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네시아③…프람바난의 슬픈 전설
고대 인도네시아③…프람바난의 슬픈 전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2.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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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왕조에서 힌두왕조로 교체되면서 850년경 건설…東자바 천도후 훼손

 

9세기 자바섬 중부엔 사일렌드라(Shailendra) 왕가와 산자야(Sanjaya) 왕가가 권력다툼을 벌었다. 사일렌드라는 불교, 산자야는 힌두교를 배경으로 했다. 사일렌드라 왕가가 축조한 건축물이 불교사원 보로부두르다. 보로부두르는 사일렌드라 왕조의 사마라퉁가(Samaratungga) 왕이 재위할 때(812833)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사마라퉁가가 죽고 그의 막내아들 발라푸트라(Balaputra)가 왕위를 이었으나,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때 산자야 가문의 라카이 피카탄(Rakai Pikatan)이 발라푸트라의 누이 프라모다바르다니(Pramodhawardhani) 공주와 결혼해 섭정을 맡았다. 피카탄은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 발라푸트라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발라푸트라는 어머니의 모국인 수마트라의 팔렘방으로 가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사일렌드라 왕조는 스리비자야에서 왕가를 이어갔고, 중부 자바엔 산자야 왕가가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이 복잡한 왕조의 교체로 자바의 종교가 불교에서 힌두교로 이전하는 과정이고, 보로부두르의 이웃에 프람바난이 들어선 계기가 된다.

 

프람바난 사원 /위키피디아
프람바난 사원 /위키피디아

 

프람바난(Prambanan)은 인도네시아에선 최대이며, 동남아에선 앙코르와트 다음으로 큰 힌두사원이다. 이 힌두사원은 세계 최대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에서 동남쪽으로 50km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며, 보로부두르가 완공된 직후에 건축되었다. 산자야 왕조를 연 피카탄(재위 847~856)이 새로운 종교를 지배이념으로 삼기 위해 지은 대규모 힌두 사원이 프람바난이다. 보로부두르 완공시기가 서기 840, 프람바난의 착공시기가 850년으로 추정된다. 프람바난의 주건물인 시바 탑 꼭대기에 국왕의 이름 피카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프람바난은 힌두교의 세 신인 브라흐마, 비시누, 시바를 모신 사원이다. 보로부두르가 단일 건축물이라면, 프람바난은 건축물의 집단이다. 프람바난 힌두 사원군(Prambanan Temple Compounds)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사원은 중원(中苑)과 내원(內苑)으로 구분된다. 내원은 중원보다 높게 했으며, 중원이 내원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중원은 변의 길이가 222m인 정사각형이며, 그 안에 있는 내원은 길이 110m의 정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사원에는 모두 240개의 사당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원에는 16, 중원에는 224개다.

핵심은 내원이다. 내원에는 동서로 3열의 사당이 세워져 있는데 서쪽에는 북쪽으로부터 보호의 신 비시누(Vishnu), 파괴의 신 시바(Shiva),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의 사당이 있고, 동쪽에는 세 신이 타는 동물(승용동물) 가루다(Garuda), 난딘(Nandin 또는 난디), 앙사(Angsa)가 배치되어 있다. 가루다는 비시누가 타는 독수리이며, 난딘은 시바가 타는 황소, 앙사는 브라흐마가 타는 거위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내원에는 작은 사당 10개가 있다.

내원에서 가장 핵심은 시바 사당이다. 시바는 파괴의 신인데, 파괴를 통해 창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시바 사당은 한 변이 34m인 정사각형 모양의 2층 기단의 구조이며 높이는 47m. 기단에 사자·원숭이·토끼·사슴 등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주실에는 3개의 시바 신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면은 나선·아라베스크 등의 무늬로 꾸며져 있다. 사당의 지붕은 피라미드 형태의 4층으로 되어 있고, 당의 바깥쪽을 둘러싼 회랑 벽면에는 힌두교의 서사시 라마야나42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시바 사당 옆에는 비시누와 브라흐마 사당이 시바를 보좌하는 형태로 서 있는데, 높이가 각각 23m.

