2000리에 위치했고 남쪽으로 신라에 대하여 이하(泥河)를 경계로 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면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첫 도읍지 동모산은 어디인가. 영주는 랴오닝성 차오양(遼寧省 朝陽)인데, 동모산은 그곳에서 1,000km 정도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당나라 역사서들이 거리를 실측하지 않고 어림잡아 설명했기 때문에 동모산의 위치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발해의 첫 도읍지인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해 원나라 때인 14세기 때부터 여러 설이 나왔다. 처음 선양(瀋陽) 설이 제기되었고, 그후 액돈산설, 영고탑설, 돈화 악다리성설(=오동성설), 노령설, 화전설, 집안설, 액목 숭령설, 돈화 성산자산성설, 돈화 영승유적설, 서고성설, 성자산산성설, 통구령산성과 석호고성설 등 수많은 설이 제기되었다. 아직도 동모산의 위치에 대해 학계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해 유적지(송기호) /양시은 논문 캡쳐
발해 유적지(송기호) /양시은 논문 캡쳐

 

구국(舊國)이란 용어는 신당서발해전에 천보 말에 흠무가 상경으로 옮기니 구국에서 곧바로 3백리 떨어진 홀한하의 동쪽이다”(天寶末 欽茂徙上京 直舊國 三百里 忽汗河之東)”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고왕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이며, 발해의 옛 도읍지즉, 첫 도읍지를 말한다.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는 1949년에 지린성(吉林省) 둔화시(敦化市)에서 남쪽으로 5떨어진 육정산(六頂山)에서 정혜공주 묘비가 발견됨으로써 그 일대로 비정되었다. 정혜공주(貞惠公主, 737~777)3대 문왕의 둘째 딸이다. 비문에 정혜공주가 진릉(珍陵)의 서원(西原)에 배장되었다는 기록이 이곳에 구국(동모산) 시기 발해의 왕실 장지가 있었음을 말해 주었고, 따라서 구국을 육정산 고분군이 있는 돈화 일대로 비정되었다.

정혜공주 무덤 발굴 이후 둔화의 오동성과 성산자(城山子)산성이 동모산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구자들 사이에 성산자산성이 동모산이었으며, 평지 도성은 오동성 혹은 영승유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느 유적이 구국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었으나 둔화 지역이 구국이었다는 사실에는 오랫동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부터 구국 둔화설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과 2003년의 오동성과 영승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후 구국의 위치에 대한 중국학계의 의견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구국의 평지 도성으로 차례로 주장되었던 오동성과 영승유적이 발해의 유적이 아니라 금대 말의 유적으로 보고되었다. 성산자산성도 덩달아 동모산이 아닌 것으로 의심을 받았다.

 

발해 5경과 천도과정(송기호) /양시은 논문 캡쳐
발해 5경과 천도과정(송기호) /양시은 논문 캡쳐

 

그런데 2015년에 지린성 투먼(图们)시에 있는 마반촌(磨盤村)산성 동문지 일대에서 홍갈색의 승문 및 격자문 기와가 출토되고, 2017년에 이 산성의 동구에서 발해 초의 것으로 판단되는 대형의 건축지 등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중국학계에서는 동모산 마반촌산성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발해의 첫도읍지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연구는 중국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땅을 파헤치는 권한도 중국이 가지고 있고, 지리적 탐사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선 중국학계에서 대두되는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인다.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권은주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연구위원의 견해에 따르면, 마반촌산성과 역사기록에 나와 있는 위치에 차이가 드러나며, 마반촌 유적의 모든 문화층을 다 발굴했는지 알수 없다는 것이다. 충북대 양시은은 논문에서 마반촌산성은 중국 당국의 통제로 인해 답사가 쉽지 않고, 아직까지 보고서도 발간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유보적 견해를 견지했다.

 

발해 구국과 서경 관련 주요 지점 간 거리 /정석배 논문 캡쳐
발해 구국과 서경 관련 주요 지점 간 거리 /정석배 논문 캡쳐

 


<참고한 자료>

발해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해, 정석배, 한국전통문화대, 2022

발해 동모산 비정에 대한 중국 학계의 최근 논의, 양시은, 충북대, 2022

營州大祚榮 集團渤海國性格, 정병준, 동국대, 2007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의 현장을 가다> 돈화 발해유적, 동모산과 구국(舊國) 찾기, 권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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