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네시아⑦…이슬람 확산
고대 인도네시아⑦…이슬람 확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2.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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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전파되다 정화 원정 이후 급속 확산…마자파힛 멸망후 자바도 이슬람화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다종교 국가를 표방한다. 이슬람, 힌두교, 불교, 기독교, 카톨릭을 5대 종교로 꼽는다. 이중 이슬람 인구가 24천만명으로 총인구의 87%르 차지한다. 사실상 이슬람 국가이지만 국교로 정하지는 않았다. 종파는 98.8%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에 불과하다.

이슬람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원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분포도를 보면 중동과 인도네시아 사이에 불교 국가인 미얀마와 태국이 가로막고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이 육로가 아니라 해로를 통해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에 언제, 어떻게 이슬람이 전해졌는지는 여전히 역사학계의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이를 입증해줄 뚜렷한 문헌이나 고고학 자료가 없고, 사료가 있더라도 내용이 부분적이고 불분명하다. 연구자들은 몇가지 설을 제기한다. 9세기 이전에 아라비아 직접 왔다는 설이 있다. 또다른 설은 12~13세기에 인도 구자라트나 중동 지역에서 온 무슬림 상인이나 전도사들이 전파했다는 것이다.

 

서 수마트라의 전통양식의 모스크 /위키피디아
서 수마트라의 전통양식의 모스크 /위키피디아

 

초기 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지는 중국 남부 광둥성이었다. 당 숙종 3(758)에 광저우(廣州)에 대식국(大食國, 사라센)과 페르시아 사람들이 약탈하고 바다로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지방군벌 전신공(田神功)2년후인 760년에 大食波斯賈胡死者數千人”(대식과 페르시아 상인 수천명이 죽었다)고 한다. 당말 황소의 난 때인 879년 반란군은 광저우를 기습해 약탈하고 대량 살상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구자들은 이때 죽은 아랍-페르시아인이 10만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사료들은 8~9세기에 중국 남부에 이슬람 상인이 진출했는데 현지 세력에 의해 축출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중국보다 늦다. 동부 자바에서 발견되는 초기 무슬림 묘비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전파되었다.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은 한손엔 칼, 한손엔 코란이라는 초기 칼리프 시대의 신조에 따라 무력정복에 의해 전파되었다. 그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무역상들이 오가며 종교를 전파하고 신도가 항구도시에 정착하며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 또 정복된 다른 나라에서처럼 전파가 급격하게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에서의 이슬람은 서서히 전파되었다. 아직도 비신자를 상대로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전파중이라고 한다.

파사이 술탄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파사이 술탄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수마트라와 자바는 다른 경로를 거친 것으로 파악된다. 수마트라에선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전파되었으나, 자바에선 ‘9인의 현자라 불리는 왈리 상가(Wali Sanga)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전파된 곳은 수마트라 북단에 있는 아체(Aceh) 지역이다. 아체 지역은 메카의 베란다를 자처했다. 최초의 이슬람 왕국이 생긴 것은 13세기 수마트라 북부의 사무드라-파사이 술탄국(Samudera Pasai Sultanate)이다. 후추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인도, 페르시아로 가는 해상교역의 길목이었다.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확산된 것은 15세기다.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명나라 정화(鄭和)1405년 대함대를 이끌고 출항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해상을 휘젓고 다니면서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이슬람을 심었다. 정화는 이슬람 도시국가인 말라카에 힘을 실어주어 힌두교 국가로 당시 남양을 지배하던 마자파힛 제국의 기를 꺾었다.

정화는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원정에 나섰는데, 자바섬에도 다녀갔다. 그는 자바에 중국인들을 내려놓았는데 그곳에 뿌리내린 중국인 후손이 세운 나라가 데막 술탄국(Demak Sultanate)이다.

전설에는 시조를 미화하기 위해 약간의 과장과 왜곡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데막의 건국자 라덴 파타(Raden Patah)는 자바 섬의 지배자 마자파힛의 왕자였다.

어머니는 중국인으로, 마자파힛 궁궐의 궁녀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자파힛의 피후견국인 팔렘방의 섭정에게 측실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마자파힛 왕의 아이를 갖게 되어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라덴 파타라고 한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파타의 한자 이름은 진분(靳文)이다. 어려서 그는 이슬람 공부를 위해 9인의 현자 가운데 한사람인 수난 암펠(Sunan Ampel)을 찾아갔다. 베트남 남부 참파 출신인 암펠은 파타에게 자신의 딸을 주며, 중부 자바에 글라가왕기(Glagah Wangi)라는 무슬림 정착촌을 만들라고 권했다. 파타는 스승이자 장인의 뜻을 따라 마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데막의 시초다.

 

인도네시아의 종교 분포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의 종교 분포 /위키피디아

 

한때 인도네시아 열도와 말레이반도를 지배했던 마자파힛은 이 무렵 쇠약해 졌다. 교역의 중심지를 말라카로 빼앗겨 버린 것이 큰 타격이었다. 게다가 내부 반란이 잦았다. 자바 중부에 본거지를 둔 이슬람 국가 데막이 세력을 키우면서 마자파힛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1511년 유럽의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공격해 점령했다. 마자파힛은 이 기회를 노려 포르투갈과 손잡고 데막을 치려 했다. 데막은 포르투갈과 마자파힛의 돔맹을 깨기 위해 약한 고리를 쳤다. 1521년 라덴 파타의 아들 트렝가나(Trenggana가 술탄이 되었다. 트렝가나는 1527년 트렝가나는 마자파힛의 심장부인 다하를 공격해 점령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대 영역을 지배했던 마자파힛은 230년의 역사를 종결했다.

 

마자파힛의 멸망은 힌두교 세력의 위축을 의미했다. 자바의 술탄국은 동부와 서부의 힌두교 항구도시를 하나씩 장악했고, 자바의 힌두교도들은 동쪽의 발리 섬으로 건너갔다. 발리 섬은 순다 열도에서 힌두교의 갈라파고스로 남게 되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Spread of Islam in Indonesia 

Wikipedia, Demak Sultanate 

Wikipedia, Wali Sanga 

Wikipedia, Majapahit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매리 하이듀즈, 2012, 솔과학

동남아시아사, 소병국, 2020,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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