중원에는 4열로 작은 사당이 줄지어 있는데, 안에서부터 44, 52, 60, 68개로 도합 224개다. 중원의 사당은 재발견 당시에 거의 파손되었고, 최근에 몇 개만 복원되었다.

중원 바깥에는 외원(外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케 하는 터가 남아 있다.

 

프람바난 사원군의 모형 /위키피디아
프람바난 사원군의 모형 /위키피디아

 

프람바난 사원은 로로종그랑(Roro Jonggrang, 또는 라라종그랑) 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사원에는 로로종그랑 공주의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자바섬에 펭깅(Pengging)과 보코(Boko)라는 두 나라가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펭깅의 왕자 반둥 본도워소(Bandung Bondowoso)가 보코 왕을 죽였다. 보코 왕에겐 로로종그랑이란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본도워소 왕자는 로로종그랑에 반해 청혼했다. 공주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결혼하기 싫어 두 가지 조건을 이행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첫 번째는 큰 우물을 파는 것이고, 둘째는 하룻밤에 사원을 1,000개 짓는 것이었다. 이행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청혼을 거절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왕자는 악마들을 불러 모아 우물을 팠다. 공주의 심복인 괴물이 나타나 왕자를 우물에 빠뜨려 죽이려 했으나, 왕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왕자는 공주의 두 번째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정령들을 불러 사원을 지었다. 999개 사원이 지어졌다. 마지막 사원을 지으면 공주는 적국 왕자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 공주는 동쪽 산에 올라가 나무에 불을 피웠다. 수탉들이 해가 뜬줄 알고 울었다. 이에 정령들이 새벽이 온줄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왕자는 공주의 조건을 이행하지 못했다.

화가 난 왕자는 로로종그랑 공주를 돌로 만들어 시바 사당에 가두어 버렸다. 프람바난에는 시바의 아내 두라가(Durga)를 표현한 아름다운 조각이 있는데 이는 전설의 로로종그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로로종그랑은 사일렌드라 왕조의 공주로 산자야 왕조의 피카탄에게 시집을 간 프라모다바르다니 공주다. 실제 이야기가 전설이 되었다. 가문의 왕위를 찬탈한 남편의 실화가 민중 전설로 전화한 것이다.

 

시바의 부인 두르가(Durga) 신상. 두르가는 로로종그랑을 상징한다. /위키피디아
시바의 부인 두르가(Durga) 신상. 두르가는 로로종그랑을 상징한다. /위키피디아

 

프람바난 사원은 80년밖에 활용되지 못했다. 850년께 만들어졌으나, 930년경에 산자야 왕조의 신독(Sindok) 왕이 수도를 자바섬 동부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천도의 이유는 불분명하다.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와 경쟁에서 밀렸다는 설과 화산 폭발해 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다. 14세기에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힌두 사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고, 프람바난은 밀림에 갇히게 되었다.

사원이 다시 발견된 사람은 173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 코르넬리스 안토니 론스(C. A. Lons)였다. 발견 당시 유적지엔 화산재가 덮혀 있었다. 9세기말부터 10세기초에 근처 머라피 화산이 최소 다섯 번 폭발했다는 연구가 있다. 수도 이전도 아마 화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네덜란드 식민당국이 1885년에 복원을 시작했고, 인도네시아 독립후 1982년 주요 3개의 사당이 복원되었다. 지금도 복원이 진행중이다. 프람바난은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바신이 타는 황소 난딘 상 /위키피디아
시바신이 타는 황소 난딘 상 /위키피디아

 


<참고한 자료>

Wikipedia, Prambanan 

Wikipedia, Rakai Pikatan 

Wikipedia, Roro Jonggrang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매리 하이듀즈, 2012, 솔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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