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도네시아 영토는 네덜란드가 식민지 통치를 하던 영역과 일치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역사학자들은 섬마다, 지역마다 여러 소왕국으로 나눠져 있던 열도를 네덜란드가 통일시켰고, 그 덕분에 2억8천만명의 인도네시아가 형성되었다는 논리를 편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서양세력이 들어오기 전에 마자파힛(Majapahit)이 지금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를 지배했고, 오히려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다른 세 나라가 떨어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대인도네시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마자파힛은 상징과 같은 역사다.
마자파힛의 건국자는 1293년 당대의 세계 패권국 몽골의 침공을 물리친 바든 비자야다. 비자야는 이듬해 마자파힛을 건국하고 스스로 자야와르다하나(Jayawardhana)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자바 동부 수라바야에서 브란다스강을 거슬러 50km쯤 올라가 트로울란(Trowulan)을 수도로 삼았다. 마자파힛은 불교도 허용했지만 본질적으로 힌두교 국가였다.
비자야는 순다 열도의 소왕국들을 통합하기 위해 결혼정책을 썼다. 수마트라의 강력한 항구도시 잠비-믈라유의 공주를 첫째 부인으로 삼고, 그 사이에 난 아들 그멧(Gemet)을 왕세자로 삼아 크디리를 직할령으로 주었다. 그는 장인 크느타르가라의 공주 모두를 부인으로 두었다. 말라야 문화에서는 모계 혈통의 영향력이 강하므로, 각 부인들의 모계 가문에게서 지지를 얻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마자파힛의 초기엔 귀족과 구세력의 저항이 거셌다. 1295년 크디리의 반란을 시작으로, 1298년 개국공신 소라와 주루 주무의 반란을 진압했다. 1309년 바자야가 사망한 후 세자 그멧이 왕위에 올라 자야나가라(Jayanegara)라고 칭했다. 2대에도 반란이 그치질 않았다.
이 때에 충신이 한 명 나타났다. 왕실 근위장교 가자마다(Gajah Mada, 1290~ 1364)였다.
라자마다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인도네시아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받들어지는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의 시인이자 정치인인 모하마드 야민이 독립운동기인 1945년에 라자마다에 관한 전기를 편찬해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은 알려진 바 거의 없으나, 평민 출신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왕실 근위대 장료로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웠다. 1319년 마자파힛의 2대 국왕 자야나가라의 양자 쿠티가 순수 자바 출신임을 내세워 어머니가 수마트라 출신인 양아버지에게 고개를 쳐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진압하는데 라자마다의 역할이 컸고, 라자마다는 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자야나가라는 중국 명나라에도 원(元)나라에도 조공사절단을 보내 과거의 적대감을 완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욕망에 빠져 있었다. 1328년 그는 주치의에게 살해당했다. 의사는 왕이 자신의 부인을 유혹한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한 것이다. 라자마다는 즉시 의사를 죽여버렸다.
자야나가라에겐 아들이 없었다. 왕위 계승 우선순위는 그의 어머니이자 비자야의 첫째 부인인 가야트리 라자팟니(Gayatri Rajapatni)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힌두교 교리에 국왕이 죽으면 부인은 화장하거나 비구니가 되어야 했다. 힌두교의 사티(Satī)라는 익습이 왕비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결국엔 왕위는 자신의 딸이자 자야나가라의 여동생인 트리부와나(Tribhuwana)에게로 돌아갔다.
어린 여왕과 대비의 여인왕국을 뒷받침한 사람은 섭정을 맡은 가자마다였다. 여기엔 두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가자마다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전왕의 암살에 개입했다는 설이다. 또다른 설은 가자마다가 왕권을 넘보지 않고 사심 없이 여왕을 보좌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많은 인도네시아 역사가들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후자를 지지하지만 음모적 관점에서는 전자가 설득력을 갖는다.
가야트리 대비가 1350년 사망하고 여왕 트리부와나는 왕위를 아들 하얌 우룩(Hayam Wuruk)에게 양위하고 2선으로 물러났다.
4대 우륵이 재위(1350~1389)할 때에 마자파힛은 전성기였다. 1365년 궁정시인 프라판차가 쓴 서사시 나가라크르타가마(Nagarakertagama)와 데사와르나나에 우룩 왕의 치세가 나온다. 내용은 우룩 왕의 각지 순수방의 모습과 마자파힛 왕가의 가계, 왕도의 모습, 재상 가자마다의 죽음, 마자파힛 왕국의 영토 등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모두 97편이다.
1300년대에 마자파힛은 그동안 사용하던 금은화를 중국 동전으로 교체해 통용했다. 세금과 벌금은 현찰로 받았다. 마자파힛 유물에 돼지 저금통이 발견되는데, 동전이 당시에 엄청나게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자마다는 여러 왕을 거치며 재상으로써 국정을 보필하고, 정벌활동에 나섰다. 그는 왕에게 열도를 제압할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가 정벌한 지역은 수마트라 북단에서 말레이반도, 보르네오, 파푸아뉴기니 동쪽까지이며, 남부 필리핀도 영향권에 넣었다.
그는 태국(아유타야), 미얀마(떠응우), 참파, 캄보디아, 베트남과도 외교관계를 맺었고, 중국과는 정기적으로 조공사절단을 보냈다.
그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원형을 이루었다는 평을 듣는다. 인도네시아는 독립후 족자카르타에 그의 이름을 딴 가자마다 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은 인도네시아 명문대학으로, 위도도 대통령을 비롯해 각료 상당수가 졸업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Majapahit
Wikipedia, Gajah Mada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매리 하이듀즈, 2012, 솔과학
동남아시아사, 소병국, 2020, 책과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