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로 연결한 동남아의 만달라 체제
네트워크로 연결한 동남아의 만달라 체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2.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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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 구조로 중심국과 주변국의 지배체계 형성…정복 개념 아닌 중심부 이동

 

영국의 역사학자 올리버 월터스(Oliver W. Wolters, 1915~2000)는 고대 동남아시아의 국가시스템을 만달라(Mandala) 체제라고 규정했다. 영토를 중심으로 관료에 의해 통치하는 국가체제가 아니라, 중심 도시가 주변 도시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느슨한 지배구조라는 것이다.

월터스는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에서 동심원 또는 방사형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曼茶羅)에서 용어를 차용했다. 서양 학자들은 동남아시아 역사를 탐구하면서 유럽 또는 중국과 다른 형태의 국가구조를 발견했다. 동남아에선 영토라는 개념이 없고, 세습되는 절대 왕통도 없었다. 다만 어느 중심세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 주변이 복종하는 동심원과 같은 권력형태가 보인 것이다. 두 동심원이 겹칠 경우 중립지대가 허용된다. 경계지대는 양쪽에 동시에 복종하고 세력권이 타협한다. 왕조 교체 또는 정복이란 개념보다 중심의 이동이라는 표현이 맞다.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가 쇠퇴하고 자바의 마자파힛이 강성하면 주변 권력자들이 이동한다. 한때 중심지가 주변부로 전락한다.

만달라 체제는 정복보다는 공존의 체제를 지양했고, 영토 확장보다는 네트워크 구축이란 형태로 발전했다. 동남아의 국가는 바다와 강을 끼고 발전했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 세계를 넓혀 갔기 때문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고대 중국과 인도와는 다른 체졔를 구축한 것이다.

태국의 므앙(Mueang)이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필리핀의 케다투안(Kedatuan)과 같은 거점 권력은 준독립 도시국가로서 등장했고, 유력한 세력이 그들을 연합하는 형태로 지배체제가 형성되었다. 유력자와 하위 그룹 사이에는 조공관계가 형성되었다.

 

5~15세기 동남아의 만달라형 국가 /위키피디아
5~15세기 동남아의 만달라형 국가 /위키피디아

 

중화권에서는 천하에 두 개의 태양이 없고, 두명의 왕이 없다”(天無二日 土無二王)의 논리가 지배했다. 그에 비해 동남아시아에선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수 있다. 다만 중심이 이동할 뿐이다. 주변국이 중심국이 되면, 피지배국가들이 줄을 바꿔 선다. 말레이반도에 있던 랑카수카(Langkasuka) 왕국은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에 복종하다가 태국의 아유타야와 자바의 마자파힛의 중간에서 두 나라를 동시에 받들어모셨다. 그러다가 이 나라는 말라카 술탄국이 강력해지자, 그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캄보디아는 18세기에 태국과 베트남에 이중종속국이었다.

만달라 체계에서도 전쟁은 벌어졌다. 하지만 전쟁의 목적이 영토확보보다 인력 확보에 있었다. 승자는 패자의 영토를 뺏기보다는 인간들을 생포해 갔다. 노예로 삼아 노동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만달라 체계의 지배-종속은 군주 간 결혼정책으로 연결되었다.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와 자바의 사일렌드라의 왕가는 통혼으로 우호관계가 맺어졌고, 사이렌드라가 강력해 지면서 순다열도의 중심에 자바로 옮겨갔다.

중국 문화권처럼 가계를 통한 권력 이양 개념이 약했기 때문에 성씨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도 성이 없었고, 나중에 대통령이 된 그의 딸 이름은 메가와티다.

동남아시아에선 중화권과 같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의 개념이 약하다. 인도네시아에선 여성이 가정을 통솔한다. 동인도회사 시절에 네덜란드인들이 현지 여성과 결혼하면 여성의 경제권을 인정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동남아시아에서 부부가 이혼하면 자녀는 외가로 간다. 모계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황금 나무라고 불린 분가마스. 말레이반도의 소국이 샴의 왕실에 보내는 조공품이었다. /위키피디아
황금 나무라고 불린 분가마스. 말레이반도의 소국이 샴의 왕실에 보내는 조공품이었다. /위키피디아

 

고대 인도나 중국과 같이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만달라 중심의 강력한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주변국에 과시하기 위해 극장국가(theotre state)의 형태를 취했다.

13세기말 크메르 제국을 방문한 원()의 사절 주달관(周達觀)은 진랍풍토기에 이렇게 썼다.

국왕이 정사를 돌보는 곳에는 금으로 장식된 창문이 있고, 격자창 좌우에 거울이 달린 사각기둥이 서 있다. 거울은 약 40~50개 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가 코끼리 테라스가 있다. 궁전에는 창살이 많다고 들었으나 볼수 없었다. 그 궁전의 금탑에는 국왕이 밤만 되면 탑 아래에 드러 눕는다.”

14세기 자바섬의 마자파힛의 국왕이 행차하던 모습이 전해온다.

왕이 출발하자 수많은 궁중 신하들이 그를 따랐다. 왕궁의 큰길에는 마치 벽을 친 듯 헤아릴수 없는 수의 수레로 가득찼다. 왕의 행차 앞뒤로 소달구지를 끄는 남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걸어가는 다른 수행원들은 엄청난 숫자의 코끼리, 말 등과 함께 밀집되어 그 뒤를 따랐다.”

왕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또다른 방식은 사원과 무덤을 거대하게 꾸미는 것이다. 크메르의 앙코르와트, 자바의 보로부두르 사원이 대표적인 예다. 황금 꽃이라고 불리는 분가마스(Bunga mas), , 꾸불꾸불하게 생긴 크리스, 코끼리, 우산 등도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Mandala (political model) 

LinkedIn, The Mandala Political Model : South East Asia and India co-evolution of trade and centres of power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매리 하이듀즈, 2020, 솔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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