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시골 사람들은 오래도록 네덜란드 식민정부를 “꿈뻬니”라고 불렀다. 동인도회사의 “회사”(Compagnie)를 그렇게 불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겐 처음 200년 가까이 그들을 지배했던 “회사”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되었다. 영국 회사가 1600년, 네덜란드 회사는 1602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두 나라의 동방 진출이 경쟁적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동방으로 항해한 시기는 1595년 4월이었다. 코르넬리스 하우트만이 지휘하는 원정대는 자바 섬을 두루 돌며 후추 거래를 했으나 포르투갈과 현지인과 마찰을 빚으면서 249명의 선원중 89명만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이 원정대는 향료를 실어오는데 성공했고 순이익을 100% 이상 남겼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동방무역에 뛰어들었고, 1598년엔 다섯회사의 무역선 22척이 네덜란드를 출발했다. 이들중 야코프가 이끄는 원정대는 400%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자 1601년에는 다른회사의 배 14척도 가담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혈경쟁이 빚어졌다.

급기야 네덜란드 상하 양원 합동위원회의 중재로 여러회사들을 하나로 통폐합한 것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네덜란드어 명칭은 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약자로 VOC이며, 영어로 표현하면 United East India Company, 즉 연합동인도회사다. VOC는 영국보다 2년 늦은 1602년 3월 20일 출범하는데, 인류역사 최초의 상장회사로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본사는 암스테르담에 있었고, 지사는 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당시 명칭으론 바타비아에 위치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VOC도 국가나 다름없었다. 조직은 정부보다 효율적이었다. 정부는 정책을 추진할 때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여러 기관의 감독과 감시를 받지만, 회사는 소수의 이사회 의결만 있으면 집행이 가능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VOC에 막강한 권한을 주었다. VOC는 현지에서 군대를 갖추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며 외국 정부와 조약을 체결할수 있었다. 이 회사는 또 독자적으로 법규위반자를 체포하고 재판했으며, 재판 결과에 따라 죄인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을 집행했다. 회사는 해외 영토를 식민지로 보유하고, 그곳에서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주주가 주인인 국가였다. VOC는 1609년 라인강 지역에 살던 네덜란드의 선조 게르만족의 명칭을 본따 식민도시 바타비아(Batavia)를 서부 자바에 건설했다.

 

 

VOC는 경쟁업체를 통폐합하고 정부와 의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회사였으므로 독점회사였다. 회사는 다른 나라 또는 다른 기업의 참여를 배제했다.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이질집단은 군사력으로 격퇴했다. 1623년 말루쿠 열도에 들어와 향료사업을 하려던 영국인과 그의 수하 수십명은 네덜란드 회사군인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몸이 부서졌다. 암본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이 있은 후 영국은 더 이상 향료의 섬에 접근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정향과 육두구가 과잉생산될 경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향료 나무를 일부러 잘라냈다. 그 바람에 원주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식민회사는 주인인 자본가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익이 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통치비, 유지비가 많이 드는 영토경쟁은 지양하고 여러 지역에 거점 도시를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바타비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대만,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연결했고, 서쪽으로는 말라카, 실론(스리랑카), 인도 서해안의 말라바(Malabar)를 잇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은 VOC 소속으로, 일행 36명과 함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이었다. 그는 1666년 탈출해 바타비아로 돌아가서 여행기를 썼다. 하멜 표류기는 자신이 조선에 체류한 14년 동안에 받지 못한 임금을 VOC에 청구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였다.

 

VOC은 우수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서양회사는 무기를 활용해 현지 왕국을 압박해 무역거점을 형성하고, 필요에 따라 내정에 간섭했다. VOC는 원주민 왕국의 권력투쟁을 최대한 활용했다. 회사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회사를 무력으로 지원함으로써 그 댓가로 땅을 할양받거나 독점권을 요구했다. 현지 부족국가들도 왕위계승, 내전 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양세력에 손을 내밀었다. VOC는 1799년에 해체되기 전까지 자바 섬에서 바타비아 이외에는 지배영역을 넓히지 않았으나, 주위 왕국에 영향력은 행사했다.

 

VOC는 아시아의 무역을 장악했다. 200년 가까운 기간에 VOC를 통해 아시아로 간 유럽인은 100만명에 이른다. 주로 네덜란드인이고, 다른 나라의 모험가도 이 회사를 이용해 동양세계로 갔다. 200년간 VOC의 이름을 걸었던 선박은 4,785척이며, 실어나를 화물은 250만톤이라는 통계가 있다.

수익률도 좋얐다. 두세기에 걸쳐 회사의 연평균 수익률은 18%였고, 후반기에 수익률이 낮아졌지만 10%를 유지했다. 전성기였던 1630~1670년 사이에 수익의 4분의3이 배당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4분의1이 재투자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잘나가던 회사가 왜 18세기말에 파산에 이르렀을까.

그 첫째는 경쟁자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VOC가 활동하던 두 세기 사이에 유럽의 회사들이 제각기 아시아로 진출했다. VOC가 이들 모두를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또 경쟁자들은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직교역을 한데 비해 VOC는 일단 바타비아에 상품을 집결시킨 다음에 유럽으로 수출했기 때문에 이동거리와 시간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또 동남아 도서지역에서 재배되던 향료, 설탕이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되면서 세계적인 공급과잉이 발생했고, 생산과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급감했다.

결정적인 것은 VOC 직원들의 타락이다. 직원들은 회사계정 이외에 다른 주머니를 차거나 경쟁사에 공급선을 주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가 제4차 영란전쟁(1780–1784)에서 영국에 패한 이후 VOC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1796년 3월 네덜란드 정부는 VOC를 청산하기로 결정하고, 경과기간을 거쳐 1799년 12월 31일 회사를 폐업했다. VOC의 자산과 부채는 네덜란드 정부가 떠 안았다.

한편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정리 이후에도 존속했으나, 1857년 세포이 항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회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모든 권리와 자산을 영국 정부에 이양한뒤 정리절차를 밟아 1874년 6월 1일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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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Wikipedia, Dutch East India Company 

Wikipedia, Company rule in the Dutch East Indies