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람 왕국에서 족자카르타 술탄까지
마타람 왕국에서 족자카르타 술탄까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2.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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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인도네시아⑤…제국주의 간섭과 수탈에도 생존, 자바 독립의 상징

 

인도네시아 역사에 마타람(Mataram) 왕조는 두 번 나온다. 첫 번째가 716~1016년 사이의 불교-힌두교 왕조이고, 두 번째가 1586~1755년 사이의 이슬람 왕조다. 두 왕조는 자바 중부 마타람(족자카르타)을 수도로 하는 왕국이지만, 하나의 혈통은 아니었다. 당대 사람들은 마타람이란 이런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역사가들이 지어낸 이름이다. 마치 모스크바 당국, 베이징 정부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전의 왕조를 구(old) 마타람, 후의 왕조를 신(new) 마타람이라고도 하고, 또는 마타람 왕국, 마타람 술탄국이라고 접미사를 쓰기도 한다.

두 번째 마타람 정권은 무슬림 국가로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거점인 바타비아(자카르타)를 두차례 포위하는(1628, 1629) 등 자바 섬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부상했다. 네덜란드 식민회사는 서양식 무기로 격퇴는 했지만 마타람을 자바섬의 맹주로 인식하게 되었다.

 

마타람 술탄국의 지배영역 /위키피디아
마타람 술탄국의 지배영역 /위키피디아

 

바타비아 공격 이후 양측 사이에 우호적 관계가 맺처져 활발한 교역이 이뤄졌다. 무역은 순탄치 않았다. 거래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에 1655년 마타람측은 자바 북부 해안의 항구를 봉쇄했다. 하지만 마타람엔 반란이 잦았고, 이는 VOC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1670년 아망쿠랏(Amangkurat) 1세가 반란군에 쫓겨 피난길에 사망하고 아들 아망쿠랏 2세가 술탄에 올랐다. 반란군이 VOC에 반대하는 조짐이 보이자 VOC는 술탄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병력을 투입했다. 덕분에 아망쿠랏 2세가 반란군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네덜란드측은 댓가를 요구했다. 술탄은 나라의 여러 이권을 네덜란드에 주었다. 네덜란드 회사는 마타람에 돈을 빌려주었고, 그 댓가로 마타람의 수도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반란과 내정불안이 일어나면 마타람 권력자는 VOC에 손을 내밀었고, 그럴수록 점점 마타람은 VOC의 속국이 되어갔다.

 

1740 바타비아에서 중국인 폭동이 일어났다. VOC가 중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가운데 많은 자바인들이 중국인들과 합세해 VOC에 저항했다. 이 와중에 마타람의 왕 파쿠부워나( Pakubuwana) 2세는 VOC와 타협적 자세를 취했다. 이에 분노한 자바인들이 왕에 반기를 들고 새 왕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동부 자바로 피신하면서 VOC에 지원을 요청했다. VOC는 병력을 동원해 파쿠부워나 2세를 복귀시키고 그 댓가로 마두라 수라바야 룸방 자파라 등 항구의 수익 일부를 가져가고 왕국 재상의 임명 동의권을 얻어냈다.

왕권 회복을 위해 나라를 들어먹는 행위에 여러 왕자 중 하나인 망쿠부미(Mangkubumi)가 본노해 반란을 일으켰고, 부하들에 의해 하멩쿠부워노(Hamengkubuwono)라는 왕호를 내걸었다. 내전은 11년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VOC가 개입해 양측은 협상을 하게 되었다. 3자 회담 끝에 1755213일에 기얀티(Giyanti)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으로 남쪽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하멩쿠바워노에게, 북쪽 수라카르타(Surakarta)는 파쿠부워나에게 넘기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후 마라탐 왕국은 두 나라로 쪼개졌다. 족자카르타의 왕은 술탄(sultan)이라는 칭호를 이어갔고, 북쪽의 수라카르타의 왕은 한 계급 낮은 수난(sunan)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VOC는 족자카르타의 지배자를 술탄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마타람을 분리 통치하게(devide and rule) 되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자바섬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마타람 술탄국의 분할(1830) /위키피디아
마타람 술탄국의 분할(1830)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99년말에 파산처리되고, 1800년부터 자바섬은 네덜란드 왕국의 직할통치로 전환되었다. 이후 자바섬은 네덜란드령 동인도(Dutch East Indies)로 불린다.

자바섬이 네덜란드 직할령이 되었을 때 네덜란드 국왕 빌럼(William)은 프랑스 나폴레옹의 팽창주의에 밀려 영국으로 망명해 있었다. 나폴레옹은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네덜란드 왕으로 앉혔고, 루이는 바타비아에 자신이 임명한 총독을 보냈다. 그러자 영국에 망명한 네덜란드 국왕은 영국에 자바섬의 프랑스 앞잡이들을 쫓아낼 것을 요청했다.

이에 영국은 1810년 자바섬을 점령하고 이듬해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를 총독으로 보냈다. 래플스는 족자카르타의 왕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영국군 1,200명을 이끌고 수도를 점령하고 왕궁을 약탈했다. 서양인에 의해 자바 왕궁이 파괴되기는 처음이었다. 이 제국주의자는 이 전례 없는 폭거를 저지르고도 보로부두르 사원을 발견하고 싱가포르를 건설한 사람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래플스는 국왕 하멩쿠부워노 2세를 말레이반도 페낭으로 데려가 가택연금시키고 아들을 왕위에 올렸다. 이때 왕족 가운데 영국군을 도운 나타쿠수마에게 족자카르타의 땅 일부를 나눠주고 공작의 칭호를 주었다. 이로써 옛마카탐 술탄국은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래플스는 자바섬을 영국령으로 둘 것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영국 왕실은 자바섬을 네덜란드에 돌려 주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네덜란드 군에 항복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디포네고로 왕자가 네덜란드 군에 항복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자바 섬을 돌려받은 네덜란드는 식민통치를 본격화했다. VOC 시절에는 무역이 주요관심사였지만 직할통치로 전환하면서 네덜란드 총독부는 자바섬에 환금작물의 재배를 확대하고 화폐경제를 도입했다. 아편장사도 했다. 족자카르타 왕실은 모자라는 비용을 네덜란드에 차입을 통해 메워나갔다. 자바인들 사이에 네덜란드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갔다.

이럴 때 족자카르타 술탄국에 영웅이 등장했다. 디포네고로(Diponegoro) 왕자다. 디프네고로는 술탄 하멩쿠부워노 3세의 장자였다. 그의 주위에 이슬람 지도자들이 모여들었다. 1821년 벼농사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고, 자바 전역에 콜레라가 돌았다. 1822년 하멩쿠부워노 4세가 사망하자 그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의 세 살 아들이 하멩쿠부워노 5세가 되자 그가 후견인이 되는 것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1822년엔 머라피 화산이 대폭발했다.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네덜란드측이 술탄 능묘를 관통하며 도로를 개설했다. 이에 디포네고로는 1825년 지하드(성전)를 선포하고 네덜란드와 전쟁에 돌입했다. 이슬람 지도자들이 디포네고로를 지지했고, 족자카르타 이외의 자바 지역에서도 그를 지원했다. 특히 이슬람 지도자 키야이 마자(Kiai Maja)가 합류해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저항이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자 술라웨시에서 다른 종족을 끌고와 진압군을 편성했다. 족자카르타가 네덜란드군에 점령되자, 반란세력은 밀림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쳤다.

전쟁은 18294월 키야이 마자가 체포되면서 약화되었고, 네덜란드는 1830년 협상장에 나온 디포로네고로를 체포함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디포로네고로는 그후 술라웨시로 이송되어 연금생활을 하다가 1855년에 생을 마쳤다.

인도네시아사에선 이 전쟁을 자바전쟁(Java war)이라고 하며, 네덜란드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높게 평가한다. 디포로네고로는 민족의 영웅으로서 인도네시아 지폐의 인물로도 새겨졌다.

이 전쟁에서 자바인 20만명, 네덜란드인 8,000명이 사망했다. 네덜란드가 끝내 승리했지만, 그들은 현지인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후 네덜란드인들은 족자카르타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술탄궁을 건드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지폐의 디포네고로 왕자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 지폐의 디포네고로 왕자 /위키피디아

 

족자카르타 술탄국2차 대전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1945~1949) 때에도 수카르노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를 되찾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을 때 독립운동세력의 수도로 삼도록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독립후 족자카르타를 유일하게 군주 숥탄이 세습통치하는 특별행정구역으로서 자치권을 인정했다. 현재 족자카르타의 지배자는 하멩쿠부워노 10세다. 족자카르타의 주지사는 형식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임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술탄가에 의해 승계되고 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Mataram Sultanate 

Wikipedia, Yogyakarta 

Wikipedia, Java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